괜찮다는 말이 제일
괜찮지 않았던 날

by 괜찮지않은사람

그날, 누군가 내게 말했다.
“괜찮지?”
순간 대답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가, 그 자리에서 삼켜졌다. “괜찮아요.”라는 말이 너무 익숙해서, 습관처럼 흘러나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온 순간, 가슴 속 깊은 곳이 서늘하게 식어갔다. 괜찮다는 말이 이렇게 무겁게 느껴진 건 처음이었다.

나는 그 말이 거짓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 말 속에는 숨기고 싶은 눈물, 말하지 못한 서운함, 그리고 버텨야만 하는 무력함이 다 들어 있었다. 그런데도 ‘괜찮다’고 했다. 왜냐하면, 진짜 속마음을 꺼냈을 때 돌아올 반응이 두려웠으니까. 누군가가 내 말에 불편해할 수도 있고, 대충 위로하는 말 한마디로 대화를 끝낼 수도 있으니까. 그 모든 가능성이 나를 더 아프게 만들 것 같아서, 차라리 가벼운 거짓말을 선택했다.

‘괜찮다’는 말은 마치 방패 같았다. 겉으로는 나를 보호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내 안에서 자라는 상처를 가려버리는 얇은 천에 불과했다. 그 방패 뒤에서 나는 계속 무너지고 있었고, 아무도 그걸 보지 못했다. 아니, 보려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괜찮다는 내 말에 안도하고, 그 이상은 묻지 않았다.

나는 오래전부터 ‘괜찮다’는 말을 예의처럼 써왔다. 피곤해도, 힘들어도, 속이 뒤집혀도 괜찮다고 했다. 그게 어른스러운 태도인 줄 알았고, 관계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건 관계를 지키는 게 아니라, 나를 잃어가는 길이었다. 내 감정을 숨기고 상대를 편하게 만드는 데 익숙해진 대가로, 나는 나 자신에게 점점 무관심해졌다.

그날 집에 돌아와 혼자 앉아 있었다. 대답했던 ‘괜찮아요’라는 말이 자꾸 떠올랐다. 머릿속에서는 수백 번 “괜찮지 않아”라고 외쳤지만, 그 말은 끝내 세상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건 사건이나 상황이 아니라, 내 아픔을 부정하는 나 자신의 말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조금 다른 답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괜찮아?”라고 물으면, “잘 모르겠어요.”, “사실 힘들어요.”, “조금만 들어줄래요?” 같은 말을 해보려고 연습했다. 처음에는 어색했고, 말하는 순간 목이 메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말을 했을 때 나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 덕분에 나는 ‘괜찮다’는 말보다 훨씬 더 큰 위로를 받았다.

괜찮다는 말이 제일 괜찮지 않았던 날, 나는 배웠다. 거짓된 괜찮음은 나를 더 외롭게 만들고, 진짜 괜찮음은 나의 솔직함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이제 나는 더 이상 무조건 괜찮다고 말하지 않으려 한다. 내 마음을 숨기지 않고 꺼내놓는 것이, 나를 지키는 첫 걸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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