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은 방들 중에 단 하나, 유일한 '방'
레니 아브라햄슨은 아카데미 시상식에 수상 후보로 선정된 아일랜드 영화, TV 드라마 감독이다. 그는 Adam & Paul, Garage, What Richard Did, Frank, Room과 같은 영화로 알려져있다.
아브라햄슨은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그는 유대인으로 바르미츠바(유대교에서 13세에 받는 성인식)를 받았다. 그의 양 부모는 폴란드가 포함된 동부 유럽 출신이다.
그는 더블린 트리니티 대학에서 공부했다. 그곳에서 그는 Mental and Moral Science (philosophy)를 전공하였다. 그는 1987년 이론 물리학으로 첫 문학 석사를 땄다.
스탠퍼드 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 과정을 밟고 있었으나, 공부를 마치지 않고 아일랜드로 돌아와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광고 감독으로 시작하여, Carlsberg 광고 시리즈로 인기를 얻었다. 그의 첫 작품은 <Adam & Paul>인데, 자신을 고칠 방법을 찾아 헤매는 두 헤로인 중독자를 특색 있게 다룬 블랙 코미디 었다. 후속 편으로 2007년 <Garage>라는 영화를 했고, Pat Shortt는 아일랜드 시골의 외로운 주유소 직원 역할로 스타덤에 올랐다. 또한 이 영화는 IFTA의 최고 영화상을 받았다.
또한 같은 해, 4부작 TV 미니시리즈 <Prosperity>가 RTE(아일랜드 반-공영 방송)에 방송되었다. Mark O'Halloran이 공동 각본을 맡았다. 그는 Adam & Paul, Garage의 각본 작업에도 함께 했다. 앞서 두 영화와 마찬가지로, <Prosperity>는 아일랜드 사회의 비주류에 속해있는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췄다. 알코올 중독자, 싱글맘, 망명 신청자라는 아일랜드 사회에서 볼 수 있는 구체적 캐릭터를 각 한 시간 분량의 에피소드로 다루고 있다. <Prosperity>는 2008년 6개의 아일랜드 영화와 TV 시상식에 수상 후보로 선정되었으며, 두 개의 부분 - 최고 감독상에 'Lenny Abrahamson', 최고 각본상에 'Mark O'Halloran' -을 수상하였다. 2012년에는 <Waht Richard Did>라는 영화로 세 번째 IFTA 최고 영화상을 수상하였다.
그가 감독한 <Frank>는 2014년 선댄스 영화제의 최고 영화상을 받았다. <Frank는 'Frank sidebottom'라는 이름을 가진 꾀자 뮤지션에 관한 영화다. Michale Fassbender, Domhnall Gleeson, Maggie Gyllenhall이 출연하였다. 그는 다음 작품으로 Emma Donogue의 소설 <Room>을 각색한 영화를 연출하였고, 아카데미 시상식에 처음으로 수상 후보로 선정되었다. <Room>은 대중성과 작품성,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성공적인 작품이었다.
2014년 Laird Hunt's의 시민 혁명 소설 <Neverhome>을 각색한 영화를 제작 중이라고 밝혔다.
2015년에는 Emile Griffith의 복싱 라이벌인 Benny Paret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작업 중이라고 한다.
사실 영화 포스터를 그리 주의 깊게 보진 않았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룸 ROOM(2015)>은 아카데미 시상식에 총 4개의 부분에 수상 후보로 선정되었고, 브리 라슨은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하지만 유명한 상을 수상했기 때문에 이 영화를 추천하려는 것은 아니다. 수상하지 못해도, 수상 후보에 선정되지 못해도 좋은 작품은 많다.
'아동 폭력' 또는 '아동 보호'와 같은 이슈가 이 영화를 봐야 할 이유가 되진 않는다. 오히려 그런 주제가 '이슈'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사회적이고 정치적 부분에서 해결해 나가야 한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동의가 필요한 문제이다.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이해'와 '공감'에 대한 방법과 방향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영화가 다루는 주제, 각본, 감독 모든 요소가 맘에 들었던 영화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이지만 냉소적이지 않고, 적나라지만 따뜻하다.
개인적으로 느낀 뉘앙스는 그런 것이었다.
(밑의 내용은 스포일러 덩어리입니다.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이라면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엄마가 아픈 건,
'방 ROOM'을 너무 빨리 벗어나려 해서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다.
조이는 닉에게 납치당해서 7년 동안 감금당했다. 그리고 감금당한 바로 그 '방 ROOM'에서 아이를 가진다. 아이의 이름은 잭이다. 잭이 가지고 있는 말버릇은 '실제 REAL'이다. 아이는 실제와 가상을 구분할 수 없다.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방 ROOM' 밖에는 하늘, 우주가 존재한다. 조이가 나뭇잎을 설명하려 해도, 잭은 이해하지 못한다. TV에서 본 나뭇잎은 초록색인데, 조이가 가리키는 나뭇잎은 갈색이다. 잭에게 '나뭇잎은 초록색이었다가, 나뭇잎이 떨어지는 가을이 오면 색깔이 변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렇다 잭에게 '변화'란 존재하지 않는다. 변하는 것은 자신의 키와 머리카락뿐이다. 잭에게 '방 ROOM'이란 영원한 실재이자 실존이다. 잭에게 실재란 엄마와 닉밖에 없다. 소년의 세상이란 그런 것이다.
반면에 조이에게 '방 ROOM'이란 억압과 고통의 상징이다. 아이에겐 '방 ROOM'의 세상에 대해선 알려주지 않는다. 탈출하기 힘들다는 것과 그것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아이는 벽 뒤의 존재를 인지하지도, 인식하지 못한다. 어느 부모든 그럴 것이다. 아이에게 더 넓은 세상, 더 많은 사랑을 주고 싶을 것이다. TV 속의 세상이 가짜가 아니라 진짜임을 가르쳐주고 싶었을 것이다. 살아 뛰어노는 강아지와 만나게 해주고 싶고, 거북이가 TV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짜 살아있음을 알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의 억압과 고통보다, 아이가 현실과 가상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것이 더 아팠을 것이다.
조이는 탈출을 계획한다.
아이를 버렸다면, 아이는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런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ROOM(2015)>이 보통 영화와 다르다고 한다면, 두 모자가 탈출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탈출은 세상과 접촉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다. 이 영화가 따뜻한 영화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방 ROOM'안에서 이루어지는 폭력만 다루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렇다고 해서 그 안에서의 폭력을 가볍게 다루지 않는다. 감독이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폭력과 아픔을 다루고 있지만, 그것에 압도되지 않는다.
물론 그런 방식이 필요한 영화도 있을 것이다. 그 어떤 것도 폭력을 정당화할 순 없으니까. 대게 그런 영화는 '탈출 = 해피엔딩'이다. 다만, <ROOM(2015)>은 좀 더 긴 호흡을 가지고 있다. 탈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방 ROOM'의 바깥으로 나온 두 모자가 어떻게 세상에 적응하는가도 감독이 주의 깊게 살피고 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다. 어쨌건 삶은 계속되고, 그 과정에서 분명히 갈등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에서 할머니의 친구 레오가 인상 깊었다. 실제 인물이 아닌데도, 고마울 정도로 따뜻하고 배려 깊은 존재였다. 아이는 괜찮다. 아이는 플라스틱 같은 존재니까. 아이는 빠르게 적응해 나갈 것이다.
진짜 문제는 '조이'에게 있다. 그녀에게 '방 ROOM'은 물리적인 한계이자, 정신적 성숙의 한계였다. 아들과 7년간의 감금에서 벗어난 그녀는 단숨에 유명인사가 된다. 인터뷰 요청이 쇄도한다. 인터뷰어는 조심스럽게 묻는다.
"아이에게 아버지를 알려줄 생각이 있나요?"
"만약에 아이를 버렸다면, 아이가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나요?"
그녀의 말문이 막힌다.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잭은 자신의 아들이고, 자신의 책임이다. 살아가는 이유였다. 최선을 다해 아이를 키웠다고 생각했다. 삶의 많은 부분을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희생했다. 물론 그녀는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세상은 다른 방식의 윤리를 제시한다.
다른 도덕과 윤리를 가진 이들이 묻는다.
'넌 좋은 엄마니?'
그녀는 그런 질문에 흔들린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념과 도덕을 끊임없이 시험받는다. 아이는 세상에 적응해나갈 것이다. 아이는 날로 성장하니까. 하지만 그녀는 그런 질문을 받고도 견딜 수 있을 만큼 성숙한 정신력을 가지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그녀가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하였다는 느낌을 받은 건, 단순히 윤리적 문제에 대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답에 확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러한 질문을 통해 받는 스트레스로 어머니와 아들을 상처 주었기 때문이다.
아 그래서 그녀가 불쌍하다거나,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분명히 그녀가 받은 상처와 고통이 존재하고, 그것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성숙할 수 없다는 것이다. 조이는 세상이라는 이름의 '방'에 적응하기 위해서 잭보다 더 큰 고통을 받을 것이다.
안녕 11번 의자, 안녕 세면대, 안녕 빛 구멍, 안녕 벽장, 안녕 'ROOM'
엄마는 작별인사 안 해?
그렇게 조이는 영화에서 잠시 사라진다. 그리고 아이가 변해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따라간다. 몇몇 장면은 눈물샘을 자극한다. 영화 보면서 잘 우는 편은 아니지만, 눈물이 났다. 영화가 따뜻한 느낌을 가지는 건, 아마 아이의 변화를 따라다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이가 아닌 조이에게 집중했다면, 다큐멘터리 느낌이 났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이의 변화를 보는 것은 매우 감동적이고, 재미있었다. 중간중간 잭의 내레이션은 지금 자기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왜 아이가 하는 말이 내 마음을 울리는 걸까?
단순하기 때문에?
순수하기 때문에?
아이는 이야기한다. "세상은 너무 넓고, 할 것도 많은데. 사람들은 모두 빨리 하기만을 바란다. 엄마도 너무 빨리 하늘로 가려다가 떨어져서 다친 것이다." 잭이 보는 사람들은 너무 빠르다. 빨리 무언가를 해결하려 한다. 조이의 심리적 불안도 거기에 기인한다. 빨리 적응해야 한다는 불안. 나만 뒤쳐져있을 거라는 불안. 우리는 왜 아이가 하는 말에 감동하는 것일까?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아이는 가르쳐주는 대로 세상을 살아가지만, 우리는 가르치는 것과 사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앞서 이 영화가 '이해'와 '공감'에 대한 영화라고 밝혔다.
뭐랄까, 서사적 측면에서 '이해'와 '공감'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은 없다.
다만, 레니 아브라햄슨 감독이 두 모자를 따라가는 과정이 '이해'와 '공감'의 좋은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고 내용은 알 수 있을진 몰라도, 영화를 보지 않고서는 이 두가지 키워드를 이해하기란 힘들거라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꼭 보시라.
잭은 '방 ROOM'에 가보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하나하나에 아침인사를 하듯, 마지막 장면에서 아이는 하나하나에 작별인사를 한다.
뭐 아직 살아갈 날이 많이 남았지만, 생각해보면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는 것 또한 큰 행운이다.
보통은 인사를 하기도 전에 사라지니까. 그러면 나는 보이지 않는 실체와 작별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우리는 매 순간 새로운 것들을 만나고, 헤어진다. 새로운 만남이 중요한 만큼, 헤어지는 것 또한 중요하다. 헤어지지 않고서야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없기 때문에, 제대로 헤어지지 않았다면, 누군가를 상처 줄 것이 뻔하기 때문에. 우리는 만나면 인사하고, 헤어지면 인사한다고 배운다. 잭은 자연스럽게 만났을 때 인사하고, 헤어질 때 인사를 했다.
우리는, 나는, 헤어질 때 제대로 인사를 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