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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평 May 15. 2016

인문고전 깊이 읽기 : 셰익스피어

현대에도 재해석되는 셰익스피어의 매력

메인 이미지 : <Romeo and Juliet(1968 film)>



들어가며


인문고전 깊이읽기 : 셰익스피어 /  권오숙 지음 / 한길사 / 2016


(영국은) 인도를 언젠가 잃게 될 것이나 셰익스피어는 사라지지 않는다. (Indian Empire will go, at any rate, some day; but this Shakspeare does not go, he lasts forever with us;)

-토머스 칼라일의 '영웅 숭배론'중

셰익스피어는 현대에서도 계속 재생산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셰익스피어의 작품보다 훨씬 더 뛰어난 작품도 많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치밀한 내면 묘사를 하는 작가(도스토예프스키, 쥐스킨트 etc)도 있고, 당시 사회상을 작품에 더 잘 스며들게 한 작가(피츠제럴드, 테네시 etc)도 있다. 그의 대본이 고어로 구성되어 있으며, 영어 표현에 있어서 영문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영어권 국가에서 태어나지 않은 나에게는 그리 큰 인상을 주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셰익스피어는 꾸준히 재생산되고 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받을 수 있는 가장 즉각적이고 강렬한 느낌은 그가 언어를 사랑한다는 느낌이다. 말을 가지고, 말이 초래할 있는 놀랍고도 무시무시한 결과를 가지고 논다는 느낌이다. 셰익스피어의 말은 제 생명이 따로 있거나 기계적인 힘이 있는 듯 느껴진다. 하나하나가 작은 검색 엔진이며, 참견쟁이 꼬마 도깨비이며, 마음 내키는 대로 하는 기이한 생물 같다.

-니콜러스 로일, 'How to Read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는 영국 중부의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에서 출생했다. 비교적 부유한 중산계급에서 유년시절을 보냈고, 1577년경부터는 가운이 기울어 학업을 중단하였다. 1580년대 후반 그는 집을 나와 런던으로 향한다.


그는 주로 성서와 고전을 통해 읽기와 쓰기를 배웠다. 11세에 입학한 문법 학교에서 문법, 논리학, 수사학, 문학 등을 배웠는데, 특히 성서와 더불어 오비디우스 <변신>은 셰익스피어의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 셰익스피어는 기울어진 가운 때문에 대학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다. 하지만 타고난 언어 구사 능력과 무대 예술에 대한 천부적인 감각, 다양한 경험, 인간에 대한 이해력은 그를 위대한 작가로 만들었다.


그는 18세의 나이에 앤 해서웨이와 결혼했다. 둘 사이에 수잔나라는 딸이 태어난다. 1585년에 햄닛과 주디스라는 쌍둥이가 태어난 후 곧장 고향을 떠나 떠돌아다닌다. 이후 7~8년간 그의 행적에 대한 기록은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다만 1590년경에야 런던에 도착해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 기간 동안 자연과 인간에 대한 경험이 그를 위대한 극작가가 되는데 일조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러한 측면은 세뮤얼 존슨이 "셰익스피어는 어느 작가보다 자연의 시인이다. 즉 그는 독자들에게 삶과 세태의 모습을 충실히 비추어주는 거울을 들어 보이는 시인이다.... 다른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개별적 인간이라면 셰익스피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일반적으로 하나의 종이다."라고 묘사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엘리자베스 여왕(1588~1603)이 통치하던 시기의 런던은 눈부시게 변화하고 있었다. 도시의 급격한 팽창으로 다양한 도시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많은 경제활동, 다양한 문화 활동과 행사, 연극은 많은 사람들에게 여흥을 제공하면서 셰익스피어가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극작가로서 셰익스피어의 활동기는 1590년~1613년까지 대략 24년간으로 볼 수 있는데, 이 기간에 희/비극을 포함한 모두 38편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헨리 6세>가 히트를 기록하며, 셰익스피어의 인기는 날로 높아졌다. 그는 10편의 비극, 17편의 희극, 10편의 역사극, 몇 편의 장시와 시집 <소네트>를 집필하였고, 대부분의 작품이 살아생전 인기를 누렸다.


1613년 이후에는 그의 창작으로 볼 수 있는 작품이 하나도 없다. 1616년 4월 26일에 세상을 떠났다. 자신의 뜻에 따라 갖고 있던 많은 부동산을 큰딸인 수잔나에게 물려주었다.  죽은 뒤에는 고향의 성 트리니티 교회에 묻히게 된다.


그의 흉상 밑에는 "판단은 네스터와 같고, 천재는 소크라테스와 같고, 예술은 버질과 같은 사람. 대지는 그를 덮고, 사람들은 통곡하고, 올림푸스는 그를 소유한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르네상스 : 신고전주의 시대

Hamlet(1948 film) 올리비에 로렌스 제작 / 연출 / 주연 / 각색 



르네상스-문예부흥 운동은 신이 지배하던 중세로부터 벗어나, 다시 인간을 찾기 시작한 시대이다. 14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지만, 영국에는 2세기 후인 16세기에 시작되었다. 최근에는 중세 철학과 미학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지만, 많은 이들에게 중세는 암흑시대 Dark age로 알려져 있다. 적어도 중세 초입에는 압박이 심하지 않았지만, 중세 후기로 갈수록 신이라는 이름 아래 다양한 생각과 문화가 핍박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문예부흥 운동으로 다시금 그리스-로마 시대의 문학과 철학, 과학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인간을 탐구하는 인문학의 시대가 도래했다.


특히나 연극 분야는 중세 교회에 의해 많은 핍박을 받았다. 연극의 주제는 신에 대한 찬양과 은총과 관련된 것만 허락되었다. 르네상스 이후 그리스-로마 시대의 극작가 세네카가 다시금 주목받기 시작하고, 핍박 박던 연극단은 신뿐만 아니라 다양한 연극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다룰 수 있는 주제가 다양해지니 많은 사람들이 연극을 찾기 시작했다. 비단 연극뿐만 아니라 문화 전반에 활력이 생기기 시작했다. 


2세기 이후부터 시작했지만, 이는 영국 또한 마찬가지다. 오히려 유럽 어떤 국가보다 더 번창했다고 볼 수 있다. 셰익스피어와 같은 시기에 토마스 홉스, 존 로크와 같은 철학자가 태어난 것은 영국이 가지고 있던 문화적 기반이 위대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근대사회로 변해가는 시대의 길목에서 영국은 황금기를 누렸다. 신분제는 어지러웠고, 급격한 도시화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모였던 도시 런던은 다양한 가치와 취향을 가진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 모든 것이 셰익스피어가 위대한 극작가로 발돋움하는데 큰 자양분이 되었다.




인간의 이성적 측면과

이면의 동물적 본능


King Lear (2014 theatre) / 클라우스 마리아 브란다워(리어왕 역) / BurgTheater


모든 엘리자베스 시대의 사고의 틀이요, 기본 양식이던 우주적/자연적/정치적 질서에 대한 믿음이 의심으로 금이 가고 있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우주 질서에 의심을 품었고, 몽테뉴는 자연 질서에, 그리고 마키아벨리는 정치 질서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 결과는 엄청난 것이었다.

-시어도어 스펜서, 'Shakespeare and the Nature of Man', New york:Macmillan, 1961, p29.

권오숙 교수는 "이런 정치, 사회, 종교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이 신의 섭리에 따라 질서 있고 조화롭게 움직인다는 중세 사상을 믿고 있었다."라고 당시 시대상황을 설명한다. 우리는 역사를 배울 때 시기를 분리해서 배운다. 고대-그리스/로마-비잔틴-로마네스크-고딕-르네상스-바로크-로코코. 이런 식으로 시대와 양식을 쉽게 구분한다. 게다가 분야에 따라 구분하는 시기도 조금씩 다르다. 건축의 주요한 변화와 미술의 주요한 변화의 시기가 조금씩은 다르기 때문인데, 이러한 차이는 현재와 가까울수록 심하고, 멀수록 비슷하다.


역사의 변화는 '진화'와 유사하다. 어쩌다 보니 돌연변이가 탄생하고, 돌연변이가 주류로 올라오면, 돌연변이는 더 이상 돌연변이가 아니게 된다. 우연히 생긴 돌연변이는 양식 Style이 된다. 격변의 시대는 예술가뿐만 아니라 학자들이나 연구자들에게도 큰 영감을 준다. 그리고 현재가 계속 변해가듯, 시대를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평가도 계속 변하게 된다. 이전까지만 해도 암흑시대에 지나지 않았던 중세 middle-age 가 재해석되며, 대중들에게 알려지고 있는 것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그렇게 보편화된 재해석이 많은 연구자들과 대중들에게 인정받으면, 중세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게 될 것이다.


아마 우리의 미래 세대들 또한 우리를 그런 시각으로 바라볼 것이다. 우리는 현재를 살고 있을 뿐인데 말이다. 18세기 영국에 살던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다. 잔존하는 중세의 전통과 매일 새롭게 해석되는 그리스/로마 시대의 철학서와 과학 서들. 중세 교황이 강력하게 지지하던 '천동설'을 포함한 과학, 미술, 건축, 정치 모든 분야에서 변화가 시작되었다. 어떤 이들은 세상의 변화에 빠르게 발 맞춰 갈 것이고, 어떤 이들은 기존의 질서를 지키려 할 것이고, 어떤 이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 비단 그 시대의 사람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 우리 주변에도 7-80년대 노래를 현대적 감각으로 부르는 '장기하와 얼굴들'이 대중적으로 사랑받고 있듯이, 그 시대에도 중세적 감성을 신고전주의 시대에 맞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또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양식을 제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격변하는 시대 속에서, 수많은 대립항들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을 만났을 것이다. 그때에도, 지금도, 우리는 수많은 대립항의 갈등 속에 살고 있다. 그의 작품이 지금까지 사랑받는 이유는 현실 세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갈등을 작품으로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전까지 연극에서 보여주던 평면적 캐릭터에서 벗어난 입체적 캐릭터의 시작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해석하지 않는다

그러나 보여준다

Romeo + Juliet (1996 film) / 연출 : 바즈 루어만 / 주연 : 레오나드로 디카프리오, 클레어 데인즈



귀족계급의 후원과 국가기관의 검열, 그리고 대중의 상업적 요구 속에서 당대의 극장은 애매한 정치적 위치에 놓여 있었다. 이런 공연 환경은 셰익스피어가 정치적으로 일정 정도 보수성을 띠면서도 사회에 대한 풍자와 비판을 담아내는 역설적인 작품들을 쓰는 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p35)

당시 극장은 아주 지위가 높은 사람들로부터 신분이 낮고 가난하고 무식한 관중들까지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였다. 관객의 층이 다양한 것도 셰익스피어만의 독특한 극이 탄생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p37)

-권오숙 교수, 인문 고전 깊이 읽기 : 셰익스피어, 한길사, 2016

셰익스피어는 다양한 캐릭터를 보여준다. 그리고 캐릭터는 하나의 역할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사건을 통해서 변해간다. 특히나 비극에서 이러한 모습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이런 모습에 대한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다. 그저 보여줄 뿐이다. 정치적 중립성이나 가치 판단 중립성만으로 그의 작품을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러한 요소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여지를 남겨두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모든 부분에서 그것을 감출 수 없었겠지만. 특히 타자로서 '여성'을 다루는 부분에 있어서는 가부장적으로 해석할 수 있고, 또는 사회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다. 오히려 이러한 제스처를 취하면서 논란을 잘 피해간 것이 아닐까 싶다. 영국의 중흥기를 이끈 엘리자베스 여왕의 총애를 받는 작가였다. 셰익스피어에 대한 지식은 그리 깊지 않지만, 이 사실 만으로도 충분히 정치적인 사람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보통 이러한 제스처는 '모호함'으로 남기 마련인데, 양쪽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부터가 셰익스피어가 대단한 사람임을 알려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특별한 영문학적 표현이나 언어유희가 아니라 좀 더 넓은 의미에서 언어에 대한 감각이 남달랐지 않았을까?



매력적인 메인 플롯과

풍부함을 더하는 서브플롯

Mecbeth (2015 film) / 연출 : 저스틴 커젤 / 주연 : 마이클 패스밴더, 마리옹 코티야르



당시 런던에 있는 여러 극단 사이에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었으며, 끊임없이 증가하는 대중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극작가들은 최대한의 속도로 작품을 써야만 했는데 이러한 것이 엘리자베스 시대의 무대 조건이었다. 그 결과 자신의 작품 줄거리를 창안하는 극작가는 거의 없었다. 셰익스피어도 예외는 아니었다.

셰익스피어는 원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빌려온 것은 이야기의 뼈대뿐이었고 원전을 자유롭게 압축, 생략, 추가, 혼합, 재배치하여 새로운 작품으로 만들어냈다.... 다시 말해 그는 익숙한 소재를 변화하는 당대의 시대상황과 사회 현실에 맞게 다시 써서 새로운 인식과 사고를 유도한 것이다.

-권오숙 교수, 인문 고전 깊이 읽기 : 셰익스피어, 한길사, 2016

텍스트는 그 자체로만 해석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텍스트는 항상 콘텍스트를 포함하고 있다. 셰익스피어는 텍스트(역사적 사실/메인 플롯)를 해석하며 콘텍스트(주변 캐릭터 이야기/서브플롯)에 대한 해석을 함께 시도하고 있다. 소설이 작품 속 배경이나 장면에 특정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을 떠올리게 하는 메타포나 심벌을 사용하는 반면에, 연극은 극장이라는 한정된 장소에서 일어나는 퍼포먼스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서브플롯을 통해서 밖에 이야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그가 그러한 시도를 했기 때문에 이러한 용어가 존재하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기존의 형식을 수용하여, 더 좋은 방법을 찾아내는 것.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당연하지만, 가장 힘든 것.

아마도 몇십 년 후에는 '왜 저런 형식을 떠올리지 못했을까?' 후회를 남길 만큼 대단한 형식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때 가서 알아봐야 늦었겠지만.




Epilogue


셰익스피어가 위대한 작가인 건 나도 잘 알겠다.

근데 난 한 번도 '이거다!'라고 느낄만한 연극을 본 기억이 없다.

우리나라 연극 시장이 작아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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