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리앗에 맞서는 다윗의 전략
중국 상하이에 L’Avenue Shanghai라는 쇼핑센터가 있다. (명동에 있는 에비뉴 엘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곳이다)
약 6년 전에 방문했을 때 ‘아! LVMH 그룹의 브랜드 중심으로 백화점 하나는 지을 수 있겠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L’Avenue Shanghai가 워낙 큰 건물이라 LVMH 산하 브랜드로는 다 채우지 못했지만 주요 동선은 LVMH가 장악하고 있었으며 그 외 브랜드는 경쟁사인 Kering 그룹이나 Richemont는 다소 배제하고 Prada, Burberry 같은 독립 회사들이 주변에 포진하고 있다.
L’Avenue Shanghai의 공식 웹사이트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LVMH는 중국 현지 회사와 협력적인 관계를 통해 이런 거대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다.
지난 회에 이야기한 럭셔리 대기업의 가지고 있는 장점 중 시장 지배력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럭셔리 대기업이 모든 영역에서, 그리고 언제나 독립 회사에 비해 우위에 있는 것이 아니다. 1) 이번 시간에는 럭셔리 3 대장에 속해 있지 않은 독립 회사들의 골리앗에 맞선 다윗의 전략을 함께 살펴보자.
조금 오래된 데이터이기는 하지만 1994년부터 2004년까지 약 10년 동안의 럭셔리 대기업과 독립 회사들의 실적을 비교 분석한 연구가 있다.
7개의 멀티 브랜드 그룹(multi-brand group)과 같은 수의 독립 브랜드 회사를 비교한 연구인데 (Rigby et al. 2006), 멀티 브랜드 그룹은 LVMH, PPR group, Richemont, Estée Lauder, the Valentino fashion group, the Swatch group 그리고 Hermès이다.
부연설명을 하면 PPR 그룹은 오늘날의 Kering 그룹의 옛 이름이고, Hermès는 동명의 브랜드 외에도 존 롭(John Lobb* 영국 태생의 부츠 메이커), 퓌포카(Puiforcat* 양식용 나이프와 포크 등 Cutlery 메이커), 생 루이(Saint-Louis* 크리스털 메이커) 등을 보유하고 있는 규모 있는 회사이다.
(필자는 에르메스를 독립회사로 분류하고 있지만 해당 연구에서는 대기업 집단으로 분류했음을 말씀드린다) 또한 연구에 활용된 독립 회사들은 Ralph Lauren, Calvin Klein, Rolex, Chanel, Lancôme, Armani 그리고 Burberry이다.
이 연구에 따르면 조사 기간 동안 연평균 성장률에서 독립회사들이 럭셔리 대기업보다 60% 빠른 신장을 보였다. 럭셔리 대기업들이 기업차원의 여러 가지 시너지 등 메리트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제품 생산 과정이나 통합 지원에 있어서 문제가 항상 없을 수만은 없는 것이리라.
럭셔리의 숭고한 본질을 고려할 때 개별적인 브랜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무분별한 통합 지원은 오히려 소속된 브랜드들의 정체성, 무결성 또는 자율성을 희석시킬 수 있다. 2) 다시 말해, 일부 럭셔리 대기업의 세밀하지 못한 운영이 브랜드의 진정성과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문화유산에 손상을 가져올 수 있다.
또한 상장된 기업은 ‘주주 이익의 극대화’라는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업 확장, 비용 관리 등 수익 창출에 지나치게 신경 쓰기 마련이다. 이러한 이유로 럭셔리 대기업은 그간 일본, 중국, 중동 그리고 인도 순으로 돈이 된다고 생각하는 모든 국가에 산발적으로 투자를 감행했고 더러는 돈 되는 일이라면 뭐든지 다 한다는 자세로 세컨드 라인(마크 제이콥스의 Marc by Marc Jacobs, 돌체앤가바나의 D&G 등) 등 제품 확장을 무차별적으로 감행해 왔다.
필자는 이러한 접근이 P&G 같은 FMCG 산업의 브랜드 관리 기법을 의식 없이 럭셔리에 대입해서 발생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브랜드의 철학과 회사의 정책은 충돌하기 마련인데, 종국에는 회사와 주주의 이익이 우선시 될 수밖에 없고 그러한 회사의 결정이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정체성과 가치를 잃게 한다. 3)
럭셔리 대기업과 독립 브랜드의 관계는 영국의 브랜드 스텔라 맥카트니(Stella McCartney )만 한 예가 없는 것 같다. 스텔라 맥카트니는 15세 때부터 패션업계에서 디자인 어시스트로 활동했으며 킹스맨의 거리 런던 Savile Row에서 수습 생활을 했는가 하면 세계적인 디자인스쿨인 영국 런던 센트럴 세인트 마틴을 졸업했다.
잘 알려진 대로 비틀스 멤버인 폴 매카트니의 딸이지만 패션업계에서 스텔라가 남긴 족적은 아버지의 후광을 뛰어넘을 때가 많아서 부친의 후광 논란은 여기서 언급하지 않기로 하자.
스텔라는 칼 라거펠트에 이어 프랑스 브랜드 끌로에 Chloe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아 침체되어 있던 분위기를 바꾸는 데 성공한다. 4) 구찌 그룹은 이런 재능 있는 스텔라 맥카트니를 영입하고 해당 브랜드를 인수하고자 상당 기간 동안 공을 들였데 번번이 거절당한다.
이는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채식주의자이며 친환경주의자인 스텔라의 맥카트니의 개인 신념과 가죽 제품을 주로 생산하는 구찌 그룹 비즈니스 모델이 맞지 않아서 라는 설명이 무척 설득력이 있다. 실제로 스텔라는 fur free의 철학으로 자신의 컬렉션에 동물의 모피를 사용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우여곡절 끝에 스텔라 맥카트니와 구찌 그룹은 지분 50:50의 조인트 벤처를 설립하게 되고 십수 년 동안 파트너십을 유지했다. 그러던 것을 지난 2018년 3월 결별을 선언하게 된다. 17년 만의 결별의 이유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으나 스텔라 맥카트니가 브랜드를 바라보는 관점과 구찌 그룹의 경영 철학에 좁힐 수 없는 차이가 있었을 것이라는 해석이 가장 유력하다. 5)
후일담으로 2018년 당시 영국에서 석사 논문을 한참 쓰고 있을 때 스텔라 맥카트니와 Kering 그룹의 결별은 논문의 전체 주제를 뒷받침할 너무나 고마운 예시였다. 그러나 논문을 완성하고 제출할 무렵 스텔라가 다시 LVMH와 손을 잡는다는 기사를 접하게 된다.
논문을 수정할 수 없는 상황이라 일단 제출은 하였는데 LVMH는 지속 가능하고 친환경적인 브랜드 운영이라는 스텔라 맥카트니의 조건을 상당히 받아들인 것으로 추측이 된다.
여기서 교훈은 스텔라 맥카트니의 배짱이다. Kering 그룹과 조인트 벤처 Joint venture를 설립할 당시 지분 비율이 50:50으로 대등한 관계였다. 어지간해서는 이런 비율이 나오기 쉽지 않다. 누가 되었든 1%라도 더 가져가는 것이 비즈니스의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스텔라는 50%의 지분을 가지고 있었기에 의견이 조율이 어려울 때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결별을 선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스텔라 맥카트니 외에 얼마나 많은 브랜드가 이런 배짱 있는 계약을 할 수 있을까?
럭셔리 대기업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여러모로 장점이 많지만 위와 같이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이를테면 같은 그룹 안에서도 각각의 브랜드는 개별 브랜드 고유의 디자인이나 가격 구조 등의 차별화가 필요하며 매장 운영 원칙이나 IT/ERP 시스템, 마케팅 전략 그리고 인사 부문은 브랜드 기준에 맞추어서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6)
모든 브랜드가 럭셔리 대기업이라는 큰 우산이 필요할까?
만약 실력 있는 신생 브랜드가 자금력도 없고 네트워크도 없다면?
우선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다!
지금은 1인 미디어의 시대이고, 이커머스의 시대이다. 과거에는 보그 Vogue 편집장이 주목해야 스타덤에 오를 수 있다면 지금은 소설 미디어를 타고 타고 전 세계에 알려질 수가 있다.
매장을 수백 개 운영하려면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수십만 명의 알짜배기 팔로워를 보유하는 것은 그리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일례로 이슈가 되었던 더 현대 서울 지하 2층 MD의 경우 사실 무신사를 비롯한 이커머스 생태계에서 이미 검증된 브랜드의 집합이나 다름없다. 온라인에서 시작한 브랜드가 고객 접점을 확대하기 위해 오프라인에 진출한 것이다.
이는 스트리트 캐주얼에서만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온라인으로 럭셔리 브랜드를 구매하는 것은 더 이상 낯선 것이 아니며 요즘 시대에는 자신만의 철학과 차별적인 디자인이 있으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는 경로가 다양하다.
지금까지 ‘럭셔리는 도대체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라는 소주제로 5편의 글을 통해 럭셔리의 기원과 발전을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부터 중세 시대 사치 금지법, 파리의 오트 쿠트르 시스템 그리고 오늘날의 럭셔리 대기업까지 살펴보았다.
럭셔리는 인류의 탄생과 함께 시작하였고 우리의 삶과 떨어뜨려서 생각하기 쉽지 않다. 오히려 한 계단 더 나은 계층으로 올라가려는 인간 본성의 갈망과 맞닿아 있다. 7)
다음 시간부터는 보다 구체적으로 사람들은 왜 럭셔리를 구매하는지 그 본성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나누어 보자.
1) Kapferer, J., 2012b. Why luxury should not delocalize. European Business Review, 58-62.
2) Rigby, D./D’Arpizio, C./Kamel, M.-A. (2006): How More Can Be Better. Available at: http:// www.ft.com/intl/cms/s/0/4f86d8ec-f42f-11da-9dab-0000779e2340 [Accessed March 12, 2019].
3), 6) Ijaouane, V. and Kapferer, J., 2012. Developing Luxury Brands Within Luxury Groups – Synergies Without Dilution?. Marketing Review St.Gallen, 29 (1), 24-29.
4) Hamish Bowles, 스텔라 맥카트니에게 지속 가능한 패션을 물었다, (2020.5) https://www.vogue.co.kr/2020/05/26/스텔라-맥카트니가-이야기하는-지속-가능한-패션/ [Accessed August 17, 2022].
5) Ahmed, O., 2018. Why Stella McCartney Buying Back Her Business Is A Fashion Triumph. Available at: https://www.vogue.co.uk/article/stella-mccartney-buys-back-her-brand [Accessed April 27, 2019].
Chitrakorn, K., 2018. Kering Confirms Stella McCartney Split. Available at: https://www.businessoffashion.com/articles/news-analysis/kering-confirms-stella-mccartney-split [Accessed April 28, 2019].
Conti, S., 2018. EXCLUSIVE: Stella McCartney to Take Full Control of Brand, Buying Out Kering. Available at: https://wwd.com/business-news/business-features/exclusive-why-stella-mccartney-take-full-control-brand-buying-kering-1202639973/ [Accessed April 27, 2019].
6) Mellery-Pratt, R., 2014. Do Diffusion Lines Still Make Sense?. Available at: https://www.businessoffashion.com/articles/intelligence/diffusion-lines-still-make-sense [Accessed March 16, 2019].
7) Kapferer, J. and Bastien, V., 2012. The luxury strategy: break the rules of marketing to build luxury brands. 2nd ed. London: Kogan Page.
Photo12. https://stock.adobe.com/kr/images/london-giorgio-armani-store-exterior-in-knightsbridge-a-luxury-italian-fashion-brand/344925609?as_campaign=ftmigration2&as_channel=dpcft&as_campclass=brand&as_source=ft_web&as_camptype=acquisition&as_audience=users&as_content=closure_asset-detail-page&asset_id=344925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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