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의 민주화라는 양날의 검
앞서 설명했듯이 과거에는 신분의 제약과 경제적 사정 등으로 소수 엘리트 그룹만이 럭셔리를 향유했다. 그러나 오늘날은 평범한 사람들도 의지와 여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럭셔리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유연해진 계층의 이동과 산업 혁명으로 영향으로 대량 생산이 가능해진 덕분이다. 1)
또한 패션 산업도 장인이 제한된 수량을 한 땀 한 땀 만드는 맞춤복 중심에서 대량 생산이 가능한 기성복 시장 중심으로 변모했다. 물론 최상위 패션 브랜드는 업계에서 명성과 지위를 유기하기 위해 여전히 오트 쿠튀르와 패션쇼에 투자하기도 한다. 2)
여기서 ‘투자’라고 언급한 이유는 패션쇼에 필요한 옷을 만들고, 수십 명의 모델을 섭외하고 대도시의 큰 장소를 빌려 수십 차례 리허설 끝에 본 무대를 올리는 일은 실로 어마 어마한 일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과거 럭셔리는 귀하고 고가(高價)였지만 오늘날의 럭셔리는 조금 덜 귀해졌고 조금 덜 비싸졌다.
이러한 이유로 소득이 증가하게 되자 상류층 뿐 아니라 중산층에서도 여러 가지 이유로 럭셔리 상품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중산층의 정의는 대륙별로 국가별로 다르니 ‘아시아 국가’ 정도로 국한하자) 이들은 사실상 럭셔리를 일상으로 구매할 만큼 부유하지는 않지만 때때로 필요에 따라, 목적에 따라 지갑을 열기도 한다.
럭셔리 상품이 주는 높은 수준의 디자인과 품질에 대한 자기만족 때문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럭셔리 상품을 구매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이 바로 ‘럭셔리의 민주화’이다. 3)
럭셔리의 민주화 수준은 사회마다 다양하다.
카스트 제도가 엄격했던 과거 인도의 경우 상류층의 모습을 흉내 내고자 값비싼 럭셔리 상품을 구매할 수도 없었고 구매할 이유도 없었다. 반면에 중국의 경우 의복에서 조차 평등을 강조하던 인민복 일변도의 오랜 공산주의에서 벗어나 경제의 영역에서 경쟁과 자유를 허락하고 난 후 럭셔리 산업에서 가장 큰 시장으로 부상했다. 4)
럭셔리의 민주화는 이렇듯 중산층도 럭셔리 상품의 구매를 가능하게 했지만 한편 럭셔리의 여러 가지 특성들을 희석시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너도 나도 들면 그게 럭셔리인가? 너도 나도 들 때 내가 타인에게 어떤 차별적인 신호를 보낼 수 있을까?
또한 럭셔리 브랜드의 세컨드 라인(second line)을 예로 들어 보자. 디퓨전 라인(diffusion line)이라고도 하는데 우리말로 딱 떨어지게 설명하기 어렵지만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의 ‘보급판’ 컬렉션 정도로 설명이 될 것 같다.
여전히 고가(高價)이지만 이전보다는 접근이 가능한 가격대이다. 실제 많은 패션 기업들이 상류층과 중산층 사이의 빈 공간과 젊은 층을 공략하고자 너나 할 것 없이 세컨드 브랜드를 출시했다. 5)
조르지오 아르마니 (Giorgio Armani) 그룹의 엠포리오 아르마니 (Emporio Armani), 돌체앤가바나 (Dolce&Gabbana)의 디앤지 (D&G), 프라다 (Prada)의 미우미우 (MiiMiu), 마크제이콥스 (Marc Jacobs)의 마크 바이 마크제이콥스 (Marc by Marc Jacobs) 등이 그 예인데 이 중 MiuMiu와 Emporio Armani 정도가 성공적인 케이스로 분류되고 나머지 세컨드 브랜드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6)
심지어 D&G가 돌체앤가바나의 세컨드 라인이 아니라 줄임말로 인식한 고객들도 당시 종종 있었다.
세컨드 브랜드 등 라인 확장을 하고자 할 때에는 단순히 디자인만 추가로 출시하는 것이 아니라 백엔드(back end)에서 별도의 디자인팀과 마케팅팀 등이 필요하며 프런트 엔드(front end)에서는 기존 매장에 추가로 입점시키는 숍인숍 (Shop in shop) 전략이 아니라 별도의 매장과 영업팀을 구축해야만 한다.
단순히 기존 브랜드(Parent’s brand)의 후광 효과만 기대하고 대충 준비해서는 살아 남기 힘들다. 설령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보다 많은 고객층을 확보하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할지 모르겠으나 결국에는 브랜드의 진성성과 소비자의 브랜드에 대한 인식을 희석시키게 된다. 어설픈 노력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7)
버버리 (Burberry)의 예를 잠깐 들어 보자.
버버리가 한참 어수선할 때 프로섬 Prosum, 런던 London 그리고 브릿 Brit으로 라인을 세 개나 벌린 적이 있다. 그러나 그중 어떤 한 가지 라인 조차도 고객에게 특색 있는 브랜드 가치 제안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브랜드의 아이덴티티와 커뮤니케이션 전략만 혼란스럽게 했다. 8)
정리하면, 럭셔리의 민주화는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의 확장 전략 중 하나이고, 몇몇의 경우 캐시카우 (cash cow) 역할을 톡톡히 하기도 했으나 실패한 케이스가 더 많았다.
럭셔리의 민주화는 고객을 확장하는 측면이 있으나 기존 고객에게 희소성과 배타성을 떨어 뜨리고 결국에는 브랜드 충성도마저 감소하는 현상을 초래한다. 그러니 민주화는 정말 필요한 곳에서 하고 럭셔리는 가던 길을 도도하게 가자!
1) Benhamou, R., 2010. Sumptuary laws. In: V. STEELE, ed., The berg companion to fashion. Oxford; New York: Berg, pp. 661-663.
Hunt, A., 2010. A short history of sumptuary laws. In: G. RIELLO, and P. MCNEIL, eds., The fashion history reader: Global perspectives. London: Routledge, pp. 43-58.
2), 3) Catry, B., 2003. The great pretenders: The magic of luxury goods. Business Strategy Review, 14 (3), 10-17.
3) Brun, A. and Castelli, C., 2013. The nature of luxury: a consumer perspective. International Journal of Retail & Distribution Management, 41 (11), 823-847.
Thomas, D., 2008. Deluxe: how luxury lost its lustre. London: Penguin.
4) Kapferer, J., 2015. Kapferer on luxury: how luxury brands can grow yet remain rare. London, England; Philadelphia, Pennsylvania; New Delhi, India: Kogan Page.
5), 7) Fernie, J., Moore, C., Lawrie, A., et al., 1997. The internationalization of the high fashion brand: the case of central London. The Journal of Product and Brand Management, 6 (3), 151-162.
6), 7) Mellery-Pratt, R., 2014. Do Diffusion Lines Still Make Sense?. Available at: https://www.businessoffashion.com/articles/intelligence/diffusion-lines-still-make-sense [Accessed March 16, 2019].
8) Roberts, A. and Pronina, L., 2015. Burberry to Unify Brands Under One Label in Bid to Boost Appeal. Available at: https://www.businessoffashion.com/articles/news-analysis/burberry-to-unify-brands-diffusion-lines [Accessed March 16, 2019].
Photo 23. https://myspice.tv/spicefactare-diffusion-lines-really-worth-it/
Photo 24. https://www.businessoffashion.com/articles/intelligence/is-brand-consolidation-work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