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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ttingham Castle Aug 03. 2022

럭셔리는 도대체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2

사회적 계층, 패션 그리고 사치 금지법

패션 산업은 한 사회에서 계층 이동이 활발 때 발전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패션은 사회 계층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다시 말해 한 사람의 '옷 입는 방식'은 그 사람의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는 표식이었으며 사회적 지위를 얻는 과정에서 패션은 발전하게 되었다.

따라서 봉건 시대에는 사회적 계층이 한 사람의 ‘옷 입는 방식’을 엄격하게 규정하곤 했다. 예를 들어, 유럽의 경우 크게 왕, 성직자, 귀족 그리고 농노 등 4그룹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옷차림을 보면 신분이 금세 드러났다.


기워 입은 옷을 입어도 검소하거나 사연 있는 귀족일 뿐인 것이다. 또한 원단의 종류나, 의복의 길고 짧음, 색상 그리고 장식적 요소까지 사회적 지위에 따라 엄격하게 제한되었다.

유럽까지 갈 것도 없이 TV 사극만 봐도 비단옷을 입을 수 있는 사람이 정해져 있고 왕과 왕족만 쓸 수 있는 컬러가 정해져 있었던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런 환경에서는 패션 산업의 발전 기회도 극히 적을 수밖에 없었다. 1)


더욱이 이러한 여러 가지 규제와 제약도 부족했는지 급기야 ‘사치 금지법’을 제정하기에 이른다. 사치 금지법은 '먹는 음식에서부터 집에서 사용하는 물품까지 지나친 소비를 통제하는 것'이 사전적 의미이지만 사실 그 이상의 목적도 내포하고 있다. 이를 때면 패션을 통제하고, 사회도덕을 유지하며 공공의 질서와 사회적 구분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태리 베니스의 곤돌라를 예로 들어보자. 베니스는 도시 곳곳이 수로로 연결되어 있기에 그곳을 유유히 오고 가는 곤돌라는 베니스의 상징 중 하나이다. 그런데 그 곤돌라를 보면 하나 같이 비슷한 형태이며 색상은 모두 검은색이다. 사연인즉, 부유했던 15-16세기 베니스 공화국의 귀족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곤돌라에 세밀한 장식을 얹고, 비싼 프릴을 달고, 요란스러운 색상을 칠하는 등 사치스럽게 장식하고 각종 사교 모임에 다녔다고 한다.

지금의 럭셔리 세단 정도 느낌이 아니었을까? 그러던 것을 보다 못한 정부 당국에서 일종의 사치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개인의 모든 곤돌라에 장식을 제한하고 까맣게 칠하도록 한 것이 지금의 우리가 익숙한 곤돌라의 모습이다. 2)


이와 같이 지나치게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는 귀족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전제 군주가 귀족들의 사치를 금지한 경우도 있었으나 본질적으로 사치 금지법은 주로 서민들의 옷차림과 생활에 대한 규제가 주된 목적이었다.


사치 금지법은 유럽뿐 아니라 과거 아시아 국가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위에서 언급한 사극의 예와 같이 중국의 경우 황금은 황제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하급 관리나 평민들은 황금을 연상케 하는 노란색 옷은 입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사실 패션에 자유를 준다고 해도 당시에는 금장식과 실크, 레이스 그리고 자수 등은 도덕적, 사회적 이유를 떠나 경제적인 이유로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끼니를 걱정하는 마당에 비단옷이 웬 말인가!!


한편, 산업혁명 이전에는 모든 것이 리미티드 에디션일 수밖에 없었다. 장인이 혼자 또는 가족단위로 운영하는 소규모 아뜰리에에서는 생산할 수 있는 수량이 정해져 있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제한된 사람만이 해당 상품을 구매할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산업혁명 이후 상품을 더욱 풍족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되자 상류층들은 보다 더 탐닉적이고 과시적인 소비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이 시기에는 정치, 경제 권력이 부르주아로 일컬어지는 부유한 신흥 상인 계급으로 이동했는데 이는 럭셔리의 새로운 소비자의 등장을 의미한다.


새로운 자본주의 계급의 등장은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사회적 위계와 귀족의 권력과 지위를 도전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축적한 부(富)를 통해 사회적인 신분 상승을 갈구했으며 상류층의 옷차림과 라이프 스타일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패션의 시작으로 간주될 수 있는데, 드디어 럭셔리를 귀족 등 특정 계층만이 아닌 지불 여력만 되면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때가 시작이 된 것이다. 3)


정리하면, 럭셔리한 라이프 스타일은 한 사회의 권력의 상징이었으며 이러한 특별한 삶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제한된 시절이 있었다. 또한 상류층(왕, 성직자 귀족 등)은 사치에 대한 소비를 통제함으로써 사회적 위계를 보호하고자 했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신흥 자본 계층으로 부르주아가 등장했고, 엄격하고 견고했던 사회적 계층은 서서히 사라져 갔다. 그런 후에야 패션의 발전이 시작된 것이다. 4) 그리고 이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혁명은 럭셔리 패션 산업 발전에 길을 놓게 된 것이다.


필자가 영국에서 럭셔리 패션 브랜드 석사 과정에 있을 때 바로 옆에 패션마케팅 석사를 하는 친한 영국 친구가 있었다. 스산한 계절이 돌아와 코트를 하나 사야 겠다고 검색을 하는 친구에게 버버리가 세일 중이라고 이야기해 주자, 본인은 워킹 클래스(working class) 이기 때문에 버버리는 사지 않겠다는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는 옷차림만 봐서는 부(富)의 정도가 가늠이 어렵지만 영국에서는 어느 정도 가능하다. 영국은 크게 상류층(upper class), 중산층(middle class), 노동자 계층(working class)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각 계층별 차이가 상당해서 각자 나름 행복하게 살뿐 분에 넘치게 소비를 하며 차상위의 패션과 라이프 스타일을 닮고자 하는 경우를 발견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나온 말이 상류층은 작위를 물려주고, 중산층은 부(富)를 물려주고, 노동자 계층은 축구 클럽 회원권을 물려준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이유로 한 때 패션의 시작이었던 런던이 파리와 밀란 그리고 뉴욕에 조금씩 밀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이야기 하지만 럭셔리 패션 산업은 사회적 이동이 유연하고 경제적 성장이 가능한 환경에서 발전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한국이 글로벌 럭셔리 패션 브랜드의 성패를 가늠하는 시험대(test bed)인 것도 이해가 된다.


1) Entwistle, J., 2015. The fashioned body: fashion, dress and modern social theory. Second edition. Hoboken; Cambridge: Polity.

Medvedev, K., 2010. Social class and clothing. In: V. STEELE, ed., The berg companion to fashion. Oxford; New York: Berg, pp. 645-647.

2) 김선진, 앞으로도 건재할 영원한 베네치아의 상징, 곤돌라, 2022.01. 핸드메이커 Available at: http://www.handmk.com/news/articleView.html?idxno=12033. [Accessed August 2, 2022].

3) Benhamou, R., 2010. Sumptuary laws. In: V. STEELE, ed., The berg companion to fashion. Oxford; New York: Berg, pp. 661-663.

Hunt, A., 2010. A short history of sumptuary laws. In: G. RIELLO, and P. MCNEIL, eds., The fashion history reader: Global perspectives. London: Routledge, pp. 43-58.

4) Kapferer, J. and Bastien, V., 2012. The luxury strategy: break the rules of marketing to build luxury brands. 2nd ed.. ed. London: Kogan Page.

Photo 9. https://25hournews.com/news/jennifer-lopez-and-ben-affleck-left-venice-in-a-dolce-gabbana-gown-for-a-gondola-shoot-9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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