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귀국보고전: 코디 최, 이완
아르코미술관을 가느라 오랜만에 마로니에공원을 가로질러갔다. 공원 중앙에 '서울대학교 터'라는 표지석이 있다. 언제 생겼는지 낯설다. 대학로를 상징하는 건물이라면 아르코극장, 샘터사옥 등 붉은벽돌 건물들이다. 아르코미술관도 마찬가지다. 모두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했다. 마로니에공원 뒤에 버티고 선 아르코미술관은 거의 들어가본 기억이 없다. 주변에 잠시 머물거나 1층에 카페 정도 가봤을까. 그것도 아주 오래전 기억이다. 적어도 90년대 초에도 이 오습에서 그리 다르지 않았다.
전시는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귀국보고전' <카운터밸런스: 돌과 산>. 코디 최와 이완 작가 전시가 각각 한 층씩 구성되어 있다. 지하 제1전시실의 코디 최 작품들은 패러디와 프로이트의 '이종교배' 같다. 뭉크의 <절규> 밑에 "SHIT"(똥)이란 낙서가 있고, <생각하는 사람> <다비드 상> 등이 희화화된다. 대형 네온 설치 <베네치안 랩소디>는 마카오와 라스베이거스의 퓨전. 하지만 지금 시점에선 낡은 컨셉이다.
이완 작가는 주로 리서치 기반의 다큐멘터리적 작업을 선보인다. '미스터 K'는 좁은 복도 한쪽 벽면에 한국 현대사를 고스란히 겪어온 한 평범한 인물의 일대기를 사진과 소품들로 재현하고, 맞은편 벽면엔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담긴 신문 스크랩 등으로 채워졌다. 역사의 눈으로 시각화한 일종의 '소시민 평전'이다. 이 미스터 K라는 실존인물의 일대기를 담은 사진 1412장이 단돈 5만원에 팔렸다는 일화는 극적이다. 이런 리서치 과정과 아카이브의 촘촘한 디테일이 컨셉 자체보다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방의 사방 벽면을 수백 개의 원형 시계로 채운 고유시(proper time>는 시계 숫자만큼의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그들을 상징하는 저마다의 시간을 재현한다.(당연히 시곗바늘 돌아가는 속도가 다 다르다.) <메이드 인>은 아시아 10개국을 탐방하여 만든 다큐(나라별로 서로 다른 TV화면으로 보여준다). 한 끼의 아침식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추적했다는데 실상 각 나라의 산업화, 근대화 과정을 압축해놓은 역사, 문화 다큐라 할 만하다. 오랜 기간 탄탄한 리서치를 엿보게 한다. 벽면 한쪽에 무심하게 걸려 있는 그림 <무의미한 것에 대한 성실한 태도>는 제목도 그림도 묘하게 끌린다.
예술감독 이대형은 기본적으로 세대론의 관점에서 전시를 구상했다 미스터 K가 할아버지 세대, 1961년생인 코디 최가 아버지 세대, 1979년생인 이완이 아들 세대다. 명확해서 좋기는 한데 이렇게 진부하기도 쉽진 않겠다. 남성 중심 서사라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전시 주제의 '돌과 산'은 결국 개인과 사회(역사)의 은유인 셈인데 21세기의 복고풍 낭만주의를 보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전시 틀과 상관없이 이완의 작업은 상당히 의미심장하고 재미도 있다.
아르코미술관 제2전시실에서 나와 반층을 올라가면 아카이브 겸 휴게실이 있다. 넓은 창으로 마로니에공원 전경이 내다보인다. 이런 곳이 여기 숨어 있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