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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파 Jul 19. 2021

좋좋소 리뷰

영세 중소기업의 현실을 풍자한 웰메이드 웹드라마


이야 이거 정말 명작이네. <미생>보다 훨씬 좋소 좋소.


1. 디테일한 현실 고증과 그걸 잘 살려낸 깨알 같은 연출과 연기. 처음 볼 땐 놓친 부분이 있어서 댓글 보고 다시 확인한 뒤 "이야~"하고 탄성을 지른 장면이 꽤 있었다. 작은 소품, 미세 표정, 복선 깔린 대사 등등 디테일에 대한 집착이 장난 아니다. 


2. 비루하고 아픈 현실을 담담하게 풀어내면서도 유머와 따뜻함을 잃지 않는 스토리텔링. 엔딩 씬에서는 눈물이 다 나더라. 엔딩도 좋소식이라 더 감동적... 


3. 선악으로 구분지을 수 없는, 현실적이면서도 입체적인 캐릭터들. 일부 등장인물들은 전문 배우가 아니라 더욱 놀랍다. 메쏘드 연기인가 생활 연기인가? 전문 배우들의 연기는 정말 훌륭한데, 특히 조충범 찐따 연기와 백차장 진상 연기는 그 깊이가 장난이 아니야. 진짜 좆소에서 데려온 줄 알았네. 


다음 시즌 나오면 유료 결제라도 해서 볼 텐데... 너무 아쉽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이니 이 작품을 안 본 사람들은 절대 읽지 마시길.
















마지막화 명장면.


사직서를 내고 사장이랑 한 잔 하면서 속마음을 털어놓는 이과장



회사를 오래 다녀본 사람, 특히 작은 회사에서 오래 근무한 사람들은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할 거다. 회사에서 개처럼 일하면서 온갖 좆같은 일들을 다 겪다 보면 회사 그리고 사장에 대한 애증이 쌓이게 되거든. 그러다 보면 자연히 의리를 지킨다고, 지켜야 한다고 느끼게 된다. 열정을 바쳐 일한 사람일수록 그렇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그 회사에 바친 내 세월들이 너무나 초라해지기 때문이지. 돈으로 환산해봐야 꼴랑 몇억일 테고, 그렇다고 뭐 대단한 명예를 얻은 것도 아닐 테고 말이야.


하지만 사장은 세계관 자체가 다르지. 자본주의 지옥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직원을 유닛 또는 자원으로 보는 게 당연한 입장. 오너라면 거의 누구나 그런 마인드일 수밖에 없다.



예전에 나도 비슷한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기에 이 장면이 무척이나 가슴 아팠다. 그리고 제작진의 통찰력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위 장면에서 정사장은 화를 내거나 반박하는 게 아니라 "대체 뭔 소리야?"라는 반응이잖아. 그런 감성이 애초에 이해가 안 되는 거다. 회사 오너와 직원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생각을 좀 해봤거든?


결국 착취하는 쪽과 착취당하는 쪽의 차이인 거야. 직원은 노동력을 착취당하기도 하지만 자유의지 또한 매일 착취당한다. 내가 힘들 때도 일어나서 출근해야 하고, 아무리 기분이 좆같은 날도 꾸역꾸역 야근을 해야 하고, 주말에도 급한 일이 있으면 여친 기념일이든 애들 생일이든 나가서 일을 해야 하잖아? 나도 여행 갔다가 여행지 도착한 직후 상사의 전화를 받고 바로 다시 서울로 올라온 적이 있다. 새벽 퇴근 아침 출근 뭐 이런 거야 부지기수였고. 평일 저녁 늦은 시간이나 주말에 예약했다가 날린 공연 입장료만 수백만원이지. 심지어 아파서 수술 기다리고 있는데도 일 독촉을 받은 적이 있다. 


사장에게는 자신의 의지를 실현한다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직원에게는 그런 게 없다. 내 생각과 다르더라도 결국 사장을 따라야 하거든. 즉 노동의 정도와 방향성이라는 이중적 차원에서 자유의지를 착취당하고 있는 거다. 몰입의 즐거움? 영원히 일에 몰입해 있을 순 없다. 몰입에서 빠져나오고 나면 누구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면 결국 직원에게 남는 의미는 자신의 레벨업 아니면 의리다. 근데 전자에 관심이 많은 스타일은 이직을 많이 한다. 능력만 있다면 그게 몸값 높이는 데 유리할 수 있거든. 반면 후자 스타일은 그러지 못하고 회사의 비전이나 인간관계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착취당하는 주제에 의리 따위를 진지하게 믿는다면 결국 돌아오는 것은 가혹한 칼날뿐이지.


한편 사장은 반대로 자기가 배신당했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사장은 자신의 욕심, 좀 더 멋있게 표현하자면 회사의 비전을 직원들이 받아들이는 게 당연하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그러니까 남들도 그래야 할 거 같은 거지. 그래서 실제로는 자신이 직원들의 자유의지를 착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의리를 지키는 개는 있어도 의리를 지키는 주인은 드물다. 개는 목줄에 의미를 부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트라우마 먹고 시작하는 거나 마찬가지. 하지만 주인은 그럴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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