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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파 Aug 29. 2021

댄 시먼즈의 [일리움 + 올림포스] 시리즈 스토리 해석

문학의 본질에 대한 감동적인 상상력

B5 사이즈로 무려 2천 페이지가 넘는 <일리움>과 <올림포스>.  


결말이 다소 아쉽긴 하지만, 상당한 수작이다. 뭐 벌여논 판의 규모를 감안하면 이 정도면 그럭저럭 잘 수습한 편이긴 한데 말 그대로 너무 평이하게 수습된 것 같다. 좀 더 막장 결말로 치닫았으면 좋았을 텐데. 


특히 인간 의식에 대한 탐구와 브레인 홀의 관계에 대해 좀 더 천착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뭐 하드 SF라기보다는 스페이스 오페라적 성격이 강한 작품이니 그것까진 무린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메인 아이디어 자체는 좀 진부한 감이 있다. 하지만 대하소설의 묵직함과 박진감이 그런 단점을 벌충하고 남음이 있다. 

작가가 대충 때우고 넘어가는 부분이 의외로 많아 미루어 짐작하는 재미가 쏠쏠하긴 하지만, 좀 너무하다 싶은 부분들도 있다. 예를 들자면 


1) 세테보스의 마지막 행마 (그저 어이없음)

2) 헤파이스토스의 마지막 서비스 (너무 관대함)

3) 아테나의 마지막 당부: "...죽이고 ... 치료하고 나면 ... 모두 파괴하라"는 뭐야? 의미없는 언급.

(작가의 실수? 혹은 "양자역학적 불확정성"에 대한 유사-경험을 독자의 의식 속에 구현하기 위한 문학적 장치인가?)

4) 오딧세우스(노만)의 과거에 대한 설명 전무 



몇 가지 추가로 아쉬운 점. 


1. <올림포스>는 번역이 개판. 영타가 찍혀 있는 곳도 있는 걸로 봐서 1차 교정을 봤는지조차 의심스러움. 포보스 / 포에보스와 같이 고유명사를 다르게 표기하는 부분이 있는 걸로 봐서 역자의 졸자들이 적당히 나눠서 번역한 게 아닌지 의심스러움. <일리움> 번역은 괜찮았음 


2. 이거 들고 다니면서 읽느라 오른쪽 어깨에 담 걸렸다. 하먼의 고통을 일부 공유했다고 해야 하나. 옆으로 눕지도 못하고 오늘 잘 때 고생 좀 하겠구나. ㅠ.ㅠ  








[주의] 여기서부터는 강력한 스포일러 포함           













기본적인 설정은 모두 이해하리라 믿는다. 편의상 호켄베리가 교수로서 사망했던 지구가 있는 우주를 우주0이라고 하자. 제우스는 우주0과는 다른 평행우주(편의상 우주1이라고 하자)로 이주/도주한 후기 인류들 중 한 명이다. 트로이 전쟁이 벌어지는 곳은 우주1의 지구다. 고전-스타일 인류(데이먼, 하먼, 에이다 등)는 후기인류들의 차원이동 실험을 위해 사육되었던 일종의 몰모트에 불과하다. 그들 이전에 "진정한" 고전 인류들이 있었으나 이들은 대부분 최후의 전송 때 칼라비-야우 끈 형태로 최소화되어 타키온 빔에 실려 쏘아올려졌다. 유일한 예외는 새비다. 


<올림푸스> 중반쯤, 이오의 오르푸가 만무트에게 오월 컨소시엄의 놀라운 발견을 전달하는 장면을 돌이켜보자. 우주1에서 화성의 올림포스 몬스에 들어앉아 신놀이를 하는 후기 인류와 그의 후손들은 우주0의 화성을 우주1로 통째로 바꿔치기했다. (화성의 모습이 갑자기 바뀌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즉 우주0의 지구 궤도링에 살던 후기인류들은 우선 우주0의 화성을 테라포밍하여 살다가 차원이동 연구를 끝마치고 우주1로 차원이동하면서 아예 화성이라는 행성 전체를 바꿔치기 한 것이다. 물론 모라벡들은 우주1의 목성의 위성들에서 온 녀석들이다. 오르푸와 만무트는 일반적인 우주선을 타고 올림포스의 신들에게 접근하고 번개를 맞고 추락하므로. 


제우스만이 죽을 때 이코르와 붉은 피를 함께 쏟았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또한 정확히 어느 부분이었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제우스가 올림포스의 다른 신들을 꾸짖으며 자신만이 1세대에 속함을 암시하는 장면이 있다. 제우스에게 신성을 부여한 것은 누구인가? 왜 이들은 스콜릭들을 파견하여 일리아스의 스토리와 (우주1에서의) 실제 전쟁 상황이 어긋나고 있지 않은지 감시하는가? 세테보스는 왜 나타났다가 소리없이 사라졌는가? 이 모든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해석을 생각해냈다. 


모든 퍼즐을 푸는 키는 바로 "인간의 의식에 대한 탐구가 양자적 차원이동을 가능하게 한 것이 아닐까?"라는 오르푸의 가설이다. 오르푸야말로 모든 사태의 진상을 거의 꿰뚫어보고 있다. 작품 내에서는 지나가는 얘기처럼 잠깐 언급되지만, 여기에 모든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이다. 아주 간단히 말하자면, 천재적인 한 인간의 상상력이 하나의 세계(평행우주, 차원)를 실체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좀 황당한 집단-유아론 또는 유심론적 넌센스처럼 들릴 수 있지만, 인간의 의식이 상상할 수 있었던 세계만이 브레인홀을 통해 열릴 수 있다는 것. 


따라서 신들이 자신의 우주1의 지구에서 벌어지는 트로이 전쟁의 추이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일치하는지 감시했던 이유는, 그들이 유래했던 우주0와의 연결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음을 추론할 수 있다. 실제로 <올림포스>에서 역사의 왜곡 정도가 심각해지자 우주1의 화성에 열려있던 마지막 브레인홀이 닫혀버린다. 아킬레스가 펜테실레이아와 사랑에 빠진 바로 직후임에 주목하라. 이 사태로 인해 일리아스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이 순간 아킬레스는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에 분노하여 극강의 아리스테이아를 보이는 영웅으로 죽기보다는 오래오래 바가지나 긁히며 사는 보통 사람으로 운명지어져 버렸고, 때문에 우주0과 우주1은 통약불가능한 세계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보면 제우스가 브레인홀이 완전히 닫힌 후 (양자적 불안정성이 극대화된 시점에서) 스스로를 진정한 신, 전능한 절대자로 자부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단순히 반대 세력의 우두머리 헤라를 처결했기 때문이 아닌 것이다. 우주0과의 연결이 완전히 끊겼기 때문에 프로스페로나 세테보스, 고요나 그 밖의 잡다한 신 또는 신적 권능을 가진 자들이 자신을 방해할 수 없다고 결론지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제우스가 간과한 두 요소가 있다. 바로 호켄베리와 오딧세우스다. 호켄베리는 <오딧세이아>를 아는 정신이며 동시에 우주1에 존재한다. 그리고 오딧세우스의 우주0으로의 여행은 <오딧세이아>의 세계를 완성한다. (디테일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이야기를 구성하는 상상력의 본질은 동일하므로) 마치 제우스의 우주1로의 여행이 <일리아스>의 세계를 완성했듯이. 덕분에 우주1->우주0으로의 최후의 전송이 가능한 것이다. 


우주0에서 시코락스가 동시에 키르케이고 프로스페로와 시코락스가 투쟁을 벌이고, 또 칼리반이 세테보스를 숭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전제한 존재론이 철저하게 유심론적임에 유의하라. 차원 이동은 이동하는 세계의 원인인 동시에 결과다. 바로 세익스피어광인 만무트가 우주0로 이동하기 때문에 이 모든 난장판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우주0는 호켄베리와 오르푸와 오딧세우스의 상상력이 정합적으로 공존하는 우주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상상력의 근원은 세익스피어와 호메로스에 있다. 이렇듯 한 세계는 상대 세계의 존재자의 의식에 의해 그 본질이 결정되는 것이다. 


인간 의식과 문학의 본질에 대해 이보다 더 감동적인 해석이 있을까? 


씨바..이렇게 해석하고 보니 세기의 명작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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