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의 타임슬립 - 필립 K. 딕

인간 정신의 구조적 한계를 응시하는 시간의 본질

자폐증에 대한 독특한 해석이 돋보였다. 

어찌 보면 알프레드 베스터의 <파괴된 사나이>와 비슷한 느낌인데, 그보다는 결말의 충격이 좀 덜한 대신 철학적 깊이는 더하다. 사실 <파괴된 사나이>를 읽은 지 오래되어서 결말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만, 좀 더 도발적이었던 것 같다. (다시 봐야지) 

이 작품은 훌륭하다. 의식의 흐름을 따르는, 나아가 의식과 의식이 감응하여 상호작용하는 양태를 유감없이 드러내는 서술 방식을 통해 구현되는 분열증적 추체험은 이 소설의 백미! 다만 이야기가 끝나는 지점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될 것만 같은 묘한 아쉬움이 남는다. 좋게 말하면 여운이고 뭐. 제목은 화성의 타임슬립이지만, 사실 타임슬립이 액션 아이디어 상의 주요 요소는 아니다. 인간 정신의 구조적 한계와 시간의 본질 사이에 모종의 상관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불길한 암시. 이것이 더 중요하다. 열린 엔딩은 인간의 인식론적, 존재론적 조건에 대한 명상을 유도한다. 

시발 내 의식이 언제나 시간의 시발점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의식하면 시간 당하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