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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파 Sep 11. 2021

바츠 해방 전쟁 - 한국형 디지털 스토리텔링

이제는 떠나가버린 리니지의 추억

얼마 전 케이블에서 <영원한 제국>을 방영해주더라. 안성기, 조재현, 김혜수 등 쟁쟁한 배우들이 나왔었지. 간만에 다시 보니 재미있더라고. 



이인화 씨의 정치적 입장에는 공감할 수 없지만, 예전 그가 쓴 <영원한 제국>은 정말 재미있게 읽었더랬다. 중학교 땐가 시험 전날 하룻밤을 꼬박 새워 다 읽을 정도로 흡인력이 짱이었지. 


이후 문단에서 사라졌나 했더니 한동안 디지털 스토리텔링 관련 연구(?)를 하셨나보다. 


이 책은 이전 회사에서 업무용 참고도서 명목으로 구입한 것인데, 의외로 상당히 재미있다. 리니지2 세계의 대혁명 사건이라 할 수 있는 <바츠 해방 전쟁>의 전말을 매우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이인화는 이 사건을 디지털 시대 스토리텔링의 범형으로 본다. MMORPG 유저들 간의 참여와 상호작용을 통해 지속적으로 발전해가는 스토리! 그런데 이게 전혀 과장이 아니다. 


바츠 해방 전쟁의 스토리를 이해하려면 우선 리니지라는 게임 세계의 속성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 간단히 말해 리니지 게임 세계는 조폭 혹은 자본주의의 세례를 받은 절대군주 시대를 매우 성공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하겠다. 단적인 예를 들면 해당 지역의 성을 접수한 혈맹(조직)은 지역 내에서 거래되는 아이템 매매 대금의 일부를 세금으로 자동 징수할 수 있다. 세율도 지배 혈맹에서 결정하는 식이다. 또한 거대 혈맹의 조직원이 일반 허접 캐릭을 길거리에서 살해하는 것은 이야기거리도 안 되는 게 현실. 


바츠 해방 전쟁의 전개는 꽤나 복잡하지만, 간단히 말하면 압도적 무력(조직원들의 레벨과 숫자, 아이템 물량이 결정)으로 폭압적 통치를 펼치던 3대 혈맹에 맞서 일반 양민 유저들이 분연히 일어난 민중 대봉기 사건이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사건들의 연쇄로 인해 각본없는 드라마가 탄생하게 된다. 


전쟁발발부터 혁명군의 승리와 타락, 이후 이어진 권력 투쟁에 수반된 전쟁까지를 포함한다면 무려 10개월 이상 전개된 사건. 자세한 내용은 책을 참조하시길. 한 가지만 간단히 소개한다면 바츠 해방 전쟁의 백미, "내복단의 참전과 혁명군의 승리"가 될 것이다. 


내복단은 뼈단검에 내복만 입은 10레벨 전후의 허접 캐릭터들로 구성된 집단. 이들은 압도적 열세에 있던 혁명군이 거대 지배 혈맹들로부터 승리를 쟁취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하게 된다. 


지배 혈맹은 대개 70레벨 전후의 고수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들의 공격력은 1,000~1,300 포인트에 이른다. 반면 내복단 개개인의 공격력은 5~10 포인트에 불과. 게다가 공격속도 또한 큰 차이가 있어 애초에 게임이 되지 않는 싸움이었다. 하지만 절정고수 곽정과 황용이 개방의 거지떼들에게 결국 패퇴하였듯 물량에는 정말 장사가 없는 법. 수천의 내복단은 끝없이 죽어가면서도 적들에게 심리적, 물리적 타격을 입혔고 (일설에는 내복단의 무수한 시체가 적들의 이동력을 저하시키기까지 했다고) 결국 혁명군은 승리, 바츠 서버는 해방의 날을 맞게 된다. 


집단 지성에 의한 놀라운 전술적 움직임, 혁명군의 격문이나 창작시와 같은 창발적 스토리텔링 요소의 발견 등 재미있는 포인트가 많이 있다. 리니지 폐인으로 몇 개월 살았던 사람으로서 무척이나 감동적으로 읽었던 책. 


그래서 지금 엔씨와 리니지의 꼬라지를 보고 있자면 더더욱 가슴이 아프다. 그것은 돌아올 수 없는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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