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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파 Sep 19. 2021

어둠의 속도 - 엘리자베스 문

그저 그렇게 있는 것은 없다

초기 개입으로 인해 어느 정도의 사회생활이 가능하지만 여전히 '다름'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 자폐인 루 애런데일의 이야기다. 플롯은 예측 가능하고 특별한 반전도 없기에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SF임에도 상당히 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이 작품은 플롯 상의 기교보다는 독특한 캐릭터에 중점을 두고 있다. 즉 작가 엘리자베스 문은 관점에 있어서의 낯설게하기 기법을 통해 우리의 일상이 자폐인들에겐 얼마나 다르게 또 얼마나 동일하게 다가올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데, 독자들은 처음엔 자폐인 화자의 어색한 문체에 당혹감을 느끼겠지만 이내 자폐인의 시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더욱 큰 당혹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실제로 소설을 읽는 동안 패턴 인식에 보다 민감해지고 사회적 신호들에는 보다 둔감해진 나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원래부터 자폐적 기질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분위기를 잘 타는 성격인 걸까? 


세상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용서하지 않는다. 그런데 몰이해의 속도는 이해의 속도보다 빠르기 때문에, 사회적 소수자들(예컨대 동성애자, 사회부적응자, 장애인 등)에 대한 억압과 폭력은 예정된 것이다. 




142쪽 
"어둠이 얼마나 빠른지 궁금해한 적 있으세요?"
"으음?" 최근 논문의 중간 부분을 더 치밀하게 써야 할지 고민하던 톰이 주의를 돌렸다.
"빛의 속도는, 진공상태에서 빛의 속도에는 값이 있어요...... 그렇지만 어둠의 속도는......"
"어둠에는 속도가 없어." 루시아가 말했다. "그저 빛이 없는 곳일 뿐이지ㅡ부재(不在)에 붙인 명칭일 뿐이야."
"저는... 저는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톰이 백미러를 살짝 보았다. 루의 얼굴은 조금 슬퍼 보였다. "어둠이 얼마나 빠를지 생각해 봤어?" 톰이 물었다. 루시아가 그에게 시선을 보냈으나 모른 척 했다. 루시아는 그가 루와 그의 단어놀이에 빠질 때마다 걱정했지만, 톰은 딱히 해가 될 일이 아니라고 보았다.
"어둠은 빛이 없는 곳이죠. 빛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곳이요. 어둠이 더 빠를 수도 있어요ㅡ항상 먼저 있으니까요."
"혹은 어둠에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을지도 모르지. 먼저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 운동이 아니라 장소로."
"어둠은 실체가 아니야. 그저 빛이 없는 상태를 일컫는 추상적인 개념일 뿐이야. 움직임을 가질 수가 없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빛도 어떤 추상적인 개념인 셈이지. 그리고 금세기 초에 빛을 멈추기 전까지 사람들은 빛이 운동, 입자, 파동으로만 존재한다고 말하곤 했어."
목소리에 날이 서 있어서, 아내가 얼굴을 찡그리고 있음을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빛은 진짜야. 어둠은 빛이 없는 것이야."
"가끔 어둠은 어둠보다 어두운 것 같아요. 더 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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