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와 사유에 의한 순간이동
알프레드 베스터의 소설 <타이거! 타이거!>. 전체적으로 <파괴된 사나이>보다는 좀 못한 듯 싶었지만, 나름대로 재미있었고 또 잘 쓴 소설이었다.
특히 악당이 주인공인 게 아주 맘에 들었다. 재치있는 대화, 다소 헛점은 보이지만 흡인력 있는 구성,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강한 박력에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피카레스크 풍의 미스테리 사이버 펑크 소설(피카레스크 구성은 아니다)...25세기의 몽테크리스토 백작...뭐 중후반까지는 충분히 그런 수사를 붙일 수 있는 괜찮은 소설이었다.
다만 결말이 조금 약했다.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연결시켜 복잡하게 얽힌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나아가 단순한 오락소설의 한계를 넘어서 독자들에게 감동과 여운을 주고자 한 작가의 의도는 이해하겠지만, 결말이 너무 뜬금없고 작위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심지어 계몽적이기까지. 개인적으로는 좀 더 강렬하게 밀어붙였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타이거! 타이거!>는 충분히 읽어볼 만한 소설이다. <존트:의지와 사유에 의한 순간이동>이라는 황당한 배경설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이야기의 전개는 상당히 논리적이다. 예를 들어 존트가 일반화됨에 따라 구시대의 교통수단이나 통신수단에 대한 수요가 급감하고, 그로 인해 내행성연합에 원료와 시장을 제공해왔던 외위성동맹이 무역 단절을 선언하고, 결국 행성연합 간 전쟁이 발발한다는 배경 시나리오는 제법 그럴싸하다. 그밖에도 주인공이 여러 문제상황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해결해나가는 장면에서의 설명은 하드SF의 기본을 잘 지키고 있다.
이하 약간의 스포일러 포함
또한 플롯의 상징성도 마음에 든다. 이 이야기는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발단부(노매드 호에서의 극한상황과 탈출) - 전개부(구르프 마르테르 병원 수감과 탈출) - 절정부(포마일로서의 새 삶과 쫓고 쫓기는 추적전, 그리고 사랑) - 결말부(파이어의 공개)
주인공 포일은 각 단계에서 다음과 같이 변화한다. 짐승 - 인간(계몽된 짐승) - 인간의 가면을 쓴 짐승 - 짐승의 가면을 쓴 인간. 재미있는 것은 각 단계에서의 포일의 행동은 내면의 성격과 정반대의 양상을 띤다는 것이다. 발단부; 노매드 호에서 '짐승'인 포일은 매우 이성적인 방법으로 위기에서 벗어난다. 전개부; 병원에서 '인간'이 된 포일은 매우 원시적인 방법으로 병원을 탈출한다. 절정부; 이제 포마일이라는 인간의 가면을 쓴 짐승, 포일은 무척이나 교활하게 말하고 행동한다. 결말부; 깨달음을 통해 인간성을 회복한 포일은 '짐승'의 방식으로 세상을 향해 외친다.
작가는 인간의 이중성을 풍자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이런 플롯과 더불어, '타이거'는 정말 멋진 발상이다. 이 '타이거'는 극 전체에 강한 박력을 불어넣어 줌과 동시에 주제와도 긴밀하게 연관된 설정인 것이다.
포일이 노매드 호의 "관"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장면의 설정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결말에 조금만 더 신경을 썼다면 더 감동적인 작품이 될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이런 류의 소나타 형식 구성에 약한 것 같다. <토먼트>도 그렇고... 아무튼 이 소설에 평점을 매긴다면 10점 만점에 7.9점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