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파 Sep 20. 2021

우연의 음악 - 폴 오스터

우연이 결코 허락하지 않는 것

폴 오스터의 1990년 작. 폴 오스터의 소설은 쉽게 읽히는 편이다. 하지만 행간의 의미를 읽는다면, 그저 쉽게 읽히는 작가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의 작품에는 어려운 과학기술이나 역사적 사건이 배경지식으로 활용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그의 소설은 지적이다. 그것은 그가 지금까지 수많은 작품들에서 단 하나의 주제, 우연이라는 화두만을 솔직하면서도 세련된 문체를 통해 천착해 왔기 때문이리라. 


이 작품 <우연의 음악>은 아예 제목에 "우연"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 우연은 삶의 부조리성에 붙여진 다른 이름이다. <Dice Man>이라는 소설이 있다. 주사위를 던져서 모든 행동을 선택하는 한 정신과 의사의 이야기다. 이 소설, <우연...>의 주인공 나쉬 또한 자신의 삶을 철저히 우연에 내맡긴다. 마치 떠다니는 부표처럼 자유로운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우연으로 점철된 그의 삶에 진정한 자유란 없다. 애초에 삶은 인간에게 부조리한 자유를 허용하고 있음에도 인간이 추구하는 자유란 조금 다른 자유, 의미로부터 소외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의미는 언제나 고정점을 매개로 하여 발생한다. 우연의 연쇄 속에서는 경험을 통합하는 고정점을 찾을 수 없다. 설령 그런 것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우연의 음악은 그것을 파괴할 것이다. 나쉬의 마지막 선택은, 아멜리 노통브의 <적의 화장법>에서 주인공이 "자유! 자유! 자유!"를 외치며 했던 행동만큼이나 강렬한 제스처로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31쪽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그의 모험은 자가당착에 빠져들고 있었다. 자유를 누리려면 돈이 있어야 했지만, 한 몫의 자유를 사기 위해 돈을 쓸 때마다 그는 똑같은 몫으로 자신을 부정해야 했다. 

32쪽
우울감이 분노 대신 들어앉으면서 그는 이제, 마치 그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천천히 그 빛깔을 빼앗기고 있는 것처럼, 무지근하고 막연한 슬픔밖에는 느끼지 못했다. 

99쪽
마치 그가 마침내는 이제부터 그에게 일어냐려고 하는 일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만일 그가 자신의 운명과 더 이상 관련되지 않았다면 그는 어디에 있었고 또 어떻게 된 것이었을까? 어쩌면 너무 오랫동안 지옥의 변방에서 살아왔고 그래서 이제 자신을 다시 발견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더 이상 붙잡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일까? 

305쪽
잠은 하나의 삶에서 다른 삶으로 가는 통로, 그의 내면에 있는 악마들이 불붙어 태어난 불길 속으로 다시 녹아 들어간 작은 죽음이었다. 그 악마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어떤 형체로 띠지 않고 그의 몸 전체에 형태 없는 존재로 퍼져 있었다. 피나 염색체와 마찬가지로 그의 일부가 되어 보이지는 않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그를 계속 살아있게 해주는 바로 그 체액으로 씻긴 불길이 되어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