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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파 Jul 16. 2021

더 웨이크 The Wake (결말 해석 포함)

거짓말의 거짓말을 기록해주는 기계 속에서 발견한 진실


SOMI의 최근작. 




응급실에서 가까스로 깨어난 주인공은 자신의 일기장을 가져달라고 한다. 그런데 그 일기장이라는 게 공책이 아니라 에니그마 비슷하게 생긴 기계장치다.






가끔 이렇게 암호화되어 있는 페이지도 있는데, 간단한 복호화 과정을 거쳐 해독할 수 있다.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아버지를 만난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일기의 내용이 전개된다.



일기장 챕터를 하나씩 완독할 때마다 추억의 사진이 드러난다.


흠... 소미의 전작들은 다들 독특한 소재를 참신한 시스템으로 풀어낸 수작들이었다. 개발자가 스팀 공지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레플리카>, <리갈 던전>, 그리고 이 작품까지 해서 <죄책감 3부작>이라네.


흠... <The Wake>는 호불호가 상당히 갈릴 듯한 작품이다. 우선 내 취향대로 간략히 평가하자면,



장점

1. 잔잔하고 감성적인 스토리텔링

2. 여운을 남기는 결말



단점

1. 2% 아쉬운 연출

2. 쉬운 퍼즐



암호 해독 퍼즐이 사람에 따라선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나는 너무 좀 시시해서 아쉬웠다. 전작들에 비해선 다소 약한 느낌이지만 스팀에서 할인할 때 사서 즐기기엔 무리가 없다. 개인 경험치에 따라서는 굉장한 감동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난 스토리에서도 솔직히 좀 아쉬운 부분이 있었는데, 1~20대에 플레이했더라면 달랐을지도 모르겠네.








(이하 스포일러)



결말에 대한 해석. 차근차근 이야기해보자.



> 플레이어가 혼수상태에 빠졌다 깨어난 남자 즉 일기의 저자인지, 혹은 그의 자녀인지에 따라 해석이 다소 달라질 수 있으므로 일단 이 점을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우선은 플레이어의 역할을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잠시 깨어난 남자'로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왜냐하면 게임을 처음 실행하면, 환자의 자녀로 보이는 인물이 "엄마, 아빠가 다시 깨어났어!"라는 대사를 치기 때문이다. 고로 이 게임의 플레이어는 자신의 일기장을 다시 뒤져보고 있는 상황.



다시 말해 과거 자신이 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아버지와 만나 이러쿵 저러쿵 했던 이야기를 중심으로 쓴 일기의 내용을 다시 "해독하고" 있는 거야. 일기장이 넘어갈수록 아버지에 대한 애증,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 등이 드러나며, 주인공은 자기 삶의 기저에 자리한 근원적 고통과 불안을 목도하게 된다.



그는 "내 자식은 결코 애비 없는 아이로 키우지 않겠다"며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혼은 하지 않을 것이라 다짐해왔지만, 큰 사고를 당해 오늘 내일 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이렇게 죽으면 결국 그도 '떠나간 아버지'가 되고 마는 셈이다.



한 남자가 죽음 직전에 "자신의" 일기를 해독하면서 "아버지의 마음에 대한 진실"을 깨닫게 된다는 설정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심장하다. 첫째, 그는 그동안 자신이 억압해왔던 사실 즉 실은 아버지가 자신을 사랑했으며 자신 또한 아버지를 사랑해왔다는 진실을 마지막에 가서야 역설적인 방식으로 깨닫게 되는데, 이는 우리 대부분이 지닌 심리적 방어기제의 발현 양상에 다름 아니다.









마지막에 복호화한 텍스트를 보자. 아버지에게 위로 전화를 걸어놓고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저 "일종의 인류애 정도"의 발로였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 어째서? 앞부분에 밝혔듯 이 일기장은 "거짓말의 거짓말을 기록해주는 기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설정이 반어적 결말부와 연결되며 묵직한 감동을 선사한다. 우리 모두는 아버지를 "미워한다." 마지막까지도 속일지 모른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선 서로를 사랑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리하여 결말부에 이르러 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긴 사진들이 쏟아지는 것이다. 마치 유령처럼 어떤 "가족" 사진에도 등장하지 않던 아버지가 제 자리를 찾아가는 순간이다. 이 모든 사진들이 실제 추억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죽음의 문턱에 선 주인공의 마지막 마음을 반영한 것으로 충분하다.


사실 이 일기장은 사진조차도 주인의 마음을 반영하여 바꾸어 버리곤 한다. 게임 중에 "사진이 바뀌었다"는 대사도 나오고, 실제로 사진이 바뀌는 연출이 등장하기도 한다. 엔딩부에서 "유전"이라 제목 붙은 사진의 내용이 변하는 것이 그 예다. 갓 태어난 아기를 바라보고 있는 모부의 사진에서 남자가 사라져 버린 사진으로 변화하는데, 이는 이 일기장이 다음 세대로 전달되면서 "아버지의 마음 이해"라는 "도전 과제"가 미결 상태로 리셋된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일기장이 세대를 건너 전해지고, 해독을 통해 이전 세대를 이해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는 점이 이 "일기장 설정"에서 주목해야 할 두 번째 포인트다. 위에 인용했던 일기장의 결말부를 다시 소환해보자.

할아버지의 일기를 읽는 아버지, 그걸 지나치듯 무심히 언급하는 주인공.


그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야 자신의 일기장에 적힌 "거짓말" 속에서 자신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과 아버지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발견하고는 미소 지으며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비슷한 방식으로 다음 세대 또한 자신의 마음을 언젠가는 이해해주리라 생각하며 일기장을 남기는 것이다.


다소 장황하게 풀었는데, 아무튼 대강 이런 내용이다.



플롯 구조에 아쉬운 부분이 있다. 보다 극적으로 세련되게 연출할 수도 있었을 텐데 다소 지나치게 밋밋하고 통속적인 느낌이랄까? 하지만 이 작품이 아마도 개발자의 자전적 스토리에 어느 정도 기반하고 있으리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수수한 전개를 탓할 수만은 없으리라. 씁쓸하면서도 담백한 도토리묵 같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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