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찍은 것도 맞으면 안 돼.
고3 10월 모의고사날.
새벽밥 지어 도시락 싸주며
"준비 잘 됐어? 학교에서 보는 모의고사는 오늘이 마지막이네."
".. 으응......"
아들은 별 말도 없고 대답도 대충이다.
'오늘은 아무 말 말아야겠네.'
비몽사몽간에 비타민을 털어 넣으며
"오늘은 찍은 것도 맞으면 안 돼...." 한다.
"왜? 찍어서 맞으면 좋지."
"마지막시험인데 점검이 안되지. 오늘 시험 못 볼지도 모르니까 그냥 묻지 마세요."
차에 태워 학교 앞에 내려주는 동안 말없이 갔다.
잘 보고 오란말도 하지 않았다.
오늘이 꼭 한 달 남은 날이다. 아이도 긴장을 했나 보다.
속없이 까부는 줄 알았는데 긴장도 하고 걱정도 하는 거 보니 조금 정신을 차렸나 보다.
그래, 많이 늦긴 했다만 이제라도 늦었다고 생각 들었다는 게 다행이다. 부족함을 깨닫고 있다는 거니까. 그렇게 느리게라도 네가 가야 할 길을 찾아가 보렴.
기적 같은 걸 바라지 않고, 찍는 게 맞기를 바라기보단 잘 준비해서 알고 있는 걸 실수하지 않기를...
시험장에 도시락을 가져가는데, '국민수능도시락'이라고 거의 다 같은 걸 들고 다닌다. 나는 다른 걸 사주려고 엄청 검색하고 찾아봤지만 '국민도시락'만 한 게 없어서 결국 남들 다 들고 다니는 걸 샀다. 그랬더니 교실에 거의 다 같은 도시락이어서 시험 전 물건들을 모두 앞으로 내어놓았을 때 바뀔 염려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네임택을 달아주기도 하고 도시락가방을 바꿔주기도 한다길래 나는 네임택을 하나 만들어줬다.
"엄마 뭐야 아기같이. 어! 근데 성경말씀이 적혀있네. 엄마가 만들었어요? "
"싫어? 별로야? 다른 인형 키링 같은 거로 바꿔줄까?"
"아니야. 괜찮아. 말씀 좋네요. 그냥 달고 다닐게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ㅡ 빌립보서 4장 6,7절.
10월 모의고사는 공식적으로는 재학생만 보는 시험이고, 수능 전 마지막시험이라 어렵지 않게 낸다고 해서 아이들끼리 '자살방지용 모의고사'라고 부른다고 한다.(참. 고 이름도 살벌하다.) 시험 끝나고, 스카에서 오답체크하고 저녁때 들어온 아들에게 잘 봤냐고 슬쩍 물었더니
"엄마. 이번시험은 '자살방지용 시험'이 아니고 '자만방지용 시험'이래. 나도 잘 본 건 잘 봤는데 준비가 부족했다고 생각했던 부분에서 좀 틀렸어. 내일부터 다시 점검하려고. "
그래. 이제 진짜 끝이 보이네. 제발 끝이길.
오늘도 애쓴 K고사미에게 응원과 위로의 토닥토닥을 건네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