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간편한 밀키트 만들기
월요일이다.
아이들은 금요일까지 재량휴업으로 쉬는 바람에 지난주 금요일부터 어제까지 통으로 10일을 쉬었다.
오랜만에 집이 북적북적해서 좋긴 한데, 집이 엉망이다.
냉장고도 텅텅 비고, 거실도 애들 방도.
갑자기 날씨가 추워진 탓에 아이들이 두꺼운 옷을 찾아서 이것저것 꺼내놨더니 더 정신이 없네.
새벽같이 모두 내보내놓고 잠시 앉아 쉬었다.
오랜만에 혼자 거실에 있는 시간을 잠시 즐기고 싶었다.
연휴 내내 아이들이 집에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오전에 집에 있고 늦게 아침을 먹거나 점심을 먹고 나갔더랬다. 집안식구들이 편하게 쉴 때 내가 막 여기저기 쓸고 닦고 하면 쉬기 불편하니까 집에 가족들이 있을 땐 그냥 가볍게 치우고 말았더니 거실 여기저기 물건이 널브러져 있다.
모르는 척, 안 보이는 척하고 앉았다.
'커피 한잔 마실 때까지만 쉬자.'
커피 마시는 동안 일의 순서를 정한다.
커피잔과 함께 아침에 먹은 설거지부터 하기.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세탁기를 돌려놓고
거실물건부터 치우기.
청소기 돌리고, 밀대 걸레로 바닥청소하기.
아이들 방에 얇아진 옷들 서랍에 정리하고
두꺼운 옷들 꺼내 입기 좋게 정리하기.
배민에서 식재료 장보기.
세탁된 옷들 건조기 돌리고
베개커버 침대커버 빨기.
냉장고 정리.
반찬통 비우기.
식재료 도착하면 재료손질해서 밀키트 만들기
저녁재료 손질하고 준비.
빨래 개기.
거실 소파에 눕기.
내 브런치타임.
엄청 많아 보이지만, 오후 3시도 되기 전에 끝내고 혼자 맛있게 점심도 차려먹었다.
우리 집 고사미가 자주 찾는 차돌된장찌개는 '툭'치면 나와야 해서 밀키트로 준비해 두는데 급할 때 아주 요긴하다. 한 끼 조금 먹는데 재료를 조금씩 사용하면 물러서 못 먹게 되는 식재료가 아까워서 손질하고 소분해서 얼려두기 시작했다. 두부나 차돌도 한팩에 같이 얼려두기도 하는데 오늘은 야채만 손질해서 얼려두었다. 며칠은 든든하겠군.
요리는 늘 어렵지만, 또 쉽게 하려면 쉽다. 엄마처럼 깊은 맛을 내기 어렵지 또 하려고 하면 세상 쉬운 게 집밥이다.
요리를 정말 어려워하고 힘들어하는 친구가 그랬다.
"나는 감자. 양파. 호박만 있으면 돼, 재료 넣고 물 넣고 끓이다가 카레가루 풀면 카레고, 된장풀면 된장국, 물 적게 넣으면 된장찌개, 특별식이 필요하면 거기에 짜장가루를 풀면 짜장밥이 되지. 후후"
집밥 하는 거 어렵지 않냐고 물었을 때 그 친구의 대답은 아주 신선했다. 사실 맞는 말이기도 했고 그렇게 생각하니 어려울 것도 없었다. 그때부터 뭐든 쉽고 간편하게 만들 수 있는 것부터 만들기 시작해서 지금은 음식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다.
무엇이든 맘먹는 데로 풀어나갈 수 있는 법.
처음부터 12첩 반상을 차리려고 하면 엄두가 나지 않는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시작이 반이다.' 일단 쉬운 것부터 한걸음 내디뎌야 하고 시작을 했으면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 살림도 육아도 모든 것이 처음이라 어색하고 실수투성이었던 어설픈 엄마였던 때가 있었다. 직장처럼 사표를 쓸 수도 없고 일단 밀고 나가야 했던, 끝은 있을까... 했던 시간이 벌써 20여 년이 되어간다. 아직도 부족하고 끝은 멀었지만 처음 첫발을 내디뎠던 때를 생각하면 '이 정도 살림쯤이야 껌이지.' 하고 프로페셔널하게 처리하는 내가 쫌 멋있다.
다시 일상이다.
긴 연휴 동안 잘 쉬었더니 피로도 좀 풀리고 기분전환도 되었다. 다시 긴장의 시간이 찾아오겠지만, 나는 엄마니까 다시 엄마집중모드로 또 며칠을 보내봐야겠다.
cheer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