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감성충만한 남편과 계절 나기
일요일.
예배 마치고 아이들은 또 각자 볼 일 보러 흩어지고 남편과 내가 남았다.
날도 흐리고 빗방울도 한두 방울 떨어졌지만, 집엔 들어가기 싫다는 남편.
"올림픽대로를 달리다가 우리 공원갈래? 나 전에 혼자 다녀왔는데 좋았던 곳이야. 지금 가도 좋을 것 같아. 가볼래?"
원래 4계절을 다 타는 사람인데, 유독 가을을 타는 남편이라 가을엔 나도 계절을 마음으로 함께 맞아주고 있다.
"집에 가기 싫어? 그럼 가보자. 비는 더 안 오겠지? 춥진 않을까? 얼마나 걸려? "
아차차 '좋아! 여보오'라고 답할걸...
이미 차는 올림픽대로 넘어 팔당댐 쪽으로 향하고 있다.
"여보 내가 거기 여름에 혼자 한번 다녀왔는데 참 좋았어. 연꽃은 언제 피지? 지금은 아닌가?"
"여보 연꽃은 여름에 피지. 7,8월이 절정일걸? 거기가 연꽃밭이야? 지금은 다 졌겠는데... 억새가 피기는 이르고오. 그래도 가보자. 공원이 크다 그랬지?"
30분쯤 달려 도착한 공원은 남양주에 있는 다산생태공원이다. 날이 흐리고 휴일 끝, 일요일 오후이니 주차장에 차가 별로 없다.
"빨리빨리. 와봐. 여기 보여주고 싶었어. 여보 추워? "
남편은 주차장에서 내리자마자 공원입구로 빠른 걸음으로 들어간다. 나도 남편을 따라 공원입구에 들어섰다.
날은 흐렸지만 미세먼지가 없어서 그런지 주변 산과 강이 예쁘게 잘 보였다. 사람들도 별로 없어서 붐비지 않아 좋았고 공원 산책로가 걷기 좋게 잘 만들어져 있어서 신발이 조금 불편했지만 산책하기 나쁘지 않았다.
"여기부터야. 올여름 더울 때 왔는데, 더웠는데 꽃이 너무 예쁜 거야."
띠로리...
연꽃과 잎은 다 져서 말라버려 갈색빛을 띠고 쪼그라들고 있고 억새는 아직 덜 펴서 이파리만 길게 길게 뻗어있다. 날까지 흐리다 보니 내가 보기엔 스산한 느낌이 드는 것이... 이 모든 게 오히려 조화롭기까지 하다.
"아. 예뻤는데, 가을엔 이렇게 되는구나. 근데 정말 예뻤겠지? 이 넓은 곳이 다 초록이고 꽃이었다니깐. 그런데 나는 지금도 좋은 것 같아. 왠지 쓸쓸해 보이잖아. 가을 같고..."
난 조금 웃겼는데, 남편은 지금 풍경도 예쁘고 멋진 것 같다고 핸드폰 카메라를 연신 눌러댄다.
"여기서 푹 빠지면 무슨 무서운 일이나도 모르겠다. 그지?"
남편은 이미 풍경에 빠져서 내 얘기도 못 들었나 보다. 그래 들었으면 '뭐야아아' 했겠지. 차라리 안 듣는 편이 낫겠군.
넓디넓은 연꽃밭을 지나니 한강이 호수처럼 넓게 펼쳐진 뻥 뚫린 공간이 나왔다. 벤치들이 곳곳에 있고 삼삼오오 산책 나온 사람들이 군데군데 앉아있다. 참 다들 어찌 이리 좋은 장소는 잘들 알고 찾아오는지 명당자리마다 앉아있어서 우리도 서둘러 앉을 곳을 찾았다. 마침 한 노부부가 일어나셔서 얼른 뛰어가 앉았다.
"좋다. 여보 좋네. 집에 안 있고 나오길 잘했네."
"내가 좋아하는 산하고, 물 하고, 다 한자리에서 볼 수 있으니 너무 좋아. 여보 자연스럽게 앉아있어 봐. 사진 찍어줄게. 이거 어때? 이거맘에들어? 이건? "
남편이 킁킁거리며 가을냄새를 실컷 즐기는 동안 나도 벤치에 앉아 물멍을 즐겼다. 아무 생각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는 것도 오랜만인 것 같다.
"나 좀 추워. 우리 이제 걸을까? 다음에 보온병에 따뜻한 차 담아서 또 오자. 여기 좋은 것 같아. "
"여보 자기가 좋아할 만한 것도 있어. 여기 다산정약용 생가랑 실학 박물관이 있어."
"그래? 가보자. 어디야? 오. 여기 이런 게 있었네. 여보 여기 박물관 프로그램에 이런 게 있었어. 밤엔 버스킹도 하고 그러나 봐. 신청하는 거네. 담에 신청해 볼까?"
어둑어둑 해가 질 무렵 산책을 서둘러 마치고 문 닫기 전에 들어가 보자며 서둘러 정약용 생가와 박물관을 구경하고 돌아왔다. 둘 다 만족스러운 산책이었다.
남편은 내가 아이들만 쳐다보고 지낸다고 늘 걱정을 한다. 애들은 알아서 잘할 테니 너랑 나랑 재미있게 지내면 된다고 내 주위를 환기해 주려 늘 애써준다. 참 고마운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