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입 짧은 도련님
우리 집 고사미는 입이 짧다.
다른 집 아이들은 밥도 잘 먹고 라면도 두 개씩 끓여 먹고, 치킨도 한 마리 뚝딱 해치운다는데 우리 집 고사미는 뭐든 많이씩 먹지를 않는다. 그러니 돌아서면 배가 고프지.
한 번에 많이씩 먹지를 못하고 조금씩 자주 드셔야 하는 도련님이시라. 어쩔 수 없이 간식을 찾는다. 그러다 보니 입에 맞는 간식 휴대하기 좋은 간식들을 이것저것 사서 줘보고 입맛에 맞다 그러면 좀 사두고 가방에 간식주머니를 챙겨준다.
배도 잘 부글거리는 녀석이라 아무거나 이것저것 안 먹던 거 먹고 탈 날까 싶어서 일부러 집에서 준비해 둔 것만 먹으라고 일러두었는데 첨엔
"엄마.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 돼요. 너무 유치원생 같잖아. 내가 알아서 조심히 잘 챙겨 먹을게요." 했는데, 뭘 잘 못 먹었는지 배탈이 한 번 크게 나서 며칠 고생하더니 그다음부턴 내가 챙겨주는 간식 주머니를 챙긴다.
이것저것 맛보더니 "이거는 좋고, 저거는 별로고, 또 이거는 먹어보니 든든해서 오후에 먹으니 좋고, 이거는 소리가 나지 않아서 스카에서 하나씩 먹기 좋고..."
아이가 괜찮다고 하는 거 몇 가지는 집에 구비해 두고 한 번씩 챙겨서 가방에 넣어준다.
예전에 나도 고등학교 때 오래오래 집 밖에 있어야 할 때, 당 떨어질 때, 입이 심심하고 배고팠을 때 먹었던 간식이 있었다. 다이제스티브 빨간 포장이랑 데자와라는 홍차 음료였는데, 거의 매일 그렇게 먹었더니 입시 끝날 때쯤 교복치마가 터질 것 같았었지.
아이가 공부하러 가방을 메고 나가면 나도 그때가 어렴풋이 떠오른다.
'진짜 하기 싫지만 남들 다하는 거 안 할 수 없으니까 하지. 아니지. 나는 하고 싶은 게 있으니까 참고하는 거지. 아.. 나는 이공부를 왜 하고 있는 걸까? 나는 어른이 되면... 뭘 할 수 있을까?'
별의별 생각을 다하며 그 시간을 견디고 버티었던 것 같다.
저 아이도 그렇겠지. 아직 뚜렷하게 목표하는 바가 없으니 그냥 하는 거지. 그냥 하려니 재미없고, 이게 맞나 싶고, 시간이나 빨리 갔으면... 하겠지.
'아들아.
지나 보니까 그때 아니면 또 그렇게 내 것만 할 수 없더라. 그때는 부모님이 다 챙겨주시고 봐주시고 하니 내 것만 하면서도 그렇게 투정하고 힘들다 그러고 징징거렸는데 어른이 되어보니까 그때만큼 나한테 집중할 수가 없는 것 같아. 어른이 되면 책임도 생기고, 내 것이 되지 않는 일도 때로는 감내하며 해야 할 때가 있거든.
지금은 네가 해달라고 하는 건 최선을 다해서 해주려고 노력하지만, 언제까지나 엄마 아빠가 너를 아기 돌보듯 해줄 수 없으니까 너는 네가 혼자 잘 서기 위해서 너한테 집중해서 네가 살고 싶은 모습을 스스로 그려야 할 거야.
이 세상에 아무것도 아닌 건 없지.
가끔 엄마가 "아무거나 해. "라고 말하면 "왜 아무거나 하라고 그러는 거야."라고 하며 서운해했지? 그런데 그 말은 화가 나서 뱉는 말이 아니란다. 아들아. 너는 '어른'을 코앞에 두고 있으니까 이제 곧 '아무거나'가 되어있을 거야. 네 나름의 그럴싸한, 멋진 '아무거나'를 위해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렴. '
아직도 저녁마다 엄마 아빠가 누운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안아줘"하면 이 녀석이 어른이 되려나 싶지만, "엄마 나 기다리지 말고 먼저 주무세요. 맨날 늦게 자면 어떻게 해? 아니면 나 학교 가면 좀 쉬세요." 할 때는 또 어른 같다.
"아들아. 이제 진짜 얼마 남지 않았네. 아프지만 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