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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일타강사 수강하기

ㅡ 07 돼지아들 1타 강사 수강대첩

by Anne


고등학교 공부는 그동안의 공부와는 차원이 달랐다.

탄탄한 선행, 성실함, 꼼꼼함, 절대 한눈팔지 않고 집중할 수 있는 결단력, 체력... 또... 뭐가 있더라. 암튼, 뭐든 수퍼두퍼(super-duper ) 급으로 올라간다.

그냥저냥 흉내만 내어서도 안될 것이며, 머리가 좋아서 또는 반짝여서 중요한걸, 어려운 걸 캐치해 내는 센스 따위도 필요 없다. 9등급제 고등학교 내신은 그야말로 내가 공부하지 않은 곳에서 불쑥 튀어나올 테니까!

첫 내신시험의 매운맛을 보고 온 우리 아드님은 망치를 얻어맞은 듯 멍하게 있다가 갑자기 울고불고 머리를 벽에 박기도하고 자기는 똥멍청이라며 망했다고 난리난리.
곁에서 지켜보기도 안쓰러워서 생전 처음 보는 점수를 보고 혼낼 수도 없었다. 나중에 과학과목 평균점수가 50점 인걸 보고 뒷목 잡은 집은 우리 집만은 아니었겠구나 하기도 했다.

"그래 우상향 이랬어 성적이 나이키를 그리면 괜찮다 했어. ㅇㅇ아 아직 기회는 많아 울지 말고 끝까지 잘 버텨."

라고했지만, 우리 아들만 울고불고 공부할리가 없지.
과외에 대치학원에 그야말로 내신경쟁이 어마어마했다.
첫 시험을 시원하게 말아 드신 아드님은 잠시 정신 차린듯했지만 금세 자신감을 회복하시고는 재미있는 남학교 생활을 본격적으로 즐기기 시작했다.
밴드동아리, 축구동아리 각종 동아리에 방과 후 축구에 농구에 뭐 못 놀아서 한 맺힌 귀신이 붙었나 허구한 날 놀았다. 뽀얗고 하얀 얼굴이 시커멓게 타서 "누구세요?" 할뻔했다.
2학년 담임선생님은 수학선생님이셨는데 축구 잘한다고 매일 남겨서 선생님들과 축구하고 밥 사주시고 이뻐해주시고오오, 참 감사한 선생님이시긴 한데 참... 감사하다.

그래 인생 뭐 있냐. 괜히 과고준비한다고 중학교 때 못 논 거 한 맺혔나 싶어 니 알아서해라. 필요하면 공부하겠지. 그런데, 이 녀석이 그렇게 노는데도 이상하게 모의고사점수는 잘 나와서 자꾸 희망을 갖게 하는 거다.

1학년 겨울방학 때 대치동 대형학원 윈터스쿨을 경험하게 해 준 것이 계기가 되어 2학년이 되니까 내신학원 그만두고 대치로 가겠다고 한다. 대치에서 수능 강의를 전문으로 하시는 선생님께 가겠다고 하는 거다. 소위말해 '정시파'를 선언하시는 거다.

고등학교학원은 1.2학년 선생님과 3학년 선생님은 아예 다르다. 그걸 처음에 몰랐던 나는 2학년 때 듣던 선생님께 3학년때도 계속하겠다는 아들 말만 듣고 넉놓고있다가 고3 올라가는 겨울방학 때 그 어마무시하다는 일타강사 수강대열에 뒤늦게 합류하게 되었다.



<1타 강사 수강 시 체크할 내용>

대치동 대표학원들 1타 강사선생님 명단확보
학원에 문의해서 시간표 확인하기.
한 학원에서 3-4과목 이상 수강해서 받는 혜택을 체크하기. 시대인재 부엉이나 두각 퀀텀을 이용할지 여부선택.
(현역 고3은 6월 이후이용불가함. 재수전용.)
플랜 A, B, C 만들어서 시간표 짜기.
(전 과목 1타는 힘들 수 있음.)
수강신청시간 확인하고 미리 각 학원 아이디 만들어놓기.
신청당일 PC방이나 노트북 핸드폰 등 기기정해 놓고 대기.
접속 후 서버다운되더라도 긴장하지 말고 천천히 순서를 기다려보기.
엄마들 정보카페하나에 접속해 두고 실시간 강의 마감여부 체크하며 다음 강의 수강을 결정하기
마감이어도 대기순번도 무조건 선착순이니 늦게라도 듣고 싶은 수업이 있다면 꼭 대기 걸어두기(3월이 되면 기숙학교학생들이 빠져나가면서 대기가 풀릴 수 있음.)
수강신청은 한 선생님께 하나만 할 수 있지만 대기는 모든 시간. 요일대 가능하니 일단 다 걸어놓기.
수강신청이 되었는지 여부는 반드시 확인 후 빠르게 수강료를 수일 내 결제완료해야 하므로 중복해서 여러 군데 신청한 경우 시간표정리 잘 체크해서 마무리.
(올해는 두각 메가 시대인재순으로 수강신청날짜가 잡혀서 인기선생님이 많았던 시대인재 수강신청이 끝나는 날 두각이나 메가대기인원이 풀렸다고 했다.)



우리 아이는 대치 김승리국어선생님을 꼭 만나고 싶어 했다. 아침에 학교 가면서 "엄마 꼭 부탁해." 하는 거다.


나는 예전에 아이유 콘서트 티켓도 성공해 본 여자라


"걱정 마 아들. 엄마가 꼭 보내줄게! 학교나 잘 다녀와"

오후 2시였던가? 다른 볼일이 있어 반차 쓰고 마침 집에 있던 남편과 둘이 식탁에 앉아 아들이랑 계획해 놓은 시간표를 보며 전략회의를 했다.


"여보, 혹시 내가 핸드폰으로 안되면 바로 노트북 접속해야 하니까 자기는 옆에서 봐줘. 이거 하나는 꼭 해주고 싶다. "


네이버시계까지 켜두고
1시 59분 55초. 56초. 57초
58초.
59ㅊ..ㅗ....

"클릭!"

됐다.
미리 연습하고 봐둔 페이지로 쓱쓱 잘 넘어갔는데 김승리선생님 수업 클릭하는 순간 서버다운.
페이지가 절대 움직이지 않는다.

핸드폰으로 입시정보카페분위기를 살폈다.
아 전체서버다운이구나. 어떡하지? 난 다 왔는데.
너무 다급한마음에 서버회사번호를 찾아 전화를 했다.
"안녕하세요. ㅇㅇ학원 홈페이지 관리회사시죠? 서버가 다운된 것 같은데 어떻게 될까요? 도와주세요. 저 이거 꼭 해주고 싶어서요. "

나 말고 벌써 수백 통의 전화를 받으셨단다.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다.
"네 어머니. 저희도 이렇게 동시에 많은 분이 오실 줄 몰랐고요. 아휴...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어요. 저희도 복구하느라 정신없어요."
"네 정말 수고 많으십니다. 그러면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 지만 알려주세요 아예 닫고 나가볼까요? 이대로 둘까요? 제가 급한 마음에 핸드폰으로 다시 접속했더니 이중접속으로 튕기는데 어떡하죠?" 거의 울듯 하소연을 했더니
"아이고 어머니 한 번 이렇게 해 보셔요." 하면서 친절히 알려주신다. 그 뒤로 나는 몇 번 더 같은 분과 통화하며 로그인을 성공했고 4시간이나 버텨서 수강신청에 성공했다.

여담인데 ㅇㅇ학원에 수강신청하던 날 수업 중에 아이들이 허락받고 직접 수강하겠다 했던 애들도 있었고 수업 후 부모님께 전화해서 수강신청여부를 확인하며 대학에 붙은 것처럼 펄쩍펄쩍 뛰어다닌 애들도 있다고 했다.
우리 아들도 쉬는 시간에 전화해서 "엄마.! 성공했어? 와! 얘들아 우리 엄마 성공하셨대!엄마 최고! 고마워!" 하며 소리를 지른다.

별것도 아닌 일에 너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서 살짝 짜증이 났었는데 아들이 좋아하니 뭔가 내가 대단한 걸 했나? 했다. 운이 좋게도 아들이 듣고 싶어 하는 국영수선생님으로 시간표를 짜고 나머지 과목들도 하나씩 넣고 시간표를 마무리했다.
일명 '07 돼지들 1타 강사수강대란'이었다.
학원들도 이런 적은 처음이라며 돼지띠엄마들의 극성에 혀를 내둘렀다한다. 나도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한 일이지만 머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싶었다.

사실 1타 강사선생님들은 인터넷강의도 이미 잘 되어있어서 꼭 현강을 고집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말이 그 '현장감'때문이라고 했다. 선생님의 얼굴이 콩알만큼 작게 보이더라도 그 현장강의가 주는 긴장감과 활기가 좋았다나.
참.. 내. 영화도 아니고 뮤지컬도 아닌데 뭐 그렇게까지. 공부는 네가 하는 거지. 1타 선생님 수업 듣는다고 다 1 등급 나오는 건 아니지 않나?

그래도 1타는 1타.
우리 아들의 1타 강사 선생님 수업만족도는 어마어마했고 덩달아 성적까지 잘 나와주니 이래서 그렇게 하나보다 내가 운이 좋았구나 했다.
그렇게 나는 꼼짝없이 주말마다 아이를 대치동에 내려주기 시작했다.


미리 계획한 플랜 A.B.C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한다고 하지. 1타강사수강성공기가 과연 입시성공과 연결지어질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냥 동기부여쯤으로 여기고 아이가 스타강사를 보며 공부가 잘 되었다고 해주면 '그래. 엄마역할은 여기까지'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1타 강사 수강에 관해 궁금하신 게 있으시다면 아는 범위 내에서 알려드리겠습니다. 편하게 댓글 달아주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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