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검사를 받아보라고요?

온 동네 병원을 돌아다니다가 결국 듣게 된 말.

by Anne

40살을 막 들어서던 해부터

시름시름 몸이 아팠다.


몸살기도 있었다

손목이 아팠다가

허리도 아프고

머리가 지끈거려서

하루 푹 쉬면 괜찮으려니 했는데

담날은 귀가 아프고

급기야 나중에는 이명에 어지럼증으로

운전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몸이 아픈 것도 가족에게는 미안해지는 일이라고

바로바로 해결하지 못하고

쉬면 낫겠지.

며칠 있음 사라지겠지.

갱년기인가?

하고 시간을 보냈다가 일상이 힘들어지기 시작한 거다.


대중교통은 아예 이용할 수가 없고

자차로 겨우 볼 일 보고

그나마 30분 이상 운전이라도 하려면

멀미하고 토하고

오후 내내 어지럼증에 누워있게 되다 보니


다시 일을 시작하려고 벌 인 일들마저 접게 되었다.


남편은 병원에서 검사를 좀 받아보자고

여기저기 알아봐 줘서

이비인후과도 가보고

디스크 증상인가 싶어 정형외과도 가보고

했지만 이명이나 어지럼증에 원인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 찾게 된 신경외과.

어지럼증을 잘 본다는 광고를 보고 무작정 찾아갔다.


눈앞이 뱅글뱅글 도는데 겨우겨우 운전해서 찾아갔는데

나 같은 사람이 많은가 보다.

내 또래의 여자들이 제법 보인다.


다들 혈색 없는 얼굴로 대기자 소파에 머리를 기대고 앉아있다. 나도 병원이라면 다녀 볼 만큼 다녀서 큰 기대는 없지만 그래도 뭐 좀 다른 게 있나 싶어 기다리고 있었다.


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어지럼증이나 이명 검사는 찾아내기가 어려워서 검사 자체가 복잡하고 기껏 시간들이고 돈들이고 검사를 해도 막상 원인을 찾기가 쉽지 않다.

나도 의사를 만나기 전 여러 가지 검사를 해보자고 해서 이것저것 다 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만난 의사는

나를 쓱 보더니만


"결혼하셨나요? 자녀는 몇이나 낳으셨어요?"


하고는 신경외과적인 검사를 다 해보았지만 특별한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거다.


물론 심한 어지럼증 검사에서는 전정기관에 약간 문제가 있어 보이지만 내가 구토를 한다거나 밖에서 갑자기 손이 떨리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증상에 관해서는 이상을 찾지 못했다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고는


"혹시 스트레스받으시는 일이 있나요?"


"네 뭐 주부로 아이들 키우면서 스트레스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심하게 받는 건 아니고 그냥 요즘 몸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까 일상이 좀 피로해지긴 했어요. "


"제 생각에는 환자분은 괜찮다고 하시지만 몸의 기능에 큰 문제가 없는데 일상생활이 힘들 만큼 어지럽거나 이명이 들리시는 거라면 우울증 검사를 받아보시기를 추천합니다. 해 보신 적 있나요? 우리 병원에서도 간단하게 검사할 수 있고 필요하시다면 상담센터나 정신과로 소견서 써드릴 수 있습니다."


'우울증이라고? 내가?'


의사의 말을 듣는 순간 온몸에 힘이 쭈욱 빠지면서 머릿속이 하얘 졌다.


나는 엄청 행복한 사람이다.

큰일 없이 잘 살고 있다.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다.


나는 여태 내가 너무 잘 살고 있고 스트레스 없이 하루하루 행복하게 잘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거 대체 뭐라는 거야?!


"저는 제가 불행하다거나. 죽고 싶다거나 그런 생각 해 본 적 없는데요? 우울증이라뇨?"


"꼭 죽고 싶다거나 불행하다고 늘 울고 있다고 우울증이 아닙니다. 환자분도 모르게 몸이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고 그래서 몸이 내 말을 듣지 않을 수 있지요. 그냥 가벼운 설문 조사라도 받아보시는 게 어떨까요?"


"네, 그럼 그냥 여기서 할 수 있는 거면 해볼게요. 약을 먹는다거나 다른 치료는 받지 않겠습니다."


뭔가 약을 받아먹는다거나 상담치료 이런 건 낯설고 겁나서 괜히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는다.




검사 용지를 받고 준비해둔 방에 자리 잡고 앉았다.

사방에 재미없는 그림들과 제약회사 광고사진.

요즘엔 잘 있지도 않은 커다란 숫자 달력.

안 그래도 메스껍고 어지러워 죽겠는데

갑갑한 좁은 방이 더 좁게 느껴져서 토할 것 같다.

그냥 집에 갈까?

여기까지 왔는데 얼렁 하고 가자.

뭐가됬든 끝장을 보고 가야지.


두꺼운 질문지를 두 개나 받았다.

한 장 한 장 넘기며 체크하는데


나는 매우 불행하다.

1 2 3 4 5 6 7 8 9 10


나는 때로 죽고 싶다.

1 2 3 4 5 6 7 8 9 10


이명이, 어지럼증이 내 삶을 망가뜨리고 있다.

1 2 3 4 5 6 7 8 9 10


질문들이 나를 더 혼란스럽게 한다.


나는 불행한 적도 죽고 싶은 적도 없으며

이명, 어지럼증이 치료하고 싶을 뿐이지 이게 내 삶을 망가뜨렸다고 생각한 적은 더더욱 없다.


아.

정말 아프고 힘든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마음먹기에 달렸다.


사람들은 쉽게 얘기하지만,

마음은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부분도 있구나.


나도 모르게 내가 놓친 내가 있겠구나.

나를 좀 돌아보라고 내 몸이 말을 안 듣는 거 일 수도 있겠구나.


검사지를 살펴보신 선생님은

검사상으로는 큰 문제를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상담이나 밤잠을 잘 못 자게 되면 다시 병원을 찾아오라고 친절하게 이야기해줬다.




나는 그리고도 몇 날 며칠 더 밤잠을 설치고

바깥활동을 할 수 없을 만큼 어지럽고 힘들었다.

그래도 다시 병원을 찾지는 않았다.

나에게 조금 더 집중해보기로 했다.

정말 내 몸이 내 마음의 문제라면 찬찬히 다시 고민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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