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앤에서 마릴라가 되어가기까지

앤에서 마릴라가 되어가는 나

by Anne

주근깨 빼빼 마른 빨강머리 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


예나 지금이나 빨강머리 앤은 만인에게 사랑받는 캐릭터이다.

초등학교 다닐 때쯤인가

주말마다 앤의 유쾌하고 낭랑한 목소리가 아침을 깨워주면 끝날 때까지 눈 반짝이며 즐겨봤다.

이후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성인이 되어서도 한 번씩 책을 몰아 읽거나 애니메이션을 보고 나면 괜히 스트레스가 풀리는 느낌이다.




천방지축 앤을 좋아했다.

앤과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고 화내

열심히 청춘을 사는 것에 동질감을 느끼며 사랑했다.


어른이 된 지금도 나는 앤을 찾는다.

지금 나에게 앤은 내가 그리워하는 청춘, 젊음, 열정이다.


나는 앤에게서 마릴라가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요즘 빨강머리 앤을 읽다 보면 어느새 나는 마릴라 커스버트가 되어 있다.

앤이 아니라 마릴라가 되어 앤을 바라본달까?



어릴 때는 마릴라가 무서웠다.

앤이 잘못을 하긴 했지만,

맨날 혼나고 잔소리하고 또 잔소리하고.

ㅡ지금 보면 혼날만한 일을 저질렀는데 어릴 땐 그런 건 보이지도 않았나 보다.


요즘 내가 그러고 있다.

열만 세고 보면 별일 아닌데 잔소리 잔소리.

좀 혼 날일을 두고두고 혼내고 또 뭐라 그러고.

사실 내가 마릴라보다 울 엄마보다도 더한 거 같다.


얼마 전 큰아들 녀석이 그러는 거다.

"엄만 다 좋은데, 잔소리가 너무 많아"

"친절했으면 좋겠어"


아...

순간 속상했고,

자녀 앞에서 부끄럽기도 하고,

뭔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자존심도 상하고 해서

괜히

"네가 잘하지 그럼"

하고 돌아섰다.


그런데 그 순간 천방지축이었던 내가 떠오르는 게 아닌가

내가 막 사춘기에 접어들던 때 울 엄마에게 '바락바락' 대들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엄마 속상하게 하려고 일부러 엄마 속을 더 긁는 소릴 했던 내가 떠오르면서 그나마 내 자식은 '나보단 낫네.' 쓴웃음을 지었다.


아이들을 재우고 샤워하는 내내 아들의 말이 지워지지가 않았다. 엄마를 만나야겠다.


"엄마, 오늘 시간 되시면 저랑 데이트 좀 해요."


엄마와 밥을 먹고 오가는 차에서

아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엄마에게 모진 말로 속상하게 한 딸이었지? "

고백하며 사과했다.

엄마는

"얘가 왜 이래? 갑자기"

하셨지만 조금 당황한 눈치셨다.

그러시고는 곧

"아이고 이제 알았으니 됐다. 너도 이제 엄마 마음 알겠어?"

라고 하시며 웃으셨다.


"엄마!

나를 소중하고 예쁘게 키워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해요. "


운전하면서 차 안에서 엄마를 집으로 모셔다 드리는 길이었다. 엄마는 별말씀하지 않으셨는데 아마도 눈시울을 조금 붉히시는 것 같았다.


나는 진심이었다.


철부지 앤에서 앤을 아끼는 마릴라의 마음을 이해해 가는 그 어드메쯤 오고 보니 부모님의 사랑이 비로소 깨달아지는 거다.


어릴 때는 미처 몰랐던 마릴라의 감정들이 느껴지는 것은 분명 내가 살아온 '엄마'시간들이 보태졌기 때문이 아닐까.


엄마도 멋쩍게 웃으시며

"넌 지금도 엄마에게 착하고 예쁘고 소중한 딸이야"

지금이 아이 키우면서 또다시 힘든 시기일 수 있다고 마음껏 사랑해 주고 키우라고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드는 중학교2학년 딸이 있다.

게다가 속없이 까불고 노는 게 제일 좋은 고1 아들도 있다.


어쩌다 하루 온종일 붙어있는 날은 내속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널을 뛴다.

'그래. 열을 세자. 열을 세.. 하나. 두울.. 세에엣... 아아 확..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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