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이것도 추억이 되겠지
예배를 마친 일요일오후
오늘도 아이들은 각자 자리가 있고 남편과 내가 남았다.
요 며칠 부쩍 예민했던 데다가 무리해서 운동하느라 몸살까지 나서 컨디션난조였는데
남편이 '또' 내가 좋아할 만한 카페를 알아놨다며 차 한잔 마시자고 한다.
집에 가서 세수하고 잠이나 잘까 했는데, 괜히 어설프게 자면 밤잠을 설치게 될 테니 그냥 따라나섰다. 큰아이는 학원에, 작은아이는 연습실에 있는데 어차피 둘 동시에 픽업해 오려면 세 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
아이들이 버스 타거나 지하철 타고 집에 와도 되지만, 오가는데 시간 쓰는 게 아깝기도 하고 해 줄 수 있는 일은 해주자 했으니까. 웬만하면 늦은 시간에는 픽업해서 데리고 오는 편이다.
남편이랑 찾아간 찻집은 구옥을 개조한 전통찻집이었다. 종로나 북촌이 아닌 가까운 곳에 이런 예쁜 한옥 찻집이라니 너무 예쁜 곳이었다.
예배 마치고 모임까지 하고 늦은 시간에 찾아가서 그런지 그리 붐비지 않아서 찻집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앉아있을 수 있어서 좋았다.
전통찻집이라 쌍화차, 오미자차, 팥죽, 떡 같은 메뉴가 있었는데 나는 전통차, 남편은 커피와 달달한 떡디저트를 시켰다.
요즘 둘이 카페를 다니며 소소하게 기록을 남기는 게 재미있다며 카페를 갈 때마다 사진을 찍는 남편이 요리조리 카메라를 기울여가며 멋진 한 장을 찾는다.
인증샷을 찍고 낮은 찻상을 두고 마주 앉아 한참을 놀았다.
아이들 얘기도 하고,
날씨 얘기도 하고,
요즘하고 있는 일,
등산을 취미로 다녔던 남편친구가 마테호른 등반을 성공했다는 멋진 이야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3시간이 후딱 가버렸다.
"우리 슬슬 움직여볼까? 애들 끝날 때 됐지?"
큰아이 작은아이를 학원이나 학교에 보내놓고 기다리는 일은 그냥 일상이었다.
어떤 날은 카페에서 책도 보고
어떤 날은 그냥 차에 앉아서 드라마 한 편도 보고
또 어떤 날은 동네 산책도 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버려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서 이런저런 일을 하다 보니 뭐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남편이 일부러 시간을 내어 함께 놀자고 한다. 아이들을 기다리는 시간에 우리도 근처 산책도 하고 차도 마시자고.
밤늦은 시간에 데리러 가는 날이면,
"밤드라이브도 좋지. 커피하나 내려서 같이 다녀올까?" 한다.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니까 쉬라고 혼자 다녀오곤 했는데 남편이 함께 다녀와주면 덜 심심하고 좋다.
효율성을 따지자면 한 명이 얼렁 다녀오는 게 맞지만, 함께 해 주면 그냥 기다리는 게 아니라 '바람 쐬러 나갔다 오는 시간'이 된다.
끝이 있을까 싶었던 아이들을 픽업하는 일도 점점 끝이 보인다. 우리가 아이들을 데리러 다니고 기다리고 했던 일도 저만치 멀어져 추억할 날도 머지않았다 생각하니 그렇게 힘들지도 않다. 조금 지루할뻔한 시간을 남편과 예쁜 카페를 찾아다니는 일로 만들어준 남편의 센스도 한몫했다.
"여보 담주엔 우리 또 어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