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안돼. 안된다고오!
작년에 자녀가 고3이었던 내 친구들.
올해 모두 고 4의 엄마가 되었다.
"아니 재수하지 말고 다들 가라고오...
합격엿도 사주고 내가 맛있는 밥도 사주고 했자나아~~"
작년에 아들 녀석 재수하겠다고, 합격한 학교를 등록 않겠다고 속상해하며 전화를 했다. 다들 3년 내내 성실하게 공부도 잘했는데 결과가 썩 맘에 들지 않았나 보다. 그보다 '아쉬웠나보다'가 더 맞는 표현이겠다. '백세인생이라는데 그깟 1년이 뭐 대수라고 그냥 시켜야지 뭐'.. 하던 친구의 말에 '그래 그래야지. 같이 힘내자. '라고 한 게 엊그제 같다.
아침부터 전화가 왔다. 고 4가 된 녀석이 고3 때보다 더 긴장된다고 몸도 마음도 힘들어한다고 걱정을 한다. 그도 그럴 테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혼자 그 시간을 견디며 준비했을 텐데 얼마나 부담일지 알 것 같다. 농담처럼 "형님 먼저 가셔야죠..." 했는데, 둘 다 웃을 상황도 아니라 '에효...' 한숨만 쉬었더랬다.
여기저기 수시전형 발표도 나고 논술 보러 다니고 어수선하지만 조용한 때이다. 다들 말도 아끼고 만남도 자제하며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도 불필요한 약속은 굳이 잡지 않고 집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시험날이 오기만 해라 나는 준비다 되었다!' 하는 녀석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대부분은 한 달만 더 있었으면, 일주일만 더 있었으면 하며 남은 시간을 붙들며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게다.
며칠 몸이 좋지 않아 큰 녀석이 들어오는 걸 챙겨주지 못했다. 약 먹고 일찍 잠들어버렸는데, 남편이 '엄마 깨우지 말라고 좀 쉬시게 하자.. ' 했나 보다.
"엄마 아아.."하고 요란스럽게 들어오는 아들이 조용히 간식 챙겨 먹고 씻고 알아서 잘하고 있었다. 어제저녁은 비몽사몽간에 누워있는데
"엄마. 나 왔어. 괜찮아?" 하면서 꼭 안아주고 갔다.
땀 냄새랑 아들 스킨냄새가 코끝을 스치는 바람에 살짝 깨서 내가 뭐라 뭐라 한 것 같은데 생각이 안 나네.
어떤 집은 고3자녀가 너무 예민해서 말도 못 붙인다고도 하고, 거실에서 얼굴 본 지도 꽤 됐다며 우리 아들의 붙임성이 부럽다고 했다. 너무 해맑아서 속이 터질 때도 있지만, 마음이 보드라운 아들 녀석을 키우고 있는 걸 감사하고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너무 태평하길래.
" 준비 잘 되고 있지? 시험이 이제 30일도 안 남았네?" 했더니,
"잘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근데 나 혹시 시험결과가 마음에 안 들면 재수해도 돼요? 우리 반 애들도 막 재수얘기하는데?" 한다.
이놈시키가 시험도 보기 전에 재수 얘기를 꺼내다니. 아침부터 잔소리가 터질 뻔 한 걸 꿀떡 삼키며
"안. 돼! 남은 시간 열심히 하고 결과 보고 얘기하자. 오늘 얘기는 안 들은 걸로 하겠어. 정신 바짝 차리고! 학교에서 공차지말고오오오!"
키득키득 웃으며 내리는 녀석의 뒤통수에다가 듣던말던 마구 뱉는다.
"으휴.... 이따 보자."
약기운에 계속 헤롱헤롱했는데 정신이 바짝 드네.
내가 빨리 정신 차려야지. 너무 오래 쉬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