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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22 여권사진 찍기

ㅡ 떠날 준비.

by Anne

"시험도 끝나지 않았는데, 우리 이래도 되는 거지?"

남편이랑 나는 반쯤 신나 있다.

어쨌든 큰아이의 일정이 끝나가고 있고 드디어 우리가 여행을 계획해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아이들이 중고등학교 입학하고부터는 휴가가 따로 없었다.

학원, 공부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그간 코로나라는 큰 이슈도 있었고 우리가 가자고 졸라도 아이들이 학원이나 레슨 하루, 이틀 빠지면 보충 잡고 따로 시간 내는 거 자체를 힘들어해서 큰아이가 고등학생이 된 무렵부터 당일치기 바람 쐰 적은 있어도 1박 이상 여행을 다녀온 적이 없다.


아이들이 가끔 답답해하거나 바람 쐬고 싶다고 하면, 강원도에 가서 바다를 보고 오거나, 둘째 데리고 종로에서 1박하면서 북촌나들이를 하거나 했던 터라 여행이 좀 고프기도 했다.

남편이랑 이번에 고사미 시험 끝나면 결과상관없이 바람이나 좀 쐬고 오자 했다. 지난 추석에 아이들한테 혹시 가고 싶은 곳이 있냐 했더니 둘 다 "일본!" 한다.

중고등학생아이들이 제일가고 싶은 나라.

왜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둘이 좀처럼 의견 맞추기 어려운데 오랜만에 둘이 한 곳을 얘기해 주니 고맙네.


"둘 다 일본? 일본 어디? 생각해 둔 곳 있어? 오사카? 도쿄?"


"어디든 상관없어요. 나는 일본 팬시전문점이나 애니메이션 박물관"


"나는 나는 편의점. 그냥 편의점 가고 맛있는 초밥집 가고 싶어요."


아니 둘 다 일본이 가고 싶다기에 어디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있는 줄 알았더니만, 일본 편의점, 팬시점이라니....

참 MZ세대 답구만.


어쨌거나 저쨌거나 우리는 여권이 만료된 상태라 해외여행을 가려면 여권부터 만들어야 한다. 큰아이 입시결과가 어찌 될지 모르지만 일단 미리 만들어두고 언제든 출발할 수 있게 준비해보자 싶어 아이들은 미리 찍어놨고, 오늘 반차내고 나온 남편이랑 동네 사진관으로 갔다.


오랜만에 보정 없는 여권사진으로 내 얼굴과 남편사진을 보니 세월을 정통으로 맞아 둘이 이제 제법 중년티가 난다.

내 핸드폰에 아이 둘 증명사진을 끼우고 다녔는데 남편이 자기 거도 슬쩍 끼우며

"이제 내 것도 같이 끼우고 다녀!" 한다.

"아우. 여보오. 이건 아닌 거 같은데...으응..."

애들은 귀엽기나 하지 우리 얼굴은 이제 안 이쁜데... 내가 아이들만 끼우고 다니니까 서운했나 보다.

'그래. 며칠 끼우고 다니다 슬쩍 빼면 되니까....'


가까운 곳에 여권민원실이 있어서 바로 신청할 수 있었다.

저녁때 아이들에게 여권 만들고 왔다고 하니 고사미가

"엄마. 근데 내가 시험 못 보면요? 내가 대학입시 잘 안되면 어떡해요? 그러면 여행취소예요?"

"그럼. 일단 네가 시험을 잘 보고! 이왕이면 입시결과도 좋으면 기분 좋게 다녀올 수 있겠지? 아직 구체적으로 계획한 건 아니고 그냥 혹시 급하게 가려고 해도 여권이 없으면 안 되니까 시간 날 때 해두는 거야. 너는 신경 쓰지 말고 니 할 일 하셔요 오오~~~"


첨엔 열심히 하면 여행 보내준다. 그랬다가

또 열심히 안 하면 여행 그딴 거 없다. 그랬다가

괜히 애가 셤보기도 전에 들떠있을까 봐 모르겠다고 했다.


되든 안되든 좋든 싫든 그냥 가보려고 한다.

12년 학교다닌 고사미도

고사미 때문에 명절연휴 꼼짝 못 했던 고일이도

자식 둘 뒷바라지하느라 지난 몇년간 휴가도 없이 고생한 남편도

12년 전업주부로 아이들만 보고 지냈던 나도

콧바람 좀 쐬줘야겠다.

그 다음은, 바람 좀 쐬고 생각해보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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