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할매입맛
앞자리가 바뀌었다.
고사미는 어제도 오늘도 같은 일정으로 열심히 살고 있다.
고사미엄마는 사실상 할 일이 없다.
밥 챙겨주는 거 말고, 건강 살펴주는 거 말고,
어서 자라고 불 꺼주는 거 말고,
차라리 바쁘면 좋을 텐데
시간이 많아지니 생각도 많아진다.
입맛도 없고
소화도 잘 안된다.
며칠 전 시장을 보다가 마트에서 사과대추를 보았다.
추석즈음부터 보이는 과일인데 해마다 이맘때 보이면 사 먹었다. 그냥 생대추도 맛있는데 사과대추는 대추의 은근한 단맛과 사과의 상큼함까지 더해진 맛.
게다가 알도 크고 포만감도 있어서 밥 먹기 싫을 때 출출할 때 먹으니 좋다.
남편이랑 아이들은 대체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며
"엄마 입맛은 할머니 입맛이야!" 한다.
그지. 내가 중고등학교 때도 친구들이 내식성이 할머니 같다며 "할매"라고 했지.
어릴 때 몸이 약해서 엄마가 먹는 음식에 신경을 많이 써주셨는데 특히 몸을 따뜻하게 하는 음식을 많이 해주셨다. 요즘같이 추석이 지나고 날이 추워지면 손발이 차가워지면서 몸이 안 좋아질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대추를 꿀에 절여서 강정처럼 만들어주시면 포크로 콕콕 찍어 먹었던 기억이 있다. 도시락을 싸주시면서 간식으로 먹으라고 은박지에 넣어주시면 밥 먹고 대추 몇 알씩 오물오물 씹어먹고 대추씨는 훅 뱉었던.
사탕, 초콜릿보다 대추조림을 좋아하고 들고 다니며 먹으니 애들이 '할매'라고 부를 수밖에.
추석연휴도 모임 없이 그냥저냥 보내고 잊고 있었는데 마트에서 사과대추를 보니 반가워서 한 팩 집어왔다.
계속 입맛도 없고 소화도 안되었는데
몇 알 깨끗하게 씻어 '와그작'하고 한입 베어문 순간 기분이 좋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행복하다. 맛있는 음식은 내가 떠올리고 싶은 장면과 냄새와 그때의 나를 불러다 준다.
학창 시절 약했던 나를 위해 저녁마다 대추를 씻고 꿀에 조려주시는 엄마와 집안에 뭉근하게 풍기는 달큼한 대추향과 한입 쏙 넣고 씨앗을 발라먹으며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듣던 그때가 생각난다.
나와 남편을 꼭 닮은 두 아이들을 키우며 그때의 부모님만큼 나이 들어버린 내가 아직도 어색하고 부족한 것 투성인데 나를 '엄마'라고 불러주는 아이들과 만들어가는 내 모습은
'좀 괜찮은가. 좋은 부모로 아이들에게 본이 되고 있는가.
이다음에 엄마아빠의 어떤모습을 추억해줄까. '
사과대추 한 알에 생각이 깊어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