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K고딩들은 왜 한 시간씩 씻고 있는가
밤 12시.
주방정리도 거실정리도 다 끝난 저녁.
따뜻한 차 한잔 준비해서 거실에 자리 잡고 앉으면 고사미녀석이
"띠띠띠띠띠..."
저벅저벅 들어온다. 12시 반이 조금 넘은 시각.
요즘엔 12시 전에 일과를 마치면 좋겠다고 했더니 12시쯔음에 집으로 들어온다. 다녀오면 간식 조금 챙겨 먹고 곧장 욕실로 들어간다.
“씻고 나올게”
나는 아이가 욕실에 들어가 있는 동안 거실에 앉아서 새벽에 재방송으로 나오는 내용도 잘 모르는 드라마나 예능들이 나오는 채널을 별 의미 없이 탁탁 넘겨가며 시계를 쳐다본다.
고사미녀석이 들어간 지 벌써 40분이 넘어간다. 물소리는 아까아까부터 나는데 이 녀석 나올 생각은 없고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를 반주삼아 노래를 하시는지 흥얼거리는 노랫소리만 들린다.
다 큰 녀석 문 열어 확인할 수도 없고 대체 뭘 어떻게 씻는 걸까.
비누칠하고, 머리 감고, 수건으로 닦으면 20분이면 충분할 텐데.(머리가 꽤 긴 나도 한참을 여유 부리며 씻는다 해도 30분이면 충분하다.)
들어간 지 한 시간이 다 되어간다.
1시 반이 넘어가는데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언제 머리 말리고 잘 거냐고 오오.
참다 참다 내가 잔소리를 시작하면
"다했어요. 머리 헹구고 있어요." 한다.
그래. 아이에게 그 한 시간은 단순히 씻는 시간이 아닐 거다.
머리카락을 정성껏 말리고, 얼굴을 들여다보고, 피부에 스킨을 바르며 하루의 피로와 불안을 조금씩 지워내는 거겠지.
뜨거운 물줄기 아래에서 고민을 흘려보내는 너만의 힐링 스팟인게지. 그거지.
집에서 유일하게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그래. 알겠다. 알겠어.
성질은 나지만 좀 더 기다려본다.
욕실 문이 열리는 순간
엄청난 수증기와 함께 산신령처럼 나타나는 너를.
네가 맘껏 욕실서 힐링하는 그 시간이
하루의 고단함을 씻어내고,
내일을 버틸 힘이 생겨나길 바라면서.
1시간을 기어이 채우고 나와서 또 한참을 안방에서 조잘거리다가 들어가 자라.. 하면.
"양치하고요." 이런다.
콱! 깨물어버릴까. 아니 한 시간이나 씻고 나온 녀석이 양치는 왜 안 하고 나온 거야?!
자기 전까지 뭘 먹고 할지 모르니 방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양치를 안한다나어쩐다나.... 에효....
겨우겨우 '자라자라'하고 들여보내면서
아니 좀 더 일찍 씻고 일찍 자면 좋겠는데 싶은데
어쩌면 하루 종일 바깥에서 지지고 볶고 지낸 고사미가 집에서 엄마 아빠랑 지지고 볶고 싶었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그냥 둘까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