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그냥, 설렁탕 한 그릇 먹여 보낼랬는데
추석연휴를 끼고 있어서 주일 예배 후 점심식사가 없었다.
평소 같으면, 예배 후 교회에서 각자 점심을 해결하고 큰아이는 학원으로, 작은아이는 연습실로, 우리 부부는 교회에서 시간을 좀 보내는 게 일상이다. 그런데 오늘은 점심이 없다고 하니 밥을 해결해야 했다. 주일이면서 연휴라 동네에 영업하는 곳도 별로 없고, 밥은 챙겨 먹여야겠고 해서 근처 설렁탕집에서 밥을 먹기로 했었다.
"예배 마치고 잠시 기다리고 있어. 같이 밥 먹게. "
어른예배가 조금 늦게 시작하고 늦게 마쳐서 미리 당부해 두고 예배를 드리러 갔다.
예배를 마치고 나오니 시골로 바로 출발하는 사람들, 식사장소로 이동하려는 사람들로 교회 복도가 분주하다. 우리도 얼른 애들 데리고 이동하려고 아이들을 찾는데 애들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 애들 어딨어? 여보 전화해 봐."
"오늘 학생부에서 애들 점심 준데, 떡볶이랑, 치킨준비해 줬다나 봐. 애들 두고 같이 밥 먹으러 가자."
같이 예배드린 부부가 얘기해 준다.
"잘됐네. 여보, 그럼 애들한테 연락해 보고 우리 얼렁 밥 먹고 올까? 얼렁 전화해 바바!"
전화통화를 하고 오는 남편이 웃으며
"우리 애들은 안 먹겠다고 하고 그냥 우리 기다리고 있데, 엄마 아빠랑 밥 먹기로 약속했다고!"
"아니. 교회에서 친구들이랑 먹고 있지. 뭘 기다렸대?"
"모르지. 우리랑 먹기로 약속을 했으니까. 애들 데리고 가자."
평소 같으면 맛있는 떡볶이랑 치킨을 둘러앉아 재밌게 먹었을 텐데 안 먹고 있었다길래
"왜 안 먹고 있었어? 그냥 먹어도 되는 데에..." 했더니,
"그냥 엄마 아빠랑 먹고 싶어서요." 한다.
남편은 그게 '또!', '갑자기!' 귀여웠나 보다.
"얘들아. 우리 설렁탕 말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눈을 반짝거리며 장난기 가득한 말투로 신이 나서 아이들을 저만치 끌고 가며 얘기한다.
"여보, 우리 중국집 가기로 했어. 고일이가 맛있는 곳을 알고 있대. 저번에 말했던 집. 알지?"
교회 근처 둘째 학교도 있어서 동네를 잘 알고 있는 둘째가 맛있는 중국요릿집이 있다고 얘기한 모양이다. 마침 영업도 하고 있어서 아이들과 이미 메뉴까지 다 정한 듯 허다.
"학원도 가야 하는 데에, 그냥 간단히 먹여보내지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신나하는 애들이랑 남편뒤를 못 이기는 척 따라갔다.
아주아주 커다란 금색용이 간판을 휘감고 있는 중국요릿집으로 쏙 들어가는 즈그들!
"여기 동파육하나하고요. 삼선해물짜장면, 너네는 식사 뭐 할래? 탕수육도 하나 할까?"
'아주 신이 나셨네요. 아버니임.'
아이들도 신나서 이것저것 주문하며
"너무 오랜만이잖아. 맛있겠다."
"오빠. 여기 엄청 맛있다니깐. 아빠, 여기 진짜 맛집이야."
아이들도 계획에 없던 맛집 외식에 기분이 좋았나 보다.
남편은 아이들에게 '느닷없는 즐거움'을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자식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고, 아이들이 재미있어하면 마음 한쪽 구석이 '봉긋'차 오르는 느낌.
효율성을 따지는 대문자 T성향의 나보다 따스한 인간미 넘치는 대문자 F성향의 아빠의 기질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이럴 때는 나는 모르는 척 묻어가는데, 남편의 따스한 마음씀이 참 좋다.
덕분에 설렁탕 한 그릇에 끝날 주일 점심을 아주아주 맛있는 동파육으로 채우며 아이들의 수다와 함께 '느닷없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런 날도 있는 거지 모.
엄마도 아빠의 그 '느닷없는 따스함' 때문에 여기까지 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