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우리는 모두 각자의 별에서 빛난다.
코로나가 온 나라 아니 전 세계를 얼어붙게 했던 때
우리 아이들은 중학교1학년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중학교 입학한다고 첨 교복을 맞췄는데 동복은 입어보지도 못하고 6월에 하복을 입고 첫 등교를 했으니, 지금생각하면 어떻게 지냈나 싶다.
어수선했던 3월, 온라인출석했던 4월, 학습결손을 우려해서 줌으로 1교시부터 6교시까지 실시간으로 수업했던 5월
집에서 두 아이가 동시에 온라인으로 수업을 해야 해서 각자노트북에 각방에서 교복 입고(상의만.ㅎㅎ) 수업하고 점심시간도 각자 시간표대로 먹고
집 밖은 위험하다고 문밖을 나가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이 그리 지냈지만 그때는 진짜 이러다 지구종말이 오려나 영영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면 어떡하나 그런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학교는 안 가는데 학원은 간다는 거다.
어떤 엄마는 지금이 기회라며 학원을 더 열심히 보내야 하는 시기라고도 했다.
나는 집 밖을 나갈 일이 별로 없으니까 마스크 쓸 일도 많이 없었는데 아이들은 학원을 가거나 간간히 등교할 때 종일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하니 참 고역이었다. 특히 대형수학. 영어학원은 아이들도 늘 많고 마스크를 4시간 이상을 쓰고 있어야 하는 것이 마음에쓰였다.
다시 아들과 이야기를 했다. 초등학교 6학년때부터 고등수학을 공부하는 아들이 한창 힘들어할 때 '그냥 동네 작은 학원을 다녀보는 게 어떨까 ' 하고 말이다. 아이는 뭔가 여기서 나가면 안 될 것 같다고 걱정을 했지만 나는 코로나는 무서운 질병이고 엄마는 이런저런 걱정거리 때문에 집 앞 작은 보습학원이 좋을것 같다고 아이를 설득했다.
과학고를 가고 싶어 했던 아들 녀석은 과고준비반에서 나가게 되면 과고를 못 가게 되는 게 아니냐고 걱정을 했는데, 코로나 환자가 한 명 나올 때마다 학원이 휴업을 하고 또 격리하고를 반복하다 보니 좀 지칠 대로 지쳐서 내결정을 따라주었다.
아이가 가고 싶어 하는 학교를 가려면 일정 수준이상의 선행은 불가피했기 때문에 소수이지만 과고출신 선생님이 운영하시는 보습학원을 찾아갔다. 선생님과 상담하는데 선생님의 야무진 입매와 말투가 꼭 맘에 들어서 학원을 결정하고 돌아오는 길.
"엄마. 선생님 왠지 고수 같아. 되게 멋있어!" 하는 거다.
학원게시판 선생님 프로필에 과고졸업. 서울대 ㅇㅇ과 졸업. 머 그런 걸 본 모양이다.
엄마말보다 선생님말을 더 잘 듣는 녀석이니 화려한 프로필의 선생님에게 퐁 빠질 줄 알았지!
'대형학원처럼 체계적인 준비는 어렵겠지만 그냥 해보는 거야. 될놈될! 이니까. 해보고 안돼도 방법은 있으니까.'
내 생각대로 아이는 존경하는 선생님과 너무 합이 잘 맞았고 2년간 잘 지내주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이 위치파악이나 할 겸 분기별로 한 번씩 대형학원 레벨테스트를 보기도 했다. 월등하진 않아도 아이는 곧 잘하고 있어서 내 나름은 '이렇게 해도 갈 수 있겠지. 무리하지 말자"' 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 수학학원선생님과 상담을 하는데 선생님이 우리 아들은 과학고는 힘들 것 같다고 하신다.
대형학원에서 그야말로 힘들게 시키면 될 수도 있지만 성향이 아니라고 하신다.
본인이 과학고를 나오셨는데 머리가 반짝이는 천재들도 있지만 진짜 공부가 좋고 성실해야 하는 데우리 아이는 그런 성향은 아니라는 거다. 허허
나도 우리 아이에 대해 잘 알고 있어서 놀랄만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과학고를 가도 적응이 어려울 거라 하니 정말 그런가 싶기도 하고 괜히 그런 말씀을 주신 선생님께 서운함도 있었다. 그러시면서 ㅇㅇ이는 친구도 좋아하고 운동도 좋아하고 하니 남학교를 추천하신다고... 내가 키운 자식이지만 2년을 꼬박 많은 시간을 공부를 봐주신 선생님의 말이 무시할 수는 없어서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사이 아들 녀석은 그 무섭다는 사춘기를 겪고 있었는데 학원수업 외에는 공부도 하지 않고 엄마하고도 대화를 거의 하지 않아서 나도 어찌해야 하나, 아이는 얼마나 더 시간이 필요한 걸까. 답답한 시간만 흐르고 있었다.
그래도 준비해 온 게 아쉬워서 결국 과학고를 지원했다.
중학교 생기부도 알차게 잘 준비했고 자소서나 면접대비도 부족하지만 준비했으니 일단 후회하지 않게 시험이나 보자 하고 지원한 거다.
여전히 앞머리는 이마를 다 덮고 눈이 반만 보이는 얼굴을 하고서는 자기 의견을 말하지 않으니 둘이 대화 없이 시험장으로 향했다. 긴장한 얼굴로 "다녀올게요."하고 사라진 녀석은 두세 시간 후에 후련한 얼굴로 나왔다.
선생님 5분인가 앞에 계셨는데 질문을 엄청 하셨고 포스트잇에 적힌 여러 문제 중 몇 문제를 골라 풀게 하셨는데 푼 것도 있고 못 푼 것도 있다고 하면서 생전 웃지 않던 녀석이 슬쩍 미소를 띠며 이야기한다.
사실 과학고를 어릴 때부터 가고 싶다 생각했는데 지금은 별생각 없고 시험 보고 나오니 그냥 후련하다며...
너한테는 그냥 '도전'까지였나 보다.
정말 간절하게 준비한 아이들에 비하면 너무 준비가 미흡했지만 '되놈 될'이라고 되면 부딪혀보는 거고 안되면 다른 길을 준비하면 되지. 하고 시작했던 터라 나도 아이도 그냥 후련했다. 그날은 아이가 오랜만에 웃어준 것. 후련하다고 말한 것. 만 기억에 남는다.
결과는
당연 불합격. 솔직히 혹시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불합격' 글자를 보고선 "그래. 어쩔 수 없었네! 가도 힘들뻔했어. 그지? " 하며 그냥 아이어깨를 툭툭 쳤다.
아이는 그날 하루는 좀 속상해했던 것 같다.
나중에 얘기하기를 "좀 더 열심히 공부하며 준비해 볼걸, 내가 너무 놀았나 봐"하는 거다. 지나간 시간은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걸 좀 깨달았을까.
한 장의 결과지가 모든 과정을 단순히 ‘떨어졌다’는 말로 깔끔하게 정리돼버렸지만, 과정 속에서 아이는 스스로 부족함을 채워 나가는 법을 알았기를.
학습 계획을 세우고, 수학. 과학 공부에 많은 시간을 보내며 준비한 시간이 결코 가볍지 않았을 거다. 밤늦게까지 자기소개서를 고치고, 면접을 앞두고 긴장하며 연습하던 모습은 기특하기도 했으니까.
지나고보니 그때 수학학원선생님의 조언이 맞긴했다. 아이도 나도 그 선생님이야기는 지금도 하면서 "참 너에게 좋은 분이었어! 그지?"한다. 여담이지만 나중에 고등학교때도 우연한기회에 선생님과 연락이 닿았는데 아이의 선택이 훨씬 잘 되었다며 잘할거니 걱정하지마시라는 좋은 이야기도 해주시며 우리아이를 응원해주셨다. 학원선생님도 어쩌면 학교선생님 이상으로 아이를 오래 보아왔으니 학원선생님과 의견나누는것도 좋은것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찌됐든, 그날부터 아이는 '과떨이'가 되었다.
과학고 지원했다가 떨어진 아이들을 '과떨이'라고 하는데 기분나쁜말보다는 그냥 학원가에서 초. 중 엄청 선행하며 준비했다가 '자사나 일반고 가서 상위권을 노리는 아이들'을 지칭하기도 한다.
우리 아이는 '과떨이'로 다음 계획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