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코로나가 가져다준 강제휴식
레벨테스트만 보러 다니는 엄마.
4학년 때 학원 보내달라는 아이를 살살 달래서 1년을 더 집에서 데리고 있었다. 5학년 여름방학 들어갈 무렵 아이는 이제 진짜 학원 보내달라고 한다.
"그래? 그럼 레벨테스트 또 봐야 하는데."
"그럼. 또 봐야지."
전에 한 번 갔던 아들 친구들이 많이 다닌다는 그곳을 찾았다. 다시 찾아가니 그때 그 실장님이
"어머니 그동안 다른 곳 안 보내셨어요? 선행은 안되어 있겠네요?"
두 번째 보는 시험이라 익숙한 듯 아들은 선생님을 따라 들어갔고 나도 기다리는 장소에 찾아들어가 앉았다. 집에서 학습지 조금씩 하던 거 말고는 별다른 준비는 없어서 걱정은 됐지만 작년에 잘했으니 올해도 잘 보지 않을까 했다.
"어머니! 들어오세요. ㅇㅇ이도 같이 데리고 오시면 됩니다."
엄청 상냥한 톤으로 말씀하시지만 묘하게 친절하지 않은 것 같은 학원실장님의 특유의 말투가 있다.
"어머니이. ㅇㅇ이가 시험을 잘 못 봤어요. 5학년대비가 잘 되어있지 않네요. 우리 학원 재원생들은 대부분 80점 이상 나오는데 ㅇㅇ이는 블라블라... "
그다음 말은 들리지도 않는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ㅇㅇ이가 천재는 아니었구나.'
학원 실장님은 학원선행의 필요성과 중학교를 대비하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대비를 해야 하는지 계속 설명하셨다.
우리 아들도 울먹울먹 한 표정으로 자기가 본 시험지만 쳐다보고 있었다.
"네. 선생님 우리 아이 들어갈 반은 있나요? 당장 등록할게요. 아이가 계속 다니고 싶다고 해서요."
후다닥 결제를 하고 교재와 가방을 받아 나왔다.
"시험이 어려웠어? 모르는 문제가 많았어?"
"응. 엄마 처음 보는 문제들도 많았고 문제가 길어서 잘 이해를 못 했어."
아이는 조금 속상했다고 말했다.
"그래그래. 이제부터 알아가면 되지. 한 번 다니면서 공부해 보고 힘들면 다른 곳으로 가면 돼."
그렇게 주 3회,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월. 수. 금 주 3회 2시간씩 수학공부를 시작했다.
아들 녀석은 온 동네 애들이 메고 다니는 그 수학가방을 메고 노란 버스를 타는 걸 너무 좋아하며 다녔다.
2주가 조금 지났을까.
학원에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 ㅇㅇ이 담임입니다. ㅇㅇ이가 반을 옮겨야 할 것 같아서요."
"네? 저희 아이가 잘 못 따라가나요?!"
"아니요. 어머니 레벨테스트 점수로 반을 배정받긴 했는데, ㅇㅇ이는 곧잘해서 반을 올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네? 아 네. 잘 하구 있다는 말씀이시죠? 감사합니다."
'그럼 그렇지. 우리 아들 잘하고 있구나' 학원 들어가고 2주 만에 반을 옮기게 된 것이다. 주마다 반에서 보는 시험이 있는데 아이가 잘 본 모양이다.
그리고 또 2주 후 다시 반을 옮겨야겠다는 전화를 주셨고 4주 후 제일 높은 반 아랫반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아들 녀석은 그렇게 가고 싶은 학원을 가서 그랬는지 너무 재미있어했고 엄마의 설명보다 훠얼씬 명쾌하다며 자기 반 선생님이 너무 멋있다고 했다.
남편이랑 나는 이게 뭔 일인가 싶어 '얘가 수학을 잘하려나 봐. 일단 고! 해야겠지?! '하며 좀 두고 보기로 했다.
아이가 다니는 학원은 분기별로 자체 경시를 보고 급수를 매겨서 배지를 주었는데 아들은 여러달을 다니면서 매번 두 단계씩 시험 신청을 하고 수상범위에 들어 배지를 거의 다 모았다.
그렇게 딴 배지를 가방에 달고 다니면 멋있다나...
아들 녀석이 워낙 승부욕도 강하고 배운 지 얼마 안 돼서 한창 재미있는 것까지 더해지니 아이는 학원에서 놀랄 만큼 곧잘 했다. 6학년을 마칠 때쯤 고등일반수학을 했으니 선행속도도 어마어마했다.
내가 조절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서 그냥 흐르는대로 맡겨두긴 했는데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되고 뭐가 맞는지도 모르겠고 절차대로, 수순대로 학군지 중학교. 특목고.. 정해준 대로 가야 할 것 같았다. 아이도 학원에서 선생님과 친구들의 영향을 받았는지 과학고를 가겠다며 자기 꿈은 과학자라고 얘기하고 다녔다.
학원에서는 이대로만 하면 충분하다며 방학특강. 보강스케줄을 계속 잡아서 아이는 거의 일주일 내내 학원에서 지냈었다. 방학 때는 도시락을 싸가거나 학원에서 단체로 주문한 도시락을 먹으며 9시부터 밤 10시까지 특강을 했다.
아들 녀석은 문제가 안 풀리거나 집중할 때 입술을 꼭 깨물거나 빨았는데 언젠가부터 입술 주변이 퍼렇거나 꼭 깨물어서 빨갛게 부어있는 거다. 잠도 매일 늦게 자서 다른 집애들은 쑥쑥 크는데 우리 아들만 6학년 졸업할 때까지 150도 안 됐으니 걱정도 되었다.
그런데 아들 녀석은 한 번도 학원 가기 싫다고 한 적은 없었다.
'이걸 언제까지 두고 봐야 할까. 정말 이게 시작일까 끝일까'
그러던 어느 날.
코로나라는 생소한 질병이 발생했다.
19년도 12월 졸업식 후 기나긴 방학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20년 1월 '코로나 첫 환자 국내발생'이라는 뉴스가 온 나라를 공포에 빠트렸다.
아이는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고 중등대비로 어마어마한 스케줄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라는 질병으로 온 나라가 일시정지상태가 된 것이다.
알 수 없는 질병이라고 하지. 전염력도 강하다고 하고 걸리기만 해도 사돈의 팔촌까지 따져서 병을 추적하고 그렇게 걸리면 온 집에 소독약을 뿌리고 난리도 아닌 시절이었다.
3월. 예정대로라면 중학교 입학을 해야 하는데
등교가 무기한으로 미뤄지는 초유의 사태 속에서 우리 남편이 갑자기 제주도를 가자고 한다.
집에서 이렇게 있으면 답답하기도 하고 애들도 힘드니 다 같이 제주도에서 보름정도 있다 올까? 하는 거다.
3월엔 입학도 못했고 출석규정도 정해진게 없고, 수업도 하지 않았던 때라 학교에 알아보니 온라인 출석만 하면 문제없다고 해서 우리 가족은 바로 짐을 쌌다.
그렇게 코로나가 준 강제휴가를 가진 셈이다.
보름간 제주도에 숙소를 잡고 오전에 학교 공부를 하고 점심 먹고는 매일 나가 놀았다.
아침바다 산책도 하고 해녀공원 박물관 가서 책도 보고 수목원도 가고 어떤 날은 숙소에서 뒹굴뒹굴 거리며 하루 종일 집에있기도하고
학원도 안 가고 보름을 꼬박 놀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오전에 할 일과 공부를 마친 후에는 아이들과 보드게임도 하고 보고 싶었던 영화도 실컷보고 조금 답답하긴 했지만 나름 알차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렇게 4월. 5월이 되어가니 학교보다 먼저 가게 된 건 학원.
학교도 비대면인데 학원은 소수수업이어서 그랬는지 마스크착용을 필수로하며 수업을 재개한 것이다.
나는 다시 아들을 설득했다.
이제 갓 중학교 들어간 아이는 학교도 제대로 못 가는데 고등수학을 배우느라 매일매일 너무 힘들어했다. '대형학원 은 너무 힘들고 네가 준비하고 싶은 학교를 위한 도움은 되겠지만 아직 급한 건 아니니 일단 작은 학원에서 차근히 다시 점검해 보는 게 어때?' 하고 말이다.
아이도 매일 마스크 쓰고 4-5시간씩 학원에 있는 시간이 너무 힘들다고 엄마의견대로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대형학원에서 빠져나왔다.
코로나로 온 나라가 거의 3년을 잃었는데 나는 그때 반강제로 대형학원에서 빠져나왔고 시기가 잘 맞은 거였겠지만 6학년 때 키가 150도 안되던 녀석이 중학교 3년 동안 실컷 자더니, 12센티, 8센티, 5센티를 더 커서 170을 가뿐히 넘어주었다. 코로나가 준 강제 휴식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