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루틴 만들어주기

ㅡ엄마는 스케쥴러

by Anne

나는 파워 J. 계획형 인간이다.


극 I 이면서 극 J 이어서 매사 피곤할 정도로 빡빡하게 2차. 3차까지 계획을 두는 편인데

사회생활도하고

결혼도하고

자녀도 낳고 살다 보니


'인생 머 있나.

둥글게 둥글게 오늘 아니면 내일이어도 큰일이 나지 않네.

빡빡하게 굴지 말고 여유 있고 침착하게 일하자.

더군다나 자녀는 내 마음과 계획대로 되지 않으니 아이들에게 강요하지 말자.'


그래도 하던 가락이 쉬 사라지지 않을 터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많은 시간을 정리 없이 움직이는 게 어려워서 늘 시간표를 만들어 붙여놓고 내 나름의 육아를 했었다.

뭐 그래봐야 밥 먹는 시간, 노는 시간, 간식시간, 자는 시간 정도였지만 짜여진 시간표대로 일과를 보내면 하루도 금방 가고 아이들에게도

'자 이제 우리 간식 먹는 시간이니까 간식 먹자. 봐! 지금 잘 시간이지? 이제 방에 들어가 잘 준비하자. '

하고 명분 있는 육아가 가능하니 아이들을 설득하기도 좋았다.


우리 집 남매는 순한 편이어서 고집부리지 않고 잘 따라주었고, 엄마도 조금 닮았는지 나중에는 직접 계획표를 만들어 자기 방문에 붙여놓고 스스로 지켜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그런 사소한 습관들이 훗날 도움이 되겠지... 하고 생각도 하고 말이다.


'루틴 만들어주기'


지킬 수 있든 없든 스스로 계획하고 지키려는 시도가 있었으면 좋겠고 이다음에 중고등학교 때 공부를 해야 하는 시기 즈음엔 스스로 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에 실천한 일이었다.

어리니까 계획이 별거 없으니까 아이들은 재미있게 잘 따르고 시계를 보며 스스로 제 할 일을 찾아서 성취하는 재미도 맛보았다. 또 지키지 못했거나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는 미루거나 미리 계획하는 시도도 해볼 수 있었으니 '스스로'를 가르쳐주기에 괜찮은 시도였다.

그래서 지금까지 괜찮았나?!

계획형 인간으로 우리 아이들이 잘 커주었나?!


꼭 그렇지는 않더라.


큰아이는 워낙 즉흥을 즐기고 감성이 풍부한 아이라

계획보다는 자기가 하고 싶은 거부터 해야 하고, 또 자기 자신한테 얼마나 관대하고 친절하신지 지키지 못한 일에

'괜찮아. 내일 하면 되지. 내일 두 배!' 하며 씩씩하게 잘 지낸다.

반면 둘째는 시간표 짜서 계획하고 움직이는 건 아니지만 그날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철저해서 할 일을 마치기 전까지는 잠도 자지 않는 녀석이다.


결국엔 각자의 성격에 맞게 필요에 따라 갈길 가고 있단 얘기다. 두 아이들의 생활방식이 나와 다르다 고해서 틀린 건 아니니까 각자의 방식을 존중해 주며 알아서 잘 지내주길 바랄 뿐이다.


나에게는 짜여진 시간표가 안정감을 주지만 아들에게는 갑갑함이고 딸에게는 지키지 못할까 속박하는 장치일 뿐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도

어릴 때 시간표대로 지내겠다고 즐겁게 계획표를 만들고,

"엄마! 그럼 지금은 무슨 시간이에요?! 놀이터에서 몇 시까지 놀 수 있어요?! "

"오늘 조금만 더 놀고 내일 공부 30분 더해도 돼요?!"

"엄마! 오늘은 좀 늦게 자고 싶어요! 내일은 쉬는 날이잖아요!"

말 잘 듣는 초등학교시절에 비교적 루틴 있는 삶을 살았던 것이 중고등시절 생활을 계획하고 공부할 때 도움이 조금이라도 되었길.


'루틴 만들어주기 프로젝트'의 효과일지는 모르겠지만,

큰아이는 공부스케줄이 꼼꼼하지는 않은데 스스로 찾아서 일을 하는 편이고 중고등학교 때 학원 픽업하는 일은 도와줬지만 학원 수업을 짜고 계획하는 것은 주도적으로 잘 찾아서 하고 있다.

둘째 아이는 음악을 하고 있는데 연습노트를 작성하며 알아서 연습스케줄을 짜고 학과공부도 내가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알아서 잘 챙겨하는 편이다.

아직 이렇다 할 결과가 있는 건 아니지만 두 아이들이 알아서 잘 지내주고 있으니 반은 성공인셈이다.

나머지 반은 니들이 알아서 해라!


[내가 늘 시간표를 그려 냉장고에 붙여뒀는데 유치원을 다니고 글을 배우고 난 뒤에 스스로 계획표를 만들었던 첫째.]

[아주 어릴 때부터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같이 시간을 계획하고 시간표를 만들었었다. 괜히 열심히 산 것 같아 모아두었던 것들.]

keyword
이전 03화아니 우리 아이가요? 상위 1%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