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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고기

ㅡ 온 가족의 사랑을 먹으며 크는 아이

by Anne

우리 집 장남 고사미는 외가에서는 첫 손주다.


장녀인 나는 조금 일찍 결혼을 해서

친정어머니가 50대에 남들보다 조금 빨리 할머니가 되셨다.


나도 어렸지만

할머니도 할머니가 처음이고 젊으셔서

우리 장남은 팔팔한 엄마와 외할머니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고 자랐다.

아기가 무슨 어린이집이냐며 '할머니랑 놀자'하고 유치원을 가야 하는 5세 때까지 집에서 실컷 뒹굴거리고

할머니랑 교회모임도 따라다니고 놀이터에서 해질 때까지 시소도 타고오...

둘째 여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 아주 그냥 여한이 없이 놀았다.

놀다 놀다 지쳐 나중에 둘째를 낳고 5세 때 유치원을 보내려는데.

다른 친구들은 엄마랑 떨어지기 싫어해서 적응기간도 필요하고 아침마다 유치원버스에서 눈물의 배웅을 하는데.

우리 집 아들 녀석은 "엄마! 들어가 들어가. 나 놀다 올게" 하고 유치원차에서 우는 친구들을 토닥여주며 등원하였으니 사회성은 10000%였다.


나도 처음엄마인지라 육아에 대해 전혀 아는 바 없었지만

육아카페에 넘치는 정보에 열정맘이라 친정엄마와 의견이 맞지 않아 부딪히기도 하고


'내 아이니까 내가 알아서 할게요!'


'언제 애를 키워봤다고?!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하면 돼. '


'엄마! 요즘은 다 이렇게 먹여. 내가 해볼게!'


'아니 애가 이런 걸 어떻게 먹냐. 푸욱 끓여서...'


얼마 전 유퀴즈에서 김태희가 사십춘기를 겪었다고 하면서 친정부모님과 육아로 어려웠던 부분을 얘기했을 때

나는 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김태희가 '엄마 고마워요!' 하는 부분까지도 깊이 공감했다.


나도 그때 내가 이렇게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은데

엄마가

'옷 더 껴 입혀라. 배 나오잖니.. 밥은 이렇게 줘야지. 그런거시킬생각말고 앉아서 책이나 더 읽어주고 놀이터에서 놀려라...'

하셨을 때는 "제가 알아서 해요!" 하고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죄송하고 부끄럽다.

돌이켜보니 할머니의 방법이 대부분 맞았던 것 같다.


요즘은 육아도 아이템발이라고 뭔가 더 달라진 게 많겠지만

뭐니 뭐니 해도 할머니의 육아방식은 사랑이고 정답이다.


친정엄마가 어제 갑자기 전화를 하셔서는

"우리 고사미가 왜 이렇게 말랐냐?! 네가 밥을 더 신경 써야지. 할머니고기 좀 주문해 주까? "

"아유 엄마! 애들이 다 밖에서 사먹지 집에 있을 시간도 없어요. 나도 신경 쓰고 있어."


[할머니고기]

어느 날 우리 고사미가

"엄마! 할머니고기 먹고 싶어. " 하는데

누가 들으면 으이?! 깜짝 놀랄 말이겠다 싶어 아들이랑

"[할머니고기]라고 하니까 좀 웃기다 그지?" 하고 웃었더랬다.


[할머니고기]는 친정어머니 단골 고깃집에서 한우 등심을 얇게 잘라서 먹기 좋게 돌돌 말아 잘 포장해 주시는데

적당한 기름기에 얇은 등심은 센 불에 휘릭 볶아서 기름장에 찍어먹으면 너무 맛있다.

요즘 유행하는 대패삼겹살이나 우삼겹.. 같은 건데

우리 집 고사미가 엄청 좋아한다.


친정엄마는 고사미를 저리 둬선 안된다시며

이런저런 당부와 너는 고사미를 두고 어딜 다니냐고 아이만 신경 쓰라고 폭풍 잔소리 끝에 "할머니고기 시켜주랴?!"

하신다.


오늘 우리 집 고사미는 [할머니고기]와 할머니사랑을 반찬으로 모처럼 집에서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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