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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높아 달이 더디 뜨나 보다.

ㅡ 고3을 맞는 엄마의 마음 다스리기. 부모, 쉼표.

by Anne

K-Culture... 케이컬처... 하는데

K고딩의 삶이야말로 K-Culture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깃거리가 아닐까.

그중에서도 고등학교 3학년은 두려움 그 자체!

나에게도 찾아왔다. K고3!


고3이 되기까지 울고 웃고

달래고 어르고 한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엊그제 수능 D-300일이라는 이야기에 나도 생전 처음 겪는 고3 엄마 체험담을 나눠볼까


별스럽지 않게 키우려고 애는 써 보았지만

또 흘러 흘러 남들 한다는 거 꽁지 따라도 가보고

또 다르게 가 본다고 이것저것 시도하느라 헛물도 켜보고

오늘까지 왔지만

맞나 틀리나 고개를 갸우뚱하며

확신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작년 어느 날.

매해 수능응원가로 떠들썩한

중동고 교장선생님이신 이명학 교장선생님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어서 갔다가 작은 울림을 받고 또 한 번 내려놓고 반성을 한다.


이명학 교장선생님의 강연소주제가

'먼 훗날 아이의 기억 속에 어떤 부모님으로 남고 싶으신지요?'이었는데

그 글귀를 보자마자 나는 괜스레 울컥해 버렸다.


아이들에게 나는 어떤 엄마로 기억될까.

지난날 혹시 내 말이 아이에게 상처가 되진 않았을까

지금부터라도 잘 지내면

혹시 좋았던 것만 기억해 줄까

수만 가지 생각과 감정들이 스치면서 울컥한 것이다.


잔잔한 울림을 받았던 이명학교장선생님의

[부모, 쉼표]라는 책을 찾아 읽어보았다.

고전을 통해서 삶의 교훈을 전해주는 내용이다.


조선후기 능운(凌雲)이라는 기녀의 시 대낭군(待郞君)


郞云月出來 (낭운월출래)

우리 낭군 달이 뜨면 오겠다 하시더니

月出郞不來(월출낭불래)

달이 떠도 우리 낭군 오시지 않네

想應君在處(상응군재처)

생각해 보니 응당 우리 낭군 계신 곳엔

山高月上遲(산고월상지)

산이 높아 달이 더디 떠서겠지


한자시이지만 어렵지 않아 쉽게 이해되는 내용이다.

사랑하는 님을 그리워하는 여인의 심정을 잘 묘사한 작품이다. 약속한 날이 되어도 님이 오시지 않으니 여인은 '님이 계신 곳엔 산이 높아 달이 더디 뜨나 보다'라고 서운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반드시 돌아오리라는 낙관과 느긋함을 보여줬다.


엄마에게 자식은 사랑인데 사랑하는 자녀가 게임에 빠져있다고 혹은 지독한 사춘기를 겪고있다고 서로 언성을 높이거나 상처 주는 말을 하지 않았나 돌아보았다.

사춘기는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은 애교쟁이 아들이 고 1쯤 방문과 입을 닫았던 그때는 문고리를 뜯어버릴까도 고민했고

어르고 달래고 협박도 해보았지만

꾹 다문 입을 보고 있자면 참이나 힘든 시간이었다.

사실 그때

턱밑까지 차오르는 잔소리를 꾹꾹 누르느라

또 어떤 날은 시원하게 내 지르고 나서

아파트 주차장이나 한강공원으로 가서 엉엉 울며 마음을 다스리고 조용히 들어오기도 했다.


사실 다 아는 말이지.

내려놓기. 기다려주기. 놓아주기...

그래도 맘같이 안 되는 게 현실인데

진짜 거짓말처럼

멀쩡하게 다시 애교쟁이 아들로 돌아온 요즘.

너무나 열심히 고3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에

더욱더 맞다 맞다. 맞는 말이구나...

비로소 경험하고 나서야 깊이 공감하게 된다.


'산이 높아 달이 더디 뜨나 보다'


달은 반드시 떠오를 테니

믿고 기다려주자.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더 없다는 걸 알아가는 중이다.

미우나 고우나 내 자식인데.

정신 차리고 잘 돌아보면

결국 아이아빠 아니면 엄마의 모습 아니겠나...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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