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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va B Sep 25. 2024

로미오와 줄리엣 가문은 왜 서로를 싫어했을까?

감추어진 삶의 목격자

"재벌 총수 사망, 前 CEO 아들 살인 혐의로 기소" 


우리는 이러한 신문 기사의 헤드라인을 현실에서 접했을 때 어떻게 행동할까? 어떤 사람들은 혀를 차고, 어떤 사람들은 돈 때문일 거라는 낭설을 퍼뜨리고, 어떤 사람들은 댓글에 전 CEO의 아들을 비방하는 글을 남겼을지도 모르겠다. 반면, 우리가 이 이야기를 소설의 형태로 접하면 어떻게 될까? 




셰익스피어의 <햄릿>의 이야기를 보면, 덴마크 왕이였던 햄릿의 아버지가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 뒤 아버지의 동생이었던 클로디어스가 왕위에 오른다. 한밤중 한 초소에서 아버지의 망령을 만나게 된 햄릿은 현재 왕이 된 클로디어스에 의해 독살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왕을 죽이고자 복수하는 과정의 비극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햄릿을 비난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우리가 단순히 “왕을 죽인 선왕의 아들”이라는 신문 기사 헤드라인만을 보았을 때보다는 그를 비난할 수 없을 것이다. <햄릿>을 읽은 사람들 중에서는 오히려 햄릿을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위에 작성한 기사 제목은 햄릿의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구성해본 것이다) 


우리는 현실에서 일어났으면 기겁할 만한 일을 저지르는 인물들을 소설에서 보았을 때, 오히려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고 응원하기도 한다. 현실과 소설의 차이는 우리가 그 인물이 그렇게 행동하게 된 이유를 알기 때문이다.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책 <불안>에서 이를 흥미롭게 표현했는데, 소설 속에서 우리는 '감추어진 삶의 목격자'가 된다. 


우리는 해당 인물이 처한 상황과 심리 과정을 이해하며 단순한 관점에서 벗어나 그들의 우둔과 일탈을 너그러운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소설에서는 현실에서 보기 힘든 인물의 감추어진 삶을 조용히 관찰한다. 그 인물의 행동이 결과적으로 선한지 악한지를 떠나서 상황을 '너그러이' 이해하게 된다. 우리는 현실에서 종종 ‘결과’만을 보지만 소설에서는 ‘원인’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 표현되지 않는 삶을 유추해봐야 할 필요도 있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면 이 교훈을 한 층 깊게 이해하게 해준다. 두 가문의 갈등으로 인해 두 젊은 남녀의 죽음으로 이어진 비극적인 이야기 속에는 두 가문의 갈등에 대한 ‘원인’에 대한 묘사가 없다


그렇다면 두 가문은 왜 그렇게 서로를 미워하게 되었을까?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두 가문의 서로에 대한 증오에 대한 묘사가 없는 이유는 그들도 그 ‘이유’를 몰랐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서로의 먼 선조, 그러니까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끼리 어떤 커다란 싸움이 있었을 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은 그 일(원인)은 기억하지 못하고 증오(결과)만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두 가문의 숨겨진 삶을 목격할 수 있는 묘사가 없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소설은 소설이고 현실은 현실 아니야. 소설과 현실은 다르지”

그렇다. 가상의 이야기와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은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소설에서 우리가 인물들을 대하는 태도를 현실에서 조금은 적용해볼 필요가 있다. 


단순히 ‘결과’에만 집중하기 보다 그 행동의 ‘원인’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이다. 물론 타인의 잘못을 무조건 이해하라는 말은 아니다. 내가 완벽하지 않은 것처럼 타인 또한 완벽하지 않은 존재다. 그러니 나도, 상대방도 잘못되고 틀린 행동을 할 수 있다. 


현실 속에서 조금이라도 감추어진 삶의 목격자가 되고자 노력한다면, 우리는 좀 더 서로를 너그러이 이해해 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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