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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va B Sep 23. 2024

당신의 머릿속에 블랙홀이 존재합니다

책을 읽는 이유

블랙홀은 중력이 매우 커서 빛조차 탈출하지 못한다. 블랙홀 안에서 바깥을 향해 빛을 쏘면 중력에 의해 빛이 블랙홀 안으로 빛이 다시 돌아오는 지점이 있는데 가장 멀리 나간 지점을 반지름으로 하는 원의 경계가 사건의 지평선이다. 


사건의 지평선은 내부에서 일어난 사건이 외부에 영향을 줄 수 없는 경계면을 의미한다. 세기의 천재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블랙홀 내부 ‘사건의 지평선’ 면적을 계산하는 연구를 하였다. 그는 어떤 물질은 블랙홀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사건의 지평선이 열역학 제2법칙(고립계의 무질서도는 그대로 유지되거나 증가하기만 한다)을 연결시키며 블랙홀에 관한 통념을 뒤집었다


이 사건은 그가 당대 우주학의 권위자가 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호킹은 사실 사건의 지평선과 열역학 제2법칙의 연관성을 싫어했었다. 사실은 호킹보다 먼저 한 대학원생이 이러한 주장을 펼쳤다. 호킹은 뭘 모르는 대학생의 같잖은 주장으로 치부했다. 사건의 지평선이 열역학 2법칙과 연관된다면 열이 블랙홀에서 빠져온다는 것인데, 이것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호킹이 좀 더 연구를 진행해 도출한 수학 공식이 그 대학원생(베켄슈타인)의 주장에 부합한 결과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한참 더 시간이 지나서야 그는 베켄슈타인의 견해와 자신의 수학 공식 결론을 인정하고 편견에서 벗어났다.




 1935년 1월 11일, 당시 스물다섯 살이었던 인도 출신 천문학자 수브라마니안 찬드라세카르는 영국 런던의 왕립 천문학회에서 ‘상대성이론적 축퇴’라는 새로운 과학적 개념을 발표했다. 당시 과학계에서 모든 별의 말로는 백색왜성으로 귀결되는 것이었다. 별(항성) 내부의 모든 핵연료를 태우게 되면 직경이 줄어들어 밀도가 커지는데, 보통 별에 비해 난쟁이처럼 작다 하여 ‘백색왜성’이라 불렀다. 


찬드라세카르는 여기에 상대성이론을 적용하여 특정 질량을 넘는 별의 경우 백색왜성에서 더욱 수축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고, 이 결말은 훗날 우리가 ‘블랙홀’이라 부르는 현상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당시 천문학에 권위가 있었던 과학자 에딩턴은 ‘상대이론적 축퇴’ 따위는 없다며 일축했다. 논리와 계산을 통한 반박이 아니었다. 그는 그 주장이 ‘터무니’ 없다고 믿었으며 항성이 그런 ‘멍청’한 짓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자연법칙이 반드시 있을 것이 생각했다. 찬드라세카르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영국에서의 입지가 어려워져 미국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한 논란은 20년 동안 이어졌고, 그 이론을 제시한 지 48년 만에서야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이 점에서 찬드라세카르는 이 기간 동안 자신이 깨달은 통찰을 시카고 대학에서 강연했다. 문학가와 예술가(셰익스피어, 베토벤)의 창작 활동은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높은 창의성을 발휘했는데 과학자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37세의 나이에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상대성이론을 발표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나서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며 양자역학의 비판자로 활동했다. 그는 어떻게 신이 주사위 놀이를 좋아하지 않는지 알 수 있는가? 


자신의 이론을 거부했던 에딩턴은 블랙홀 이론이 싫다(자신의 기대와 어긋난다)는 이유로 이를 막는 자연법칙이 존재할 것이라 여겼다. 그는 과학자가 예술가와 다르게 지속적인 창의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위대한 통찰력으로 뛰어난 과학적 발견을 해냈다.
그러나 그 성공 때문에 자연을 바라보는 자신의 특수한 방법론이 필연적이고 정확하다는 생각에 빠진다.
그러나 과학은 그런 생각을 인정하지 않는다.
자연은 몇 번이고 보여주었듯이 자연의 근간을 이루는 여러 진리는 가장 훌륭한 과학자를 넘어선다.




인간이 '이성'을 발휘한다고 믿어지는 과학계에서조차, 그리고 그 과학계 속 위대한 인물조차 자신이 가진 편견에서 완벽히 벗어날 수 없었다. 믿음은 개개인의 뇌 회로 배선으로 고유한 한 인간을 나타낸다. 믿음은 정확성의 기반이 아니라 자신이 이해한 바를 바탕으로 익숙한 사고방식을 굳혀내는 효율성을 기반으로 작동한다. 그래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을 부정하며 이성보다는 감정적인 대응이 튀어나온 것이다. 어쩌면 강력하게 굳어진 무의식적인 편향은 우리 뇌 속에 ‘블랙홀’ 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을 주의 깊게 생각하는 것은 경제적이지 못하다. 길을 걸어가며 모든 보도블록의 개수나 방향을 매일 같이 계산할 수 없듯이, 불필요한 정보는 배제하여 최대한 도움이 되는 자료에만 ‘주의’라는 자원을 줄 수 있도록 진화한 뇌는 효율성을 매우 중시한 기관이다. 때문에 편향 자체를 나쁘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굳어진 사고는 열린 사고를 방해하며 때때로 겸손을 잃고 타인의 사고마저 짓밟을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찬드라세카르가 자신의 업적이 인정받지 못했던 시기를 흥미롭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는 그 시기에 계속해서 연구 주제를 바꾸어 가며 연구했다. 상대성 이론을 연구했다가, 하늘이 왜 파란지에 대해 연구했다가, 회전 물체, 열유체 등을 연구했다. 그는 겸손한 과학자가 되기 위한 제안으로 10년마다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면 된다고 말했다.


범인(凡人)으로써 질 좋은 정보로 다양한 분야를 공부할 수 있는 좋은 행위는 독서라 생각한다. 필자가 세상을 보는 기준을 바꾼 책들은 항상 내가 쌓아온 아성을 무너뜨렸다. 하지만 필자는 이 안전한 파괴가 기분이 좋았다. 


역사를 공부해 인류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라는 책에서 ‘거짓을 믿을 수 있는 행위’가 인류에 끼친 지대한 영향력은 세상을 보해석하는 눈을 길러주었다. 심리학자이지만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던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은 인류가 고전 경제학에서 제시하는 호모 이코노미쿠스처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가 아님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처음에 필자는 있어 보이고자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열심히 쌓아 올린 것을 파괴해 줄 책을 찾아 펼치친다. 독서는 스스로에게 새로운 공부를 제공할 수 있는 훌륭한 도구다. 이러한 성찰 또한 ‘편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겸손한 태도와 열린 마음을 가지고 사건의 지평선을 넘나드는 유연한 편향을 가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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