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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va B Sep 27. 2024

배트맨 팬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히어로가 전혀 멋있지 않아요

<원피스>의 조커


필자가 유년시절 쭉 좋아했던 <원피스>라는 만화에는 돈키호테 도플라밍고라는 악당이 등장한다. 이 악당은 원래 최고 권력을 가진 귀족이었다. 법 위에 군림하는 이들은 평범한 사람들을 노예로 삼고 착취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자신이 지나갈 때 머리를 숙이지 않는 시민에게 총을 발포하기도 한다. 만약 이들을 다치게 한다면 군 최고 권력인 대장이 출동한다. 


그러나 도플라밍고의 아버지가 이러한 권력을 모두 포기하고 일반 시민들이 생활하는 '하계'로 내려와 생활했다. 시민들은 다른 귀족에게 당했던 온갖 수모와 분노를 이 가족에게 분출했다. 도플라밍고는 아버지의 멍청한 선택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한 선택만 없었어도 어머니가 병으로 아파 죽을 일은 없었고, 쓰레기 더미를 뒤지며 먹을 것을 찾을 필요도 없었고 밧줄에 묶여 화살을 맞을 일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고, 귀족들이 살고 있던 곳에 돌아가고자 한다. 그러나 귀족들은 그를 배신자 집안이라며 받아주지 않았다.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순간 그는 결심했다. 그렇다면 귀족들이 지배하는 이 세계를 모조리 파괴하겠다고. 그는 '조커'라는 닉네임으로 해적이 되어 여러 악행을 일삼는다.


조금 놀라운 고백을 하자면 만화 <원피스>에서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 중 하나가 바로 도플라밍고이다. 이 캐릭터의 악행을 옹호할 생각은 전혀 없으며 그의 정신 나간 행보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순수했던 유년 시절, 정의라는 가치관에 대해 가장 큰 물음을 던진 그의 대사 때문이다. 이들의 세계관에서 정의를 등에 짊어진 세계 최고의 해군과 세계를 붕괴시킬 힘을 가진 악당 해적이 싸우는 '정상전쟁'의 한복판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해적이 악? 해군이 정의? 그런 건 얼마든지 바뀌어 왔다.
평화를 모르는 아이와 전쟁을 모르는 아이의 가치관은 다르다.
정점에 서는 자가 선악을 바꾼다...

정의는 이긴다고? 그건 그렇지. 승자만이 정의다



<다크나이트>의 조커


성인이 되어 우연히 보게 된 영화 <다크나이트>는 너무나 새로웠다. 미리 양해를 구하자면, 필자는 배트맨 시리즈는 이 영화 밖에 보지 않았고 영화에 대한 평론에는 더더욱 소질이 없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단편적인 관점이니 배트맨의 팬 분들에게는 너그러운 이해를 구한다. 또한 위에 내용과 마찬가지로 조커의 보편적 도덕에 대한 위반을 옹호하는 것이 아님을 거듭 밝히고자 한다.


다크나이트는 처음으로 히어로가 전혀 멋있지 않은 영화였다. 조커와 비교했을 때 그가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은 천지차이였다. 죽을 때까지 걱정하지 않아도 될 부를 가지고 있었고, 히어로 활동에 필요한 최첨단 바이크, 과학적 지식과 지원을 받을 사람을 데리고 있었다. 몇 사람은 거뜬히 들 수 있을 것 같은 피지컬과 노력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만한 호감 있는 외모는 덤이다.



악당 조커는 다르다. 그는 철저하게 혼자다. 그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타고 다니는 트럭이나 버스(훔친 거겠지만)를 타고 다닌다. 어떤 일을 도모하는 데 있어 그는 철저한 계획을 세워야 했다. 협력이 필요할 때 그는 매력으로 승부를 볼 수 없다. 그보다 그들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현실적인 제안을 던지고 원하는 것을 약속해야 했다. 때문에 그는 자신의 셔츠 아래에 폭탄을 매고 협상을 하러 간다. 이러한 곳에는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들이 모여들기 때문에 배신에 대한 것도 항상 염두해 두어야 한다. 영화 내내 배트멘에게 딜레마를 안겨주었던 건 그가 배트맨보다 인간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내포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악당들은 하고 싶은 말이 많다


히어로가 변신할 때 건들지 말아야 하는 국룰이 있는 것처럼, 악당에게도 국룰이 있다. 바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스토리에서 악당들은 히어로를 사지로 내몰 수 있는 상황까지 몰아두고서는 결정적인 순간에 일장 연설을 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항상 히어로에게 반격의 틈을 허용한다. 이 지긋지긋한 클리셰는 극적인 순간을 연출해 주는 역할을 하지만, 한편으로 악당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구간이기도 하다.


철학 없는 악당은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어떤 영화에서 악행을 저지르는 악당을 한 번의 위기 없이 처치하는 히어로 영화를 생각해 보라. 히어로가 위기를 겪는 순간도 없을뿐더러, 악당이 도대체 왜 그런 일을 저지르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클리셰를 허용한다. 우리는 콘텐츠에서 태어난 악당들의 말을 듣기 원한다.


<원피스>의 조커와 <다크나이트>의 조커를 포함한 수많은 콘텐츠에 등장한 악당들, 그들은 하고 싶은 말이 많다. 그들은 보통 주류 사회로부터 배척받은 자들이다. 기존에 질서에 맞지 않는 새로운 것들은 낯설고 보통 우리들은 낯선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이 속한 사회의 '보통'이란 기준 밖에서 살아가는 그들은 인정받지 못하고 차별받고 멸시받을 때 남 모르는 곳에서 실력을 키운다. 그렇기 때문에 마침내 지배층들의 꼭대기 위에 섰을 때 그들이 보지 못하는 위선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현재 사회 체계가 말하고 있지 않거나 도외시하는 것들에 대한 대변자이다. 배트맨을 연기했던 배우 크리스천 베일은 이렇게 말했다. "배트맨이 필요한 사회는 이미 실패한 사회"라고.


콘텐츠 속에 등장하는 악당이 저지르는 악행이 긍정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악당의 결말은 정해져 있다. 악당이 승승장구하면 히어로가 이를 뒷수습하러 나타난다. 그리고선 악당은 때가 되면 예외 없이 실패하거나 죽음을 맞이한다. 악당의 죽음은 콘텐츠를 보는 시청자들이 악당의 철학에 공감하는 감정이 일어난 것에 대한 속죄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대변하는 사회적 사각지대에 대한 이야기, 미처 생각지 못한 불편한 진실들, 그로부터 탄생한 그들의 철학을 들여다볼 필요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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