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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문제와 전혀 다른 해법

39억원의 세로줄

by Nova B

유럽의 여러 국가들에서 해상으로 진출하던 16세기 말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등의 국가들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면 포상을 한다고 선포했다. 각 국가들은 최고 두뇌를 가진 사람들이 이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주길 바랬다.


1714년 영국 국회는 어떤 법을 통과시키며 이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에게 최대 2만 파운드, 오늘날 가치로 약 39억 원에 이르는 상금을 수여하기로 한다. 이 기획에 중심에는 무려 아이작 뉴턴이 참여해 있었다.


이 문제는 바로 오차 범위 56KM 이내로 경도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경도를 측정하는 것은 망망대해에서 내가 정확히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장치였다.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서 프랑스 툴롱을 공격한 뒤 귀환하던 영국의 해군선은 악천후를 만나 길을 잃었다. 폭풍우 속에서 그들은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지 못해 위험한 암초지대에 걸려 좌초되며 2,000여 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이러한 해난 재난 사고는 생각보다 빈번했다. 해상을 장악해야 하는 군사적 목적 뿐만 아니라 무역과 같은 경제적 목적에서도 경도는 꼭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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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의 실마리는 '시간'에서 나왔다. 예컨대 영국에서 출발한 배는 그리니치 천문대의 시간과 바다 위의 시간을 알 수 있다면 경도를 측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당시 시계는 오랜 시간동안 정확도를 유지하기 힘들었다. 바다 위에서 배는 계속해서 출렁였고 온도, 습도, 압력과 같은 여러 고장의 요인들이 존재했다. 소금기에 부식될 우려도 존재했다. 이런 이유로 아이작 뉴턴 또한 해상에서 정확하게 작동하는 시계를 만드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존 해리슨이라는 시계공은 비록 과학적 지식이 뛰어나지만 시계를 잘 만드는 데는 자신이 있었다. 그는 스물 한 살이 되던 해, 경도법에 대한 소식을 듣고 해상 위에서 정확하게 동작할 수 있는 시계 제작에 돌입한다.


먼저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시계추 방식을 버리고, 외부 환경의 영향을 덜 받을 수 있는 격자형 진자를 개발했다. 시계에 들어가는 부품 수와 마찰도 최소화했다.


그는 1735년 첫 해양시계였던 크로노미터(시간을 측정한다는 의미)를 선보였고,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개량을 지속해 1959년 그의 나이 68살에 작지만 정확한 회중시계 H4를 만들어냈다.


그의 시계는 81일에 걸친 항해에도 단 5초의 오차, 거리로 따지면 2KM 정도 밖에 차이나지 않는 정확성을 보였다. 경도위원회는 그의 나이 80세에 상금을 수여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러한 해양 시계의 발명은 영국이 대항해 시대 패권을 잡는데 크게 기여했다.




경도보다 먼저 측정 방법을 발견한 위도는 낮에는 태양, 밤에는 별을 기준으로 각도를 측량하여 얻을 수 있었다. 많은 과학자들은 경도를 측정하는 방법 역시 천체의 움직임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자들의 시도는 경도법을 충족하는 정확한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위도와 다르게 경도는 별과의 각도를 통해서는 파악할 수 없었다.


수많은 천문학자와 과학자가 이 문제에 도전했다. 위도와 비슷한 방식으로 문제를 풀려고 했던 자들은 적정한 방식을 찾아내지 못했다. 해답의 열쇠는 완전히 다른 분야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자신도 모르게 가정하고 있는 확신을 재차 검증해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은 너무도 당연해서 질문을 던질 생각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풀리지 않는 복잡한 문제의 해결책은 종종 기존 접근법을 뛰어넘는 창의적이고 전혀 다른 분야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경도 문제에서 과학자들이 천체의 움직임을 활용하려 했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반면, 시계 제작 기술이라는 완전히 다른 영역에서 해답이 나온 것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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