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연결성
에이즈는 후천성면역결핍증을 일으키는 질병으로 1981년 사람에게서 처음 발견되었다. 첫 발병 이후 3년이 지난 1984년에서야 질병의 원인이 HIV, 레트로바이러스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혁신의 역사를 연구하는 카사드발은 자신이 의대에 입학했을 때 레트로바이러스는 절대 사람에게 질병을 일으키지 않는 바이러스라고 교육받았다고 한다. 그저 몇몇 다른 동물들의 종양에서 나타나는 바이러스였다.
질병의 원인이 밝혀진 지 3년 만(1987년)에 치료제가 나왔고, 12년 뒤인 1996년에는 에이즈로 죽지 않을 수 있는 효과적인 치료제가 개발되었다.
치료제가 빨리 나올 수 있었던 것이 제약사의 과감한 투자와 혁신적인 과학력 덕분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레트로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질병을 옮기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졌던 시기, 누군가가 사회에서 연구비로 할당된 비용을 들여 레트로바이러스를 불활성화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던 것이다. 당시 쓸모없었다고 여겨질 만한 여러 가지 연구가 에이즈의 치료제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 것이다.
절대 영도 K(켈빈)이 몇 도 인지를 발견한 스코틀랜드 수학자이자 물리학자 켈빈 경(Lord Kelvin)은 이외에도 여러 가지 과학적 발견을 했다.
그의 말년에는 거품의 완벽한 구조를 찾는 연구에 매진했다. 이 연구는 수학계에서 '한 공간을 동일한 부피로 채우면서도 표면적이 가장 작은 완벽한 형태는 무엇인가'라는 풀지 못한 문제에 대한 고민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쓸모없는 일이라고 말했지만, 켈빈 경은 수많은 연구 끝에 벌집과 닮은 구조를 형성하는 3차원 14면체를 그 답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발음하기도 힘든 켈빈 경의 가상 물체, 14면체(tetradecahedron)는 한 세기 넘도록 외면받았다.
2016년 일본 게이오 대학교 다나카 레이코 박사와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연구팀은 성능이 좋아진 현미경으로 동물의 표피구조를 연구했다. 그들은 쥐 귀에 있는 표피 세포를 연구하다가 세포의 구조가 14면체(tetradecahedron)로 이루어졌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피부는 외부 환경의 바이러스가 몸 내부로 침입하는 것을 최전선에서 방어하며, 몸 내부에서 흐르는 혈액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막는다. 피부 세포는 약 28일에서 36일 주기로 교체되는데 각질층에 올라온 세포는 먼지처럼 떨어져 나간다. 피부 세포가 바깥 표면으로 올라오기 전 단계인 과립층에서 이런 독특한 14면체의 형태가 되어 액체조차 통과하기 힘든 방어막을 형성하는 것이다.
인간이 지구상에서 가장 지배적인 동물이 된 이유는 교육과 지식의 축적이다. 우리는 수많은 호기심을 과학적 방법을 통해 지식으로 축적하고, 필요할 때 방대한 지식의 서가에서 곧바로 꺼내서 쓸 수 있었다.
당장은 쓸모없어 보이는 호기심과 지식의 연구는 이런 점에서 유용하다. 현재 치료제가 없는 알츠하이머 병을 완치할 수 있는 방법이 당근 속에 있는 영양분이나 독서법 연구에서 나올지 누가 알겠는가?(실제로 일주일에 5일씩 짧은 글을 낭독한 알츠하이머 환자들의 인지 기능이 완화하는 것을 넘어 향상되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혜택들 역시 과거 누군가의 "쓸모없다"라고 여겨졌던 연구에서 싹 틔운 것도 많다. 당장 눈앞의 문제 해결만을 목표로 하는 연구가 아니라, 장기적인 시야로 지식을 축적하고 탐구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연구의 "쓸모"를 단기적인 결과로 판단하기보다는,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투자할 필요가 있다. 사회와 개인이 과학적 호기심을 존중하고 투자할 때, 미래의 문제를 해결할 지식의 씨앗이 심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