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와 현재의 역설
필자는 <퓨쳐셀프> 책에 근거하여 인생의 세 가지 우선순위를 설정하고 이것에 집중하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목표를 세울 때마다 필자는 역설에 부딪힌다. 바로 목표와 동떨어진 현재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없으면 흘러가는 대로 살기 십상이다. 뇌는 핑계를 찾는 데 뛰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표가 있어도 당장 현재 자신의 모습과 와닿지 않을 때 우리는 유혹에 쉽게 휩쓸린다. <퓨쳐셀프>에서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미래의 나와 현재의 나를 동일시하라고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미래의 나를 피할 수 없지만, 현재의 나는 목표의 유무와 관계없이 종종 미래의 나에게 빚을 진다.
필자가 되고 싶은 모습(퓨쳐셀프) 중 하나는 '작가'이다. 필자는 2024년 한 해 동안에는 50여 권의 책을 읽었다.
그러나 필자는 작가가 되기 위해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는 것이 재밌어서 읽는다.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책, 전혀 생각지도 못한 물음표를 던지는 책들이 필자가 쌓아온 모래성을 무너뜨려주는 순간이 있다. 그런 순간을 충만하게 즐기며 책을 읽는다. 자연스럽게 그런 순간들의 기록이 쌓였고 책을 쓰고 싶어졌다. 그래서 지금까지 정리된 기록들에 필자의 생각을 엮어 글쓰기 연습을 한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필자의 지난 독서에는 어떤 목적이 있지 않았다. 독서를 시작할 무렵, 누군가 말을 할 때 "00 책에서 나오는 내용인데"라며 운을 띄우는 모습이 멋있어 보여 그렇게 되고 싶다는 목표와 외적 동기가 있었지만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책을 읽는 그 자체에서 재미를 느끼는 내적 동기가 생기자 가장 오랫동안 꾸준히 지속할 수 있었다. 독서라는 경험의 과정 그 자체에서 몰입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몰입 상태에 있으려면 한 번에 한 가지 목표에 집중해야 한다.
퓨쳐셀프 中
몰입은 무아지경이다. 정신이 한 곳에 쏠려 스스로조차 잊어버리는 무아(無我)의 경지는 가장 우아하게 시간을 잃는 방법이다.
필자가 독일을 여행을 하던 중, 길거리에서 한 밴드가 공연을 하고 있었다. 광장에 모여 사람들이 음악을 즐기고 있는데 한 할아버지가 눈에 띄었다. 그 할아버지는 음악에 맞춰 계속 제자리를 돌며 춤을 추었다. 춤이 화려하진 않았다. 그러나 그 할아버지는 완전한 몰입 상태에서 누구보다 그 공연을 오롯이, 충만하게 즐기고 있었다.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자 장 자크 루소는 이런 말을 했다.
인생을 가장 오래 산 사람은
인생을 가장 많이 느낀 사람이다.
장 자크 루소
기네스북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된 인간의 최장수 기록은 122년 164일을 살았던 프랑스의 잔 루이스 칼망(Jeanne Louise Calment)이다. 하지만 단지 양적인 세월만 오래 살았다는 것이 경험이 많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가 되지는 않는다. 필자보다 짧은 삶을 살았어도 다양하고 밀도 높은 경험을 통해 통찰력을 제시하는 사람들은 종종 보았다. 그런 의미에서 경험을 충만하게 지속하는 상태인 몰입은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이다.
연말이 되면 연예인들이 상을 받는 프로그램들이 있다. 수상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클리셰처럼 하는 말들이 있다.
"이 상을 받을 거라고 진짜 예상을 하지 못했어요" "제가 이 상을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어요"와 같은 말들이다. 진부한 말이지만 필자는 여기서 역설을 해결할 힌트를 얻는다.
분명 그들에게도 꿈과 목표가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코미디언이나 예능인, 무대에 서서 사람들을 빠져들게 하는 연기자와 같은 목표 말이다. 그러나 그들의 한결같은 수상 소감은 숭고한 목표를 위해서 노력했다기보다는 하루하루의 주어진 상황에 충실했더니 상이라는 결과가 따라온 것처럼 들린다.
우리가 정하는 목표, 즉 결과에는 수많은 변수가 작용한다. 세상은 복잡계라 우리는 그 모든 변수를 통제할 수 없다.
만약 레이크사이드 중등학교가 없었다면
마이크로소프트도 없었을 겁니다.
빌 게이츠
UN에 따르면 1968년 당시 전 세계에 는 대략 3억 300만 명의 중등학교(중고등학교가 합쳐진 개념) 인구가 있었다. 그중 미국에 살던 사람은 1,800만 명이고, 여기에서 워싱턴주에 살던 사람은 27만 명이다. 또한 이 중에 시애틀 인근에 살던 사람은 10만 명이 조금 넘고, 레이크사이드 중등학교에 다니던 사람은 겨우 300명 정도였다. 레이크사이드 중등학교는 당시 전 세계에 몇 안 되는 컴퓨터를 가진 학교였다. 마이크로소프트 창립자 빌 게이츠가 이 학교를 다닌 것은 순전히 3억 300만 명 중 한 명이라는 우연이다. 혹시 이 학교에 다니던 300명 이외의 학생이 빌 게이츠와 동일한 꿈을 꾸었다 하더라도 결과는 동일하지 않았을 수 있다.
결과는 통제할 수 없으나 우리가 유일하게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있으니, 바로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경험이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것에 오로지 집중하는 것이 오롯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다. 오늘 하루 내가 하는 경험에 충만하게 몰입하다 보면 목표로 한 결과는 따라오는 게 아닐까?
현재 순간이라는 개념과 연결하고 싶다면,
좋아하는 시리즈물을 보면서
동시에 휴대전화로 무언가를 하는 것은 피하도록 노력해 보자.
좋아하는 일들을 동시에 하지 말고 한 번에 한 가지씩 하자.
동시에 함으로써 즐거움을 낭비하지 말자.
마음의 기술 中
현대인들에게 있어 몰입을 방해하는 것은 주로 핸드폰이다. 2015년에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집중력과 관련해 보고서를 발표했다. 수년간 캐나다 성인의 집중력을 관찰한 결과 점점 집중을 할 수 있는 지속시간이 줄어들었다. 그들의 연구에 따르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2015년에는 8초 정도에 불과했다. 그들은 이 연구 결과를 통해 8초 내에 고객의 주의를 사로잡는 광고 전략을 개발하기도 했다.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하기 위해 필자는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핸드폰의 비행기 모드를 켤 때가 많다. 비행기모드는 휴대용 전자기기가 막 출시되던 1960년대, 전자기기가 항공기에 미치는 영향을 모두 테스트할 수 없어 무선 신호를 차단하기로 결정하며 생겨났다.
시도 때도 없이 여러 가지 소식을 물고 오는 핸드폰이 필자의 주의를 끌어낸다. 필자는 이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래서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할 때 주의를 끌어가는 원인을 원천 차단하고자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비행기 모드를 켜기도 한다. (밥을 먹을 때도 핸드폰을 멀리하고 입에 들어온 음식의 맛에 집중해 보는 것도 좋다.)
프랑스 철학자 알랭(Allain, 1868-1951)은 이런 말을 했다.
주의를 두는 기술은 위대한 기술이지만,
가장 위대한 기술인 주의를 두지 않는 기술을 필요로 한다.
알랭 - 프랑스 철학자
여전히 목표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목표는 큰 방향성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필자 역시 목표를 잡는다.
그러나 목표가 제시하는 외적 동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하며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결국 현재의 자신이 그 목표에 오롯이 충실할 수 있는 내적 동기가 필요하다. 그것은 현재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경험을 소중히 여기고 그것에 충만하는 것이다.
필자는 목표를 세우되, 목표와 자아를 잃은 무아의 상태로 오늘에 충실할 수 있는 이 역설을 잘 종합하는 한 해를 보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