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깨우지 않아도 곧잘 일어나서 학교에 가는 9살 막내는
비가 오는 날이면 괜히 이불속에서 꿈지럭거렸다.
언니한테 물려받은 낡은 검정 운동화에 물이 질척거리는 것도 싫었지만
한쪽 살이 부러진 파란 비닐우산을 쓰고 가는 것도 창피했기 때문이었다.
살이 부러진 비닐우산을, 막내한테 양보하는 게 괜히 심술이 난 오빠의 눈치를 살피며
오빠의 젖은 등만 보고 철퍽철퍽 뒤따르는 막내.
우중충한 우산살들이 복닥거리는 학교길에, 단연 돋보이는 선명한 색깔, 분홍색!
부잣집 애들만 입는 비닐 우비! 분홍색 우비!
9살 막내는 입을 열고 멍하니 그 분홍색 우비를 따라가는 동안
부러진 우산 살 사이로 드리치는 빗물은 나이롱 주름치마를 흥건하게 만들었다.
언니, 오빠한테도 사주지 못하는 우비를, 엄마한테 조르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챈 그 9살 막내 여자에는,
60이 넘도록 버리지 못하는 그날의 기억 때문에 결국, 분홍색 우비를 사고야 말았다.
엊그저께는 분홍색 장화도 장만했다.
분홍색 우비와 분홍색 장화를 입은 머리 허연 아줌마는
거울 앞에서 빙그르르~ 세 바퀴나 돌았다~~
우두둑 창문을 때리는 모처럼의 소낙비도 신이 난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