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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va Nov 17. 2023

60세 생일에 받은 선물

내 안의 Slocum 풍경화를 그리며~

이 집은 제가 와이프한테 60세 생일선물로 사준 겁니다~ 으핫핫하핫~~”.  구바씨는 집에 오는 지인들에게 꼭 한마디를 덧붙인다.   "돈은 내 주머니에서 나갔는데 뭔 소리~흥!" 했지만, 뭐 어쨌든 이 집을 발견해 준 것과  팬데믹이 창궐할 때에 클로징 하려고 무던히 애써준 것에 대해서는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동안 내 집을 가져 본 적이 10년 전 딱 한번 있었기 때문에 집이 주는 안식처라는 의미를 모르고 살았다. 어렸을 때는 우리가 살았던 집이 전세인지, 사글세인지 아니면 우리 소유였는지 나에게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서 전혀 몰랐고, 철이 들고 나서부터는 늘 전세로 살았다는 것을 알았다.  미국에 온 후에는 다섯 번을 월세로 살다가 10여 년 전에 미국에서 처음으로 우리 집을 가지게 되었다. 늘 출장이 잦았던 구바씨와 나에게 그 집은 그냥 일하고, 잠자고, 그리고 먹는 공간일 뿐이었다. 구바씨는 그 집을 개축해서 계속 살자고 제안을 했지만 내키지 않았다. 웬일인지 그곳에서는 8년간 살았는데도 뭔지 모르게 편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청소하다가 구바씨한테 “이 집에는 벌레들이 너무 많이 나오네~” 하고 지나가는 말로 툴툴거렸더니  구바씨가 벌떡 일어나더니 “이사 가잣!!”라고 하며 집을 덜컥 팔게 되었다. 그리고 벌레 나오지 않는 집을 찾아준 곳이 지금 Slocum 집이다. 뭐, 개미가 나오기는 한다, 쩝;;.


이 집은 예전 집보다 좀 더 크기는 한데 무섭지가 않다. 예전 집에 처음 이사를 할 때 무슨 생각에서인지 구바씨는 음기(?)를 물리쳐야 한다며  쑥을 피워서 지하 구석구석까지 쑥 향기를 풍기며 음기(?)를 물리쳤다. 햇볕이 많이 들지 않는 북향집이어서인지  늘 으스스했었다.  반면에 이 Slocum 집은 하루종일 햇볕이 집안을 돌고 있다. 이층에 혼자 있어도 지하에서 종일 작업을 해도 전혀 무섭지가 않다. 그래서인지 구바씨도 쑥을 피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 벽돌집은 정 남향집이 아니지만 창문이 많아서인지 햇볕이 하루종일 집안을 돌고 있다.  그 햇볕이 아까워 빛이 머물다 가는 곳마다 화분을 놓았다. 양기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몰랐던 우리는 이제 양기의 위력이 얼마나 슈퍼파워 인지 충분히 알게 되었다. 모든 화분의 식물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마구마구 번성했다.  또한 그 양기는  이 집에 머물고 있는 우리에게도 충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루종일 양기를 받은 나는 밤에 혼자 있어도 혹은 불을 꺼도 무섭키는커녕 귀신을  때려잡을 만큼 슈퍼 강심장이 되었다. 



양기가 넘쳐나는 이 집의 정원은 설악산 계곡에 있는 집처럼 정원이 올롤볼록 3D로 되어있다. 집 앞정원과 뒷정원을 깨끗이 청소한 것이 이웃에게 점수를 딴것 같다. 이웃들은 만날 때마다 먼저 인사를 해주었다. 옆집 젊은 스페니쉬 부부는  새로 이사 온 우리에게 웰컴 선물까지 가져왔다. 이웃은 그냥 눈인사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산  우리에게 이사 왔다고 선물까지 사 오는 예상치 못한 환영은 감격하기 충분했다. 또 다른 옆집, 간호원인 중국 아저씨는 고치는 것이 취미라며 부서진 우리 Deck를 그냥 수리해 주었다. 그뿐인가? 앞집 쿠바인 치과의사는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손까지 내밀어 주었다. 미국에서 30여 년 가까이 살면서 이제야 ‘미국 생활(?)’을 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그동안 ‘미국 생활’이 아니라 그냥 ‘이민 생활’을 한 것이었다. 그 스페니쉬 젊은 부부는 구바씨를 ‘Uncle’이라 부르며 많은 시간을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 구바씨와 함께 이웃집 아이들을 위해 정원에서 할로윈 파티로 해주고 성탄절에는 집주위 나무에 알록달록 장식을 하며 함께 사진도 찍는다. 공산당이었던 중국 아저씨와 역사를 이야기할 때는 구바씨는 언제나 서툰 영어지만 열변을 토했다. 절친 이웃이 된 우리 세 가정은  모두들 이민자들이어서 영어가 서툴다. "우리 모두가  영어는 서툴지만  어울리는데 문제없잖아? 다 알아듣잖아? 안 그래? 하하하” 라며 세  가족이 모일 때는 늘 양기 충천이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Slocum의 뜻에는 '행복이 가득하다'라는 뜻도 있단다. 내 생애에 두 번째이자 마지막 집이 된 '행복이 가득하다'라는 Slocum 둥지. 양기 충천한 추억들이 생기면서 내 마음 안에 숙성된 영혼의 결들로 Slocum 풍경을 그리고 있다. 사계절의 추억 풍경화! 안식처란 무엇인가. 편한 마음으로 먹고 쉴 수 있는 곳이 아닌가. 이 Slocum 집에서 나는 그 안식을 느낄 수가 있다. 구석구석 내 영혼을 붙여놓을 수 있는 곳, 그 영혼의 자국들을 내 아들과 그의 자식들이 느낄 수 있는 곳, 그래서 그들이 구바씨와 내가 없는 이곳에서 우리를 생각하며, 우리를 그리워하며 우리의 영혼과 대화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눈을 뜨면 집 주위  어디를 보아도 생생한 나무들과 꽃을 볼 수 있는 이 Slocum 집은 나이가 82살이다. 이 집이 100살이 되는 날 정원을 돌면서 테킬라 한잔을 따라 줄 것이다. 우리 가족의 작고 평범하지만, 귀한 시간의 역사를 위한  울타리로써 함께 해주어 감사하다고 그리고 안식처가 되어주어서 든든하다고.  지인들에게 환갑선물로 이 집을 자기가 사주었다고 자랑하는 구바씨를 거들어야겠다. “그럼요~ 맞아요! 우리 서방이 이 Slocum 집을 저에게 선물로 사주었다니까요” 호홍홍~ “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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