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만 말아줘!!
어렸을 적 방학 때면 제일 하기 싫은 방학숙제가 있었다. 곤충채집, 책 읽기 그리고 일기 쓰기. 서울 종로 한복판에 살았던 어린아이가 어떻게 곤충 채집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흔한 파리나 모기 혹은 바퀴벌레는 가능하지만 그것들을 핀에 꽂아 가면 웃음거리가 될 거라는 것쯤은 아는 나이였다. 어여쁜 잠자리는 불쌍해서 핀을 꽂을 수가 없었다. 책 읽기? 집에서는 책을 읽으라는 사람도, 책을 사주는 사람도 없었을 뿐 책을 어디서 구하는지 조차도 몰랐었다. 학교에서 주는 교과서 말고 왜 또 책을 읽으라는 것인지도 이해할 수 없었던 쌩 무지렁이 어린아이였다. 그래도 일기 쓰기는 글을 쓸 줄 아니까 나 혼자 끄적거릴 수 있는 것이어서 일주일치라도 한꺼번에 할 수 있었다. 비록 기억 못 하는 날씨는 내 맘대로 적었었지만. 그러면서도 ‘선생님이 적어 놓으신 정확한 날씨와 다르면 어떻게 하지’라고 가슴을 콩당거렸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소위 뭔가를 쓰게 된 시작.
아마도 열일곱 혹은 열여덣살이였을것이다. 여기저기 헐려버린 내가 살던 종묘 근처 동네, 그나마 나의 어린 시절이 희미하게 남아있는 그 동네를 떠나는 날 왠지 연필을 들고 싶었다. 그 마음이 무지랭이 서울 촌 여자아이에게 시작되었던 쓰기의 연장선이 되었다. 그 쓰기는 공식적으로 일기라는 것이 되었고 비록 매일 쓰지 못하는 점선과도 같은 일기일 망정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글쓰기의 끈으로 이어가고 있다.
열정이 철철 넘치는 북클럽 리더에 의해 한국의 브런치라는 플랫폼까지 끌려(?) 들어왔다. 아직도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개념에 익숙하지 않은 시대를 지나온 나로서는 글을 올릴 때마다 망설여지는 것은 사실이다. 일기는 나만 보는 것이어서 그냥 휘갈기면 되었는데, 보여줘야 하는 글이니 마구 잡이로 휘갈길 수가 없다. 나 혼자 보는 일기는 생각을 빼고 팥죽같이 푹푹 거리는 내 감정을 휘휘 젖을 수 있지만 보여줘야 하는 글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생각이란 것이 이렇다.
- 제목은 무엇으로 할까
- 키워드는 어떻게 할까
- 읽는 사람들에게 흥미가 있을까
- 하트수는 늘어날까
- 독자들은 늘어날까
- 그림은 어떤 것으로 할까
- 콘텐츠는 맞는가
이런 여러 가지 생각들이 글을 쓴 후에 따라오는 꼬리들이다. 그래서 요즘의 내 글들은 휘갈겨짐이 잘 안 된다. 브런치에 시작할 때는 일주일에 한 번은 써서 올리자 라는 나만의 약속을 했지만 생각만으로도 일주일이 후딱 가버린다. 그렇다고 특별한 장편을 쓰겠다는 생각도 아닌데… 아마도 정기적으로 글을 쓰지 못하는 나 스스로의 위축된 마음 때문인 것 같다. 다른 분들의 글쓰기 열정에 그것 또한 위축의 이유일 것이다. 많은 분들이 하루에 한 글씩 올리는 것을 보고 입이 벌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독자들도 많고, 또한 그분들은 그 많은 댓글에도 꼬박꼬박 답변을 하고 있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마음의 부담이 글쓰기를 망설이게 만든 것일까. 카톡에 브런치 소식이 뜰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는 나를 발견하고 스스로 반성을 해본다.
내 글을 읽어주겠다고 한 독자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분들의 글도 매번 잘 읽지 못하고 있다.
따로 별도의 시간을 마련해서 읽고 있지만 다시 한번 브런치에 글을 쓰는 모든 분들이 존경스럽다. 내 글쓰기 노트에 미완성된 글들이 있지만 마무리를 못하고 있다. 그 미완성된 감정들도 귀한 나의 것인데 잘나게만 보여주고 싶은 심정이 앞서 있는 나를 다시 한번 반성한다.
거의 시간 단위로 짜인 하루 스케줄에 둥이까지 관리(?) 해야 하는 나의 일상을 돌아보면서 변명과 스스로의 위로를 해보긴 하지만 글을 휘갈겼을 때의 내 편안한 뇌를 기억하면 글쓰기에 대해 손보다도 생각만 뭉클거렸던 내가 밉다. 게다가 그림 작업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종아리라도 맞고 싶다. 그래서 오늘은 그냥 생각 없이 썼다. 둥이들이 외가에 간 틈을 타서 ㅋㅋ
글쓰기에 대한 나의 쓸데없는 생각들은 그야말로 쓸데없다. 브런치에 글을 쓰겠다고 결정했을 때 제목, 키워드, 그림, 하트수, 독자수 이런 것들을 고려하겠다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그런 것들은 그냥 브런치라는 플랫폼에 있는 기능들 뿐이다. 이제 어떤 기능들의 움직임에 좌지우지 흔들리는 맨탈은 넘어서지 않았는가. 브런치가 되었던 디너가 되었던 쓰는 것 자체의 중요함을 아는 마나님 아닌가.
대부분의 글쓰기 책들의 요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써라’이다. 글쓰기는 운동과 같아 매일매일 한 문장이라도 쓰는 근육 쌓기가 중요하다는 브런치 안내(?) 글처럼 그냥 써보자. 휘갈겨 쓰던, 생각하고 쓰던 근육 쌓기를 내 속도대로 계속해보자. 한 달에 몇 개만 쓰더라도 그게 어디인가, 백지 노트를 보는 죄책감보다는 나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랭이 서울 촌년 고딩이 뭔가를 바라고 쓰기 시작한 것이 아니었지 않은가. 내 속에 있는 또 다른 나와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싶어 한 짓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