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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va Jul 30. 2023

여섯 계절의 풍경화 - iT's ALight!

5. 다시 돌아와 준 계절

내 삶에서 사라져 버린 계절들, 그리고 엇갈린 계절들, 가울, 울봄, 봄여 그리고 름가.


몇 번을 스쳤는지도 모른 체 보내온 그 계절들 속에서 나는 살아내 왔다. 하긴 살아내 왔다는 말은 넘 과장되었을 수도 있다. 뭐 전쟁통에서 생존한 것도 아니고 무인도에서 생을 보내다 구출되어 나온 것도 아니지 않은가. 정말로 생존과 파란만장이란 단어를 사용해야 할 만한 삶을 살아온 분들에 비하면 뭐 앞에서 주름잡는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한 남자와 함께 살자고 결정하고 룰루랄라 따라 간 세계, 그 결정으로 인해  펼쳐진 다른 세계의 시간들은 아주 열악한 성격의 여자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모든 것이 두려웠다. 그 쬐끄만 여자애는 어떤 누구에게도 세상을 배워보지 못했다. 특히 분홍색 우비를 식구 몰래 부러워한 어린 여자아이에게는, 힘들게 일하는 엄마에게 수학여행 비용 달라기가 미안해 학창 시절의 유일한 여행도 스스로 포기했던 순진한 사춘기 소녀한테는, 음악다방 안에 가서도 부끄러워 신청곡 하나 못 내밀었던 소심한 아가씨한테는, 그냥 도망치는 방법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렇게 스스로의 감정을 숨기고만 살았다. 그래야만 되는 줄 알았다. 어떻게 내 속을 나타내야 하는지 전혀 배운 적도 없었다. 학교라고 다니긴 했는데… 수업 시간에 딴짓만 했나 보다 ㅋㅋ. 하긴 학교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만 가르쳤지. 이제 60이 넘은 지금에서야 그 감정들을 추스르고 다스리는 노하우가 깨우쳐졌다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음… ‘환갑’이라며?… 다시 태어났잖아? 정신 차리고 살아야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투덜거릴 때가 아니지, 쩝…

 

봄, 여름, 가을, 겨울…

무섭고 두려웠던 그놈의 땅덩어리를 떠나 온전한 사계절을 찾기까지 30여 년이 넘게 걸렸다. 그 시간 동안 세상 속에서 많은 것들을 배웠다.  부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들을 배웠고 이제는 야단맞지 않고 빠져나가는 수법도 배웠다. 그리고 대드는 수단도 알아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공법(?)도 연마했다. 남의 것 부러워만 하지 말고 빌려 달라고 하는 객기도 터득했다. 게다가 많은 청중들 앞에서 능청스럽게 웃으며 너스레를 떨 줄도 알았다. 이런 것들을 배우는데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걸까? 왜 즉사할 정도로 아픈 후에 터득되는 것인가? 다른 포유류들이 배속에서 나오면서부터 서서 걸어 다니는 것처럼 웬만한 것은 미리 장착하고 세상과 맞서야 되지 않았을까?  왜, 환갑이 돼서야 한 껍질을 벗게 하는가? 최소한 불혹의 나이에서라도 알아차렸다면… 음... 혹시?... 설마?... 다들 알고 있는데 나만 지금 알아차린 것 아니야? 

 

 

 It’s alright!! 그래도 괜찮다!!

 

예전처럼 그냥 어리버리하게 살아도 괜찮다. 그게 나였다면 그렇게 사는 수밖에. 뭘 그리 대단하게 세상 휘젓고  살겠다고… 엄마 속에서 악을 박박 쓰고 세상에 나왔으면 그것으로 됐지. 여태껏 그냥 그렇게 살아왔기에 지금 여기 이렇게 있는 것인데… 또 다른 나로 살았다면 지금의 내가 여기 있을까?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인데. 봄, 여름, 가을, 겨울은 늘 똑같이 내 옆에 붙어 있었는데 나 스스로가 가울, 울봄, 봄여, 름가로 뒤틀리게 느꼈던 것이 아니었을까?   내 지난 시절 그때그때의 감각으로 옆에 오는 계절을 함께 부둥켜안고 살았어야 했던 것은 아닌가.  추웠던, 아팠던, 뜨거웠던, 시렸던 모든 계절을 오는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살아낼 가치가 있는 곳이 아니었던가. 자연의 계절이란 것이, 세월이란 것이 감히 인간들이 가타부타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또 다른 30년이 흘러 저쪽 세상으로 가 있다면 계절이 없을 것 같은 그쪽 세상 맛도 보면 되는 것이고. 만약 그쪽 세상에서 아꼈던 영혼들을 만나면 분명 천당의 계절일 것이니 다행이고. 이것도 저것도 안된다면 그냥 흩어진 가루가 되어 온 세상으로  퍼진 후 스스로가 이야기 가루가 되면 되지 뭐. 그렇게 이야기 가루가 되어 내가  아끼는 이들의 어깨 위에, 그들의 머리 위에 살며시 앉아 주면 되지 뭐. 나를 기억하든 말든… 그들과 다시 가루로라도 스치기를 빌며 온 세상을 날아다니기를!!

 

다시 돌아와 준 봄, 여름, 가을, 겨울

6차원의 계절 속을 헤집고 돌아다녔던

여섯 계절의 추상 풍경 속에서 동동거렸던

까무잡잡한 여자 아이는 머리가 허해졌다.

 

이제 생의 마지막으로 가는 길목 앞에서

지나온 여섯 계절의 시간을 쳐다보니 

참 기특했다.

그 쬐금한 막내 여자아이가 참으로 기특했다.


이제는

추상 풍경 속에서 나와도 된다.

곁으로 돌아온 계절 속에서 맘껏 뛰어다녀도 된다.

It’s al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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