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Pig

by 노바써니

2004년. 열여덟.

부모님의 이혼 사실을 알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아빠는 갑작스레 집을 이사해버렸다.

조숙한 면은 있었지만, 아직 미성년에 불과했던 나는

하루아침에 낯선 하굣길을 혼자 불안에 떨며 걸어야 했다.

그 뒤로 몇 달을 못가 나는 학교를 뛰쳐나왔다.


새 학기가 시작한 지 2~3달쯤 흐르고 있었지만,

나는 여고에 적응하지 못했고 무한한 경쟁에 염증을 느꼈다.

설상가상으로 어느 날 눈앞에서 사라진 엄마가 학교로 찾아왔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런 변화에 대해 엄마도 아빠도

그 누구도 나에게 설명해주지 않았다.

난 그냥 날벼락처럼 엄마를 잃어버린 어린아이에 불과했고

누구의 이야기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내가 제일 싫어하는 영어 선생님과

같은 반 아이들과 엄마를 내 눈 앞에서 치워버릴 수 없어서

내가 그 자리를 떠났다.

엉덩이가 무거운 내가 자리를 박차고 나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까지 내달렸다.

그 뒤로 나는 한 달이 넘도록 등교를 하지 않았고,

태어나 처음으로 모두가 당연한 듯 따르는 길에서 이탈했다.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을 거스른 적이 없던 나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자퇴생이 되었고,

평일 낮의 거리를 사복을 입고 걷는 것은 무척 두려운 일이었다.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채로 어른들과 섞였고,

모르는 사람과 눈만 마주쳐도 그 사람이

나를 비난하는 것처럼 보였다.

친구가 옆에 있었음에도 질식할 것처럼 숨이 막혔고,

다행히 금방 지나갔지만 처음으로 공황을 경험했다.


그 무렵, 내가 정신적으로 의지했던 유일한 것은

CD플레이어와 그림이었다.

인터넷 검색을 하다 우연히 클래지콰이라는 뮤지션을 알게 되었고,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그들의 데뷔 앨범을 기다렸다.

그렇게 클래지콰이의 1집 앨범, Instant Pig를 구입하고

전곡을 처음 듣던 그날의 새벽은 내게 지금도 생경하게 남아있다.

적당히 경쾌하고 적당히 무게감 있는 15개의 곡은

아이도 어른도 아닌, 아니 어떤 날은 아이 같고

어떤 날은 어른 같던 내 마음처럼 교차하고 있었다.


아빠와 남동생 몰래 혼자 숨죽여

불조차 켜지 못하고 뜬 눈으로 보내는 날들이 많았다.

그 뒤로 나는 두 번 다시 세상이

정석이라 부르는 길로 들어서지 못했다.

모두가 잠든 새벽에 홀로 깨어있는 것처럼,

모두가 등을 보이며 가는 길을 역행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2019년. 서른셋. 그러나 마음은 아직도 열여덟.

그 날에서 조금도 멀어지지 못한 나는

지금도 가끔 클래지콰이의 1집을 듣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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