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도시 출신인 내가 어른의 동행 없이 서울에 가본 것은 19살의 겨울이 처음이었다.
수능이 끝나고 친구와 전시를 보러 서울에 다녀오기 시작하면서부터 내가 서울을 자주 가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좁혀졌다. 하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였고, 다른 하나는 일에 관련된 영감을 얻기 위해서였다.
엄밀히 말하면 여행이라고 보기 어려운 일이지만, 긴 시간 버스를 타고 살던 곳을 벗어나
세련되고 화려한 도시의 풍경을 보는 것은 늘 나를 들뜨고 긴장하게 했다.
그러나 경쟁하는 사회에 지치기 시작하면서 서울에 가는 일도 더 이상 즐겁지 않았다.
그래서 한동안 서울 방문을 꺼렸는데, 우연히 원석 심리 상담 이벤트에 당첨되었다.
30분의 짧은 상담을 위해 이야기를 나누려면 서울 방문이 필수였고, 가는 김에 마침 일정이 맞는
다른 원데이클래스도 신청했다.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것 같은 하늘을 그려보고 나와 버스를 탔다.
홍대에서 대학로로 향하는 길에 창밖을 보니 방금 전 그렸던 몽글몽글한 구름이 가득했다.
그 구름에 닿을 듯 높게 솟은 빌딩만큼이나 가로수도 키가 컸다.
아직은 설익은 여름의 하늘에 눈부신 햇살과 초록빛 녹음이 차창을 수놓았다.
대학로로 향하는 마음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조금 오래돼 보이는 건물에 들어가 수줍게 상담을 시작했다. 앞사람이 펑크를 내는 바람에
나는 30분이 넘도록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었고, 지금 당장의 고민이 원석을 통해 나왔다
좀 더 내 인생의 긴 이야기를 담은 고민을 나누고 싶었지만, 단편적인 고민이 튀어나온 것 같아
처음엔 실망했다. 모처럼의 기회니까 좀 더 대단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하지만 이내 '긴 시간 내 문제는 대부분 인간관계에 관한 것이었구나.'라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조금 고되긴 하지만,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한강을 가로질러 다시 터미널로 향한다.
다소 무리하게 다녀온 나의 반나절 서울 여행, 이대로 딱 좋다.
잠시 전주를 벗어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대로 딱 좋다.
전주에 도착하니 시원한 비가 내린다. 장마가 오려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