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는 사소한 것에서도 부러움과 질투를 느꼈던 것 같다.
나는 9살 여름의 한 생일파티를 잊을 수가 없다.
집근처에 사는 친구의 생일이었는데, 집에서 생일파티를 한다고 초대를 받았다.
내 인생의 첫 피자 한 조각은 거기서 시작되었다.
친구네 어머님께서 직접 만들어주신 홈메이드 해물피자를 한 입 먹다가 몰래 뱉어내었다.
해감하는데 손이 많이 가고 비싼 해산물을 우리 집에서는 먹어본 적이 없었기에 맛이 좀 충격적이었다
더구나 피자라니! 세상에 그런 음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 날 처음 알았다.
반면 나는 초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생일파티를 해보지 못했다.
생일 케이크도, 고깔모자도, 선물을 들고 오는 친구들도 없었다.
나에겐 없는 게 많은데 친구들에겐 좋은 게 너무나도 많아 보였다.
자상한 부모님에 다정한 집안 분위기, 예쁜 집, 똑똑한 머리, 좋은 체력과 손재주….
그래서 유년기를 지나는 동안 나는 줄곧 내가 싫었다.
할 수만 있다면 이 애로, 저 애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망상을 자주 했다.
20대를 지나는 동안에도 여전히 부러움과 질투심이 많았다.
그러나 10대 때와는 다르게 20대에는 부러워만 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부러운 만큼 내 것을 쌓아 나가야만 했다.
굴곡은 많았지만, 그럼에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고 싶다는 고집을 놓지 않은 덕분일까?
어느 덧 서른을 넘겨 서른셋이 된 지금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남들이 무엇을 가졌는가가
내 인생에 큰 문제로 다가오지 않음을 느낀다.
무엇을 가졌는가보다 어떤 가치를 지향하며 살아가는 사람인지가 더 중요해지고,
더 좋은 것을 많이 가진 사람보다 좋은 가치를 지향하며 사는 사람과
가까워지고 있음에 안도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은 유년기만큼 강렬한 질투를 느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사람인지라 작은 부러움의 파편은 계속해서 올라오지만, 그 부러움에 집중할 시간과 에너지가 없다.
내 것을 만들고 키우는데 쏟을 시간도 부족하다.
그렇게 나에게 집중하기 시작하니 잘 되고 있는 누군가를 질투하기보다
응원과 격려를 할 여유도 조금쯤 생겼다.
기특하다. 요즘의 나는 내가 나라서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