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긋난 시선

(허밍어반스테레오 - Insomnia)

by 노바써니

대학 2학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가기 싫은 M.T에 끌려갔다. 학기 초에 이루어진 M.T임에도 서로 어떻게들 알고 지내는 건지 선후배 사이에 이미 커플이 많이 있었다. 그중에는 벌써 헤어진 커플도 있었다.


학생회에서 임의로 M.T의 팀을 짜 놓았는데, 나는 1학년 2반의 과대랑 한 팀이 되었다. 붙임성도 좋고 일도 곧잘 하는 데다가 “누나, 누나”하면서 말도 잘 듣는 녀석과 나는 금세 친해졌다. M.T가 끝날 때쯤이었나, 녀석이 연락처를 물어 오길래 번호를 알려주었고 그를 L이라고 저장해두었다.

그 뒤로 L이 빌려주는 만화책도 보고, 학교며 기숙사며 오다가다 자주 마주치기도 해서 부쩍 가까워졌다. 거기에 내가 1학년 사진 수업을 청강하면서 같이 수업 하나를 듣게 되었고,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하루는 2학년 동기들이 모두 학교를 탈출하고 나만 기숙사에 덩그러니 남아있던 휴일이었다. 아직 혼밥에 익숙하지 않을 때라 밥을 굶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녀석이 자기 친구들이랑 중식을 배달시켰다며 같이 먹자고 했다. 모르는 남자 후배들만 가득해서 다소 민망하긴 했지만,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다면야 그쯤이 뭐 대수랴, 싶어서 같이 밥을 먹었다.


그러다 K를 알게 됐다. K는 겉으로 보기엔 굉장히 내성적으로 보였다. 나보다 더 하얀 피부에 나른해 보이는 무쌍꺼풀이 그런 분위기를 더 짙게 자아냈다.

그런데 보기와는 다르게 처음 보는 나에게 음식도 권할 정도로 서글서글했다. 의외였다. L에 비하면 K와는 자연스럽게 마주칠 일이 현저히 적었는데도 그날 그 식사 이후로 K와 사적으로 연락하며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K와도 상당히 친해졌는데, 그런 나에게 동기들은 L을 두고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했다. L와 나는 당시 그저 친한 선후배일 뿐, 아직 연애 감정도 없을 때였는데 누구와 먼저 친했느냐 따위가 무슨 상관인가?


하지만 남들 보기에는 친하다는 이유만으로 나, L 그리고 K는 이미 삼각의 구도가 되어버렸다. 휴일이면 내가 누구와 어디를 가는지 그렇게들 궁금해했다. 하루는 L와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는데, 그 이야기를 들은 K가 본인도 식사를 같이 하고 싶다고 했다. 조금 난감한 상황이었지만 L이 괜찮다고 하여 결국 셋이 저녁을 먹고 술을 한잔했다.

후배들이 권하는 포도 소주를 처음 마셔보는데, 달달한 게 주스 같아서 연거푸 들이킨 나머지 나는 술에 취했다. 결국 그날 밤새 L과 K는 나를 챙기느라 진땀을 빼야만 했다.


그렇게 누군가 나를 챙기는 모습을 보며 사랑받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이 있었는데, 나랑 동기이나 잘 모르고 지냈던 E가 그 요주의 인물이었다. E는 학기 초에 진즉에 L, K와 동기인 Y를 만났다가 헤어진 상태였다. E는 처음엔 Y와 다시 만나고 싶은데 잘되지 않는다며 나에게 접근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K에게서 떨어질 것을 요구했다.


갑작스런 E의 등장으로 사각관계가 되면서 일이 더 꼬여버렸고, 그 와중에 내 마음은 시계 추처럼 흔들리며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E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계속 내게 선택을 강요했다. 내가 L과 K, 둘 중 누구를 선택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시간이 한참 흐르고 나서야 뒤늦게 든 생각이지만, 그때 나는 왜 누구도 선택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떠올리지 못했던 걸까. 모두의 재촉에 그저 누군가를 선택해야만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내게 결코 이롭지 못했다.


L과 K 사이에서 고민한 끝에 나는 마음이 K쪽으로 좀 더 기울고 있다고 느꼈고 어느 여름밤, 기숙사 문이 닫히기 전에 K에게 전화를 걸었다. K는 그날 밤, 학교를 떠나 본가로 가고 없었는데 내가 한 마디만 하면 막차를 타고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다. K를 배려하느라 그에게 학교로 돌아오라고 하지 않았다. 주말 잘 보내고 월요일에 학교에서 보자고 약속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날 밤, E는 자기 방으로 나를 불렀다. 나를 불러다 놓고 버젓이 내 앞에서 전화기를 들이밀며 K와 본인의 사이를 과시했다. L과 K는 친구였기 때문에 그동안 누구도 입 밖으로 호감을 꺼내지 못하다 처음으로 K와 서로 호감을 확인한 지 2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내가 지나치게 예민한 걸까? 하지만 나는 그 상황에서 약을 올리는 E보다도 K에게 화가 났다. 나와 문자를 주고받는 중에 E와 통화를 하고 있었으니까. 그 자리에서 K와의 관계를 정리했다. 서로의 사람이 되자고 약속한 지 3시간도 지나지 않아 우리의 관계는 깨져버렸다. 모든 게 E의 뜻대로 돼가는 것만 같았다.


내 방으로 돌아와 한참을 울었다. K는 며칠에 걸쳐 내 마음을 돌려보려고 애썼지만, 내 분노는 가볍지 않았다. 내 생애 처음 겪는 사각관계에 마음이 너무 쓰렸다. 연애라는 게 너무 어려웠다.


이후에는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한 번에 한 사람만 보내줄 것을. 내 사랑 안에 평화를 담아줄 것을.

K와 차마 서로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못하던 때 우리는 버스 안에서 같이 허밍어반스테레오의 Insomnia를 들었다. 짝사랑의 터질 것 같은 마음만 안고 불면증에 시달리는 본인을 서로가 알아주었으면 해서. 하지만 E가 끼어들어 관계가 부서진 이후엔 돌이킬 수 없어서, 그게 너무 슬퍼서 Insomnia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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