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과 여우 사이

(이진성 - 아이고)

by 노바써니

대학에 들어가서도 일찌감치 다른 친구들이 연애를 하는 동안 나는 꿋꿋하게 혼자 다녔다. 다른 친구들처럼 누가 나를 좋아하는지 어쩐지 전혀 눈치챌 줄도 몰랐고, 생각지도 못한 고백을 받고는 거절도 못 하고 질질 끌려다니기 일쑤였다.


그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하루는 기숙사 룸메이트가 자기 과 사람들을 소개해주었다. 게임학과 학생들이어서 그런지, 게임 말고는 관심 있는 것도 경험을 해본 것도 별로 없어서 사람들이 생각 외로 순박했다. 자기 주량도 모르면서 술을 주는 대로 먹다가 화장실에서 잠들 정도로 순진한 친구는 어떠냐며 주변에서 내게 바람을 넣었다.

변기를 붙잡고 잠드는 건 좀 그렇지만, 깔끔하고 착해 보여서 지켜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이 전혀 기억나지 않아 그를 X로 칭하자면, X는 5월 14일에 로즈데이라며 장미꽃 한 송이를 내밀기도 했다. 남자에게 꽃을 받아본 건 처음이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어서였을까. 생각보다 별 감흥이 없었다. 그래도 남들처럼 연애를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의 마음을 받아주었는데, 이거 웬걸.

X와 도저히 입을 맞출 수가 없었다. 늦은 밤 기숙사 근처를 산책하며 내게 다가오려는 그가 무안할 정도로 몇 번이고 밀쳐내고 나서야 깨달았다. 적어도 내가 연애를 하려면 입을 맞출 수 있는 사람하고 해야 한다는 걸.


X에게 냉정했던 마음 때문이었을까, 그가 나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너무도 눈에 잘 보였다. 그래서 X에게 맞춰주기보다 적당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했다.

그런데 하루는 저녁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대화를 하고 있는데 대답을 잘하지 않는 녀석이 이상해서 무얼 하나 봤더니 바로 옆에 앉아서 내 다리를 사진 찍으려 하고 있었다. 이건 도대체 무슨 상황이지?


어떻게 생각해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무리. 아무리 연애가 하고 싶어도 이건 아니었다. 상황 파악이고 뭐고 왜 그랬는지 물을 것도 없이 내 쪽에서 깔끔하게 이별을 고했다.


적어도 X 앞에서는 내가 여우라고 생각했었는데, 자존심이 상하고 분했다. 순진하고 연애 경험이 별로 없는 사람 앞에서 나는 여우일 수 있을 거라는 오만함이 무너져 내렸다.

나는 아무래도 이진성의 아이고라는 노래 가사에 나오는 그런 여자는 될 수 없을 것 같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다 결국 나만 I go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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