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광섬유의 공통 분모는 모래(Sand)

평소 하잖고, 몸에 뭍으면 털기 귀찮은 '모래'를 다시 본다

by 노바티오Novatio

이집트의 서쪽과 리비아 동쪽 국경을 사이에 두고 면적 7만 2천 제곱킬로미터(㎢) 달하는 끝이 보이지 않는 모래가 펼쳐지는 '사하라 사막‘(Great Sand Sea)이 있다.


서울의 면적은 약 605.2 제곱킬로미터(㎢)로 파악되니, 대략 119배 정도로 넓은 면적이다. 서울보다 3배 정도 큰 섬인 제주도(약 1,849 제곱킬로미터(㎢))와 비교하면 약 39배 정도 크다.


지구상에서 가장 넓은 사막이라 영어로 '위대한 모래 바다‘라는 이름을 붙였다. 바다와 같이 넓은 지역이라 생각해서 처음에는 Ocean(대양)이라고 했다가 마지막에 'Sea(바다)'라는 명칭으로 변경했다.

Dune pattern in the Great Sand Sea, Egypt (Image: NASA Earth Observatory)

이전에는 죽음의 땅(Land of the Dead)으로 불리던 곳을 1873년 독일 지리학자 & 탐험가였던 '게르하르드 롤프스(Gerhard Rohlfs)'가 최초로 이름을 붙였다. 사막이 끝도 없이 펼쳐지고, 모래 언덕의 최고 높이는 100미터 달한다.


영문 명칭에 '바다(Sea)'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지만, 명칭과 달리 ‘물 한 방울 구하기 힘든’ 척박한 곳이다. 롤프스 자신도 이곳을 탐험하다 거의 죽을 뻔하다가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아무리 못난 사람도 장점 하나는 있다고 한다. 이 땅도 그렇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이 사막의 모래라고 일반적으로 생각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많은 '규사(silica)' 함유량 95퍼센트(%) 이상을 자랑하는 '노란색 모래'가 이곳에 있다.


특히, 리비아(Libya) 쪽 사막 모래의 규사 함유량은 98퍼센트에 달한다. 달리 말하면, 리비아 쪽 사막의 모래는 '유리(Glass)' 그 자체이다.


오직 건축 자재로만 활용 가능한 쓸모없는 모래(*규사 함유량 50퍼센트 이하) 사막을 보유한 이집트로서는 통탄할 노릇이라 생각한다. 이집트 통치자들은 이런 지리적 아쉬움을 화려한 장신구로 달래야 만 했나 보다.


어린 시절에 요절한 이집트 왕자 '투탕카멘(Tutankhamen)'의 목걸이 정 중앙에 화려한 유리 장식이 있다. 그의 목걸이에는 약 600킬로미터 떨어진 리비아 사막에서 가져온 모래에서 추출한 유리로 만든 딱정벌레 문양이 박혀있다.

투탕카멘 목걸이 King Tutankhamun Scarab Necklace (Image: egypt-museum.com)

모래 속에 들어있는 규사(silica)는 유리의 재료이면서, 반도체의 원료이기도 하다. 원료 이름인 규사의 ‘실리카’와 반도체 원료인 ’실리콘(silicon)’의 발음이 한끝 차이인 이유이다.


모래에서 유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규사에 탄산나트륨(Sodium Carbonate (Na₂CO₃))과 탄산칼슘(Calcium Carbonate (CaCO₃))을 추가하고 1,700도-2,000도의 열을 가하면 액체 형태의 유리가 만들어진다.


인류 최초로 유리를 만든 사람에 대한 기록은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화려한 크리스털 유리는 영국 출신의 유리 제작자 '조지 라벤스크로프트(George Ravenscroft)'가 1674년-1676년 사이에 최초로 만들었다고 기록이 전해진다.


좀 더 정확히는 그의 공장 종업원 중 한 명이었던 무명의 이탈리아 사람이 발명했다.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과의 관계(*나대용 장군)처럼, 역사에서는 가끔 영웅적인 서사를 필요로 한다!

크리스털 유리 Crystal Glass, Photo by Daniele Levis Pelusi on Unsplash

반도체의 원료인 실리콘 제작 공정도 유리 제작 과정과 비슷하다. 규사에 같은 온도의 열을 가하면서 '탄소'만 추가하면 액체형 실리콘이 생성된다.


규사에 탄소(C)를 추가하여 1,700도 이상의 열을 가하면 산소(O2)가 없어진다. 이후 생성되는 액체형 실리콘(Crude Silicon)을 정제하여 얻어지는 고순도(99.999%) 실리콘을 활용하여 '반도체'를 만든다.


유리를 활용하여 인류는 망원경과 안경, 현미경 발명이라는 기술 발전을 이루었다. 혁신적인 기술들은 유럽인들이 험난한 바다를 서서히 극복하며, 마침내 신대륙을 발견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안경 Glasses, Photo by Laura on Pixabay

기록에 의하면 1280년대 이탈리아에서 유리를 활용한 '안경'이 처음으로 개발되고 활용되었다. 이후 나이 먹은 사람들도 좀 더 일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만들어 갈 수 있었다. 글을 읽을 줄 알았던 나이 먹은 사람들이 책을 좀 더 오랜 시간 접할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다.


네덜란드 사람 '한스 리퍼세이(Hans Lippershey)'망원경(1608)을 발명하였다. 또 다른 네덜란드 사람 안토니 레벤후크(Antonie van Leeuwenhoek)현미경(17세기)을 개발하였다. 가까운 곳과 먼 곳을 본다는 차이만 있을 뿐, 유리를 활용하였다는 점에서 동전의 앞뒤 면과 비슷한 발명이다.


1600년대 해상 무역이 활발하게 발달했던 네덜란드지정학적 위치와 역할 때문에 망원경과 현미경이 그곳에서 탄생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 본다.


인류는 모래에서 추출한 원료로 만든 렌즈의 발명으로 육안으로 보이지 않았던 머나먼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나뭇잎 속 세포와 같은 미세한 마이크로 세상이 존재함을 렌즈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망원경은 신대륙 발견과 식민지 개척의 도구, 먼 거리의 적을 한방에 저격하는 무기 제작에 활용되었다. (*신대륙의 원래 주인이었던 인디언들의 입장에서는 재앙의 시작이기도 했다). 현미경은 인류를 원인 모를 대량의 죽음으로 내몰았던 세균과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스코틀랜드에 있는 도시 '로칼린(Lochaline)'은 순도 95%의 '은색 모래'로 유명한 도시이다. 규사가 많이 포함되어 있어 '실리카 샌드'라는 별명으로 알려져 있다. 1940년에 석영 모래를 채취하는 광산이 오픈 한 이래 이곳은 영국의 전쟁 무기를 생산하기 위한 핵심 광산이 되었다.


오늘날에는 이곳에서 생산된 모래 속 실리콘이 노르웨이로 수출된다. 노르웨이에서 만들어진 탄화규소(silicon carbide)는 미국 테슬라 전기 자동차 T3의 주행 거리를 늘려주고 있다. 이 외에도 배터리의 빠른 충전과 전기 소모를 최소화하는 전기 자동차 제작 공정에 사용되고 있다.

Fontainebleau Sand (Image: leslovetrotteurs.com Screen capture)
Pyramide du Louvre (루브르 피라미드) The Louvre Museum with its Glass Pyramid (Image: Wikimedia Commons)

프랑스 남부 도시 '퐁텐블루(Fontainebleau)' 또한 '실버 샌드'의 도시이다. 루브르 박물관 앞에 세워져 있는 유명한 조형물, '유리 피라미드(Glass Pyramid, Pyramide du Louvre)' 건축 재료를 이 도시에서 가져왔다.


독일이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맹활약할 수 있었던 것도 유달리 잘 발달했던 광학 기술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독일이 한 발 앞섰던 광학 기술에는 망원경, 현미경, 잠망경, 거리 측정기 제작 기술 등이 포함된다. 독일 광학 기술을 선도한 사람의 이름은 '오토 쇼트(Otto Schott)'이다.


1914년까지 영국이 독일에서 수입한 광학 기술 제품의 비율은 전체 유통량의 60 퍼센트를 넘었다. 영국의 자체 생산 능력은 10퍼센트에 불과했다. (나머지 30퍼센트는 프랑스에서 수입했다).


1915년 독일이 전쟁을 선포하면서 모든 광학 장비의 수출을 금지해 버렸다. 영국은 곧바로 스위스로 달려가 무기에 부착하는 각종 광학 장비를 모조리 수입하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당시에는 스위스 역시 광학 기술은 독일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의 본거지 영국은 19세기까지 광학 기술 역시 앞서 있었다. 1696년에 이미 영국의 윌리엄 3세는 '유리창'에 세금을 매기는 정책(Window Tax)을 시행했을 정도로 유리 제작 기술이 발달했다. 유리가 무거울수록 더 많은 세금을 부과했다.


영국은 근대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작은 부품이라고 여겼던 '유리 제품'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영국은 석탄을 기반으로 하는 중공업에 더 치중했다. 그 바람에 결국 20세기에는 독일에 광학 기술 패권을 넘겨주는 실수를 범했다.


모래는 또한 현대인들의 삶에 필수적이라 여기는 인터넷 서비스를 위한 핵심 소재이기도 하다. 1934년에 '위대한 모래 바다'와 같은 대자연 속에 존재하던 '실리카 유리'를 미국의 젊은 화학자 한 명실험실에서 개발했다.


'제임스 프랭클린 하이드(Jame Franklin Hyde)'가 실험실에서 재현해 낸 '규소 유리'의 순도는 월등했다. 리비아 사막 모래가 함유한 유리 순도 95 퍼센트보다 더 높은 '순수한 유리 (Pure Glass)' 그 자체였다.


1870년대 '알렉산더 그래햄 벨(Alexander Graham Bell)'이 전화기를 발명한 이후,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는 구리(Copper) 전선이었다. 송수신 거리는 무척 짧았고, 정보의 양도 극히 소량이라는 단점을 지니고 있었다.


1960년대에 영국 할로우(Harlow)에 스탠더드 텔레콤 연구소(The Standard Telecom Laboratories, STL)가 있었다. (*현재는 캐나다의 광통신 & 네트워크 장비 업체 노르텔(Nortel)에 인수. 합병되어 없어졌다)

홍콩 사이언스 파크, 찰스 카오를 기념하고 있다 Hong Kong Science Park, Charles Kao, Optical Fiber

1966년에 이곳에서 근무하던 중국 상하이 출신(1933)의 '찰스 카오(Charles Kao)'는 유리에 빛을 통과시켜 정보를 전송하는 '유리 섬유 케이블'을 발명한다.


이 케이블은 무척 빠르면서도 정보의 손실이 없다는 점에서 혁명적인 기술이었다. 후대의 사람들은 '빛을 통과하는 선'이라고 하는 이 물체에 '광섬유 (Optical Fiber)'라고 이름 붙인다.


'카오(Kao)'는 오늘날 '브로드 밴드의 아버지(Father of Broadband)'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는 광섬유를 발명한 지 43년 후2009년도에 인류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


바닷가에 널려있는 모래는 여행 중에 스마트폰 카메라 앵글에 잡히는 멋진 피사체의 뒷배경 화면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초고속 인터넷과 스마트 폰 세상은 '광섬유' 없이, 더 근본적으로는 유리를 품고 있는 '모래' 없이는 정보의 송수신과 '공유, 좋아요, 구독'도 불가능하다.


역사적인 혁명은 임금이나 군주가 아니라 일반 서민에 의해 완성되었듯, 세상은 이렇게 주위의 흔하고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고 발전되는 듯하다.



참고문헌 Reference


Ed Conway, 'Material World' , Penguin Random House UK, Page 27-121 (내용 요약)

Title Background Image: Stony Area, Great Sea Sand(사하라 사막의 암석 지대) on Wikipedia.org

(*) 선조실록 206권, 선조 39년(1606) 12월 24일 (무오) 3번째 내용 (원문) 羅大用上疏, 略言: "板屋船爲戰船中之最優, 而動費軍多; 龜船雖有衝陷之能, 然以多寡之兵, 狹處而動, 弓砲不便, 故各營只備一隻, 不復增造。 臣常思節軍之方, 乙亥督造戰船之際, 創爲板屋、龜船之外, 一種異樣之船, 密樹長鎗於四面, 名曰 ‘鎗船’. (해석: 나대용이 상소하여 대략 아뢰기를, "판옥선은 전선 중 가장 우수하나 운용에 많은 군사가 필요하고, 거북선은 돌격하여 함정에 빠뜨리는 능력이 있으나, 적은 수의 군사로 좁은 곳에서 움직이면 활과 포를 쏘는 것이 불편하므로 각 영에 1척씩만 비치하고 다시 늘려 만들지 않고 있습니다. 신(臣)이 항상 군사를 절약할 방법을 생각하다가 을해년(1599년) 전선 건조를 감독할 때, 판옥선과 거북선 외에 한 종류의 다른 모양의 배를 창안하여 사방에 긴 창을 빽빽이 꽂았는데, 이름을 ‘창선(鎗船)’이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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