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너에게 어디까지 다가가도 될까
소설을 읽을 때, 마치 내 일기를 읽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소설을 만나는 그 순간을 참 좋아한다. 소설 속 상황이, 주인공의 마음이, 지금 내 모습과 비슷해서 내 마음을 읽는 것만 같고 한없이 주인공에게 공감하고 내가 위로받을 수 있는 그러한 소설을 만나는 걸 참 좋아한다.
하지만 그런 소설을 만나는 기적같은 일은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 기적을 만나고자, 내 마음과 같은 소설을 새로이 만나고자 나는 문학상 수상작 단편소설집을 종종 즐겨 읽는다.
2021년 현대문학상 소설집 중에서 대상을 받은 최은미 <여기 우리 마주> 보다도 그 다음으로 수록된 자전작 <보내는이>가 나는 좋았다. <여기 우리 마주>도 아이 키우는 엄마가 새로 고군분투해서 가게를 내고 다른 엄마들과 관계를 형성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그 관계도 미묘하게 어긋나고 가게도 운영이 어렵게 되는 이야기여서 공감하면서 읽었다.
<보내는이>를 읽은 건 올해 3월 경, 한창 친구 관계에 대해 고민하던 시기였다. 육아를 하면서 찾아오는 외로움을 해결하는 돌파구는 새로운 친구를 찾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열심히 노력했다. 하지만 아이친구 엄마와는 가까워진 듯하면서도 그 거리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아 마음이 이상했었다. 그 시기에 이 소설을 딱 만났다.
"나는 알고 있었다. 진아 씨는 내 아이 친구의 엄마이며, 지켜야 하는 선이 있다. 비슷한 여건과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 관계를 이어가는 게 쉽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걸 나는 이제 아는 나이이므로, 이 관계를 오래 가꿔가고 싶다면 훅 들어가선 안된다. ... 하지만 한낮의 폭염이 조금씩 내려앉고 저 아래 땅에서 식은 김이 올라오는 저녁이 되면, 아이들이 남긴 저녁 반찬을 안주 삼아 한 잔, 또 한 잔 마시다 보면 나는 그 선을 살짝 넘어가보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 아이를 통해 맺는 인간관계의 한계, 그걸 넘어선 친밀감을 갈망하면서도 아이를 포함시키지 않으면 불안했다."
"진아씨. 우리가 특별한 사이라는 걸 조금만 더 느끼게 해줘. 나는 다른 거 안 바라. 무심코라도 하루 안부 물어주는 거. 하루에 십 분쯤은 온통 그 사람한테만 집중해주는 거. 남편이랑은 이제 못하는 거. 남편 때문에 다른 사람이랑도 못하게 된 거. 그걸 나랑 하자."
아이를 키우면서 남편과는 멀어지고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은 마음,
아이 친구 엄마로 만나서 그 관계의 한계를 알면서도 그 선을 넘어서 친해지고 싶은 마음을 너무 잘 표현해서, 그게 그 순간의 딱 내 마음이어서 너무 놀랐고 너무 좋았다.
2. 육아란 얼마나 외로운 일인지
'서유미'라는 작가를 좋아한다. 그리고 그 사람을 좋아한다.
그녀의 소설 수업을 두번 들었다. 2016년 결혼 첫해 여름경 평일 저녁 수업 '손바닥 단편소설 쓰기'을 들었는데, 회사 일이 정시에 끝나지 않아서 늦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작가님은 한번도 싫은 내색 안하고, 그래도 수업 오는 게 어디냐며 토닥여주셨다.
그리고 2018년-2019년 겨울 첫아이 육아휴직 끝 무렵 소설수업을 또 들었다. 그때 그녀에게 반했다. 그녀 역시 한 아이의 엄마이면서 작가 일을 계속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 멋져보였다. 사람 자체가 환하고 밝은 기운을 주는 사람이어서 좋았다. 그리고 그녀가 내게 말했다. "육아하느라 힘들죠? 그래도 육아랑 자기자신을 챙기는 일이랑 같이 갈 생각을 해야해. 아이 생기기 전에 시간은 많았지만 잘 활용하지 못했잖아요."
육아에 지쳐있던 나에게, 아이로 인해서 나만의 시간이 줄어든 것에 대해 아쉬워하고 있던 나에게 정말 힘이 되는 말이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읽은 것은 4월경, 큰 아이 재우면서 옆에서 자는 척 하는게 너무 지겨워져서, 자라고 시키고 옆에서 이북을 읽기 시작했다. 우연히 그녀의 새 장편소설이 나왔다길래, 그리고 경력단절녀 (경단녀)의 이야기라길래 찾아서 읽었다. 장편이지만 이 소설 역시 내 얘기 같았기에 술술 잘 읽혔다.
주인공이 아이 등원시키고 재취업을 하기 위해 매일 매일 카페에 출근하는 에피소드부터 와 닿았다. 집에서는 도저히 기분 전환이 안되기에 카페에라도 가야 뭔가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
"경주에게는 커피 자체보다 분리된 공간이 더 절실했다. 집에서 경주의 공간은 대체로 지우의 옆자리였다. 지우가 잠들면 식탁으로 나왔지만 거실 바닥과 소파에는 미처 정리하지 못한 장난감이 남아 있었다. ... 결혼하면서 룸메이트들과 북적거리며 지내려니 독립된 공간에 대한 향수 같은 게 생겼다. 카페 제이니는 그런 경주의 필요를 채워주었다."
"하려는 일에는 별다른 진척이 없지만 햇빛이 내려앉는 창가에서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살아 있어서 괜찮다는 기분이 들었다."
"지우가 자라는 동안 바쁘고 잠이 부족한데도 경주는 이따금 외로웠다. 집에서 혼자 아이를 보는 엄마들이 인터넷 맘 카페를 자주 찾는 이유를, 주위 사람과 육아에 대한 고충과 일상을 나누기 어려울수록 카페에 글과 사진을 올리며 의지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렇게 무엇보다 육아가 얼마나 외로운 일인지 말하는 장면이 좋았다. 그당시 내가 느꼈던 마음을 누가 정리해서 대신 써준 느낌이었다. 육아를 하는데 감히 외롭다고 말해도 될까 죄책감마저 들었는데 누가 나 대신 그렇게 말해주니 좋았다. 너만 외로운 게 아니라 나도 외롭다고, 외로워해도 괜찮다고 소설이 말해주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부터 친했던 무리에서 점점 멀어져가다가 하나의 사건으로 인해 확 멀어지는 에피소드.또 새로이 친하게 된 대학교 동창과도 친하게 지내다가, 전업주부 와 직장인에 대한 견해 차이로 멀어지는 에피소드.
이런 에피소드들이 내 이야기같고 너무 와 닿아서 좋았다.
여전히 관계에 대해서 고민하는 내 모습, 그리고 육아로 인해 깊어진 내 외로움을 대변해주는 느낌이었다.
언제나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디까지 다가가도 되는 걸까가 고민이다. 이 고민은 20대때부터 지금까지 지속되어왔다. 그래도 이 책을 통해 4월 경에도 지속된 그 고민에 대한 작은 해답을 얻는 느낌이었다.